1978년 4월, 소극장 공간사랑에서는 사물놀이 창단공연이 있었다. 이 보다 2개월 전에 개최된 <제 1회 공간전통음악의 밤>에서 선보인 ‘웃다리풍물(경기, 충청지방의 농악가락)-앉은 반’의 농 악가락 연주가 성공적인 반응을 얻은데 힘입은 4명의 젊은이들은 이 날 웃다리풍물 이외에도 호남농악, 영남농악을 정리하여 준비하였으며, 처음으로 ‘사물놀이’라는 명칭을 이들의 단체 이름으로 선보였다.
꽹과리에 김용배, 장고에 김덕수, 북에 이광수, 징에 최종실로 구성된 ‘사물놀이’는 그 날의 관객 모두를 충격과 환희로 몰아넣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태껏 깨닫지 못했던 우리 선조들의 음악이 이토록 훌륭함에 관객 스스로 놀라워한 것은 연주시작 후 불과 수 분만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국악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며, 이 날을 시작으로 사물 놀이는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었다.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사물을 만지던 이 4명의 젊은이들은 당시에 이미 25년 가까운 경력의 소유자들이었고 각 악기의 달인이었다. 이들의 음악적 관심과 역량이 미쳤던 대표적인 예술적 성과를 열거해 보자면: 강태환 재즈 트리오와의 협연을 하여 현대음악과의 만남이 시도되었으며, 83년초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범세대연주회’를 기획하면서 작곡가 강준일에게 사물놀이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위촉하였다. 그 해 2월에 발표된 농악가락을 바탕에 둔 사물놀이 협주곡 ‘마당’의 성공은 그 이듬해에 열린 제8회 대한민국 음악제를 통하여 같은 작곡가의 무속사랑을 바탕으로한 또 하나의 사물놀이 협주곡 ‘푸리’를 낳게 하였다.그리고 피아노와 사물을 위한 ‘열마당 열두거리’는 무용음악으로 작곡되었으나 연주회장에서도 성공적이었으며 로마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는 브라스밴드와 합창, 그리고 사물을 위한 팡파레로 울려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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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사물놀이는 단순한 민속음악이나 전통음악의 연주단체가 아닌 창조적인 뉴 뮤직 연주단체로서의 면모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82년 미국 달라스시에서 열린 ’82세계 타악인대회(PASIC82)’에서 세계의 모든 타악인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이들은, 84년 캐나다 토론토시에서 열린 세계 타악주자들의 페스티발인 ‘슈퍼 커션 (SUPER CUSSION)’의 일원이 되었고, 이는 캐나다 벤쿠버에서 개최된 ‘월드 드럼 페스티발 (World Drum Festival)’의 가장 중요한 멤버가 되는 동기가 되었다.
곧이어 이들의 연주에 감명을 받은 재즈 아티스트들과 ‘SXL’이라는 연주 단체를 조직하여 세계적 재즈 페스티발에 초청되었으며 Chick Corea, Herbie Hancock, Miles Davis Group, Steve Gadd 등의 일류 아티스트들과 함께 공연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 결과 이제는 미국, 일본, 독일 등지의 재즈 페스티발에서 사물놀이는 단골 초청 대상이 되었으며 세계적인 문화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종목이 되어지고 있다. 특히 69회의 해외공연을 가진 86년에 당시에 국내에서 보낼수 있는 시간이 불과 4개월밖에 없었던 사물놀이는 1988년에도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주최의 전(全) 미국횡단 순회공연, 전(全) 일본 순회공연, 올림픽 성화봉송공연 등을 통하여 세계에 우리의 소리를 전하게 된다. 이러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사물놀이의 모습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더욱 각광받게 되어 전 세계에 사물놀이 팬클럽인 ‘사물노리안(Samulnorian)’이 생겨나기에 이르렀고 국내에서도 ‘국립국악원 사물놀이’를 비롯한 여러 사물놀이 연주단체들이 결성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되자 ‘사물놀이’는 더 이상 특정한 단체의 이름이 아니라 꽹과리, 징, 장고, 북의 한국전통타악기 네가지(사물)로 이루어지는 연주행위 자체를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세인들은 최초의 사물놀이 단체에게 ‘김덕수 사물놀이패’라는 별칭을 붙여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는 곧 1992년에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으로 거듭나게 된다.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은 이제 상생(相生)과 난장(亂場)의 정신을 바탕으로 온세계인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공연예술사업은 물론 연구교육사업, 음반기획사업 등을 알차게 엮어나가는 한국공연예술계의 중추로서 활기찬 행보를 하고 있다. |
참고자료 및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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