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는 지금까지 클럽이란 게 거의 없었어. 그 때는 주로 통기타 쪽이 많았지. 나라에서 장발족들 규제하면서 음악에 대해서도 간섭하고 개입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군부대나 미군클럽에서 노래를 했어. 패티김 같은… 알지? 그리고 명동에 <쉘부르>라고 있었는데 거기는 통기타쪽이었고…그 때 밴드들은 나이트 클럽에서 활동했었지.” 홍대 앞에서 클럽 <프리버드>를 운영하고 있는 김버드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신촌, 홍대 앞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근원지, 락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하지만 70~80년대에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신중현이 이태원에 <락 월드>를 열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80년대 <신촌 블루스>, <레드 제플린> 등의 공연장도 정착되지 못하고 곧 사라졌다. 같은 연도에 들국화의 전인권이 운영했던 <우드스탁> 역시 ‘크래쉬’ 등 메탈세대를 배출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프리버드>가 생기기 이전 김버드 씨도 70년도에 처음으로 광화문에 클럽을 운영했었다고 한다. ” 그 때 광화문 근처에는 고등학교가 많았어. 그러다 보니깐 맨날 고등학생만 오고. 술도 팔 수가 없는 거야. 그 당시 전인권이랑 같이 있었는데 장사가 안되니깐 1년하다가 관뒀지.”
그 이후 90년대 초반 다시 <락 월드>가 생기고 <더블 듀스(현 스팽글)>가 나타나면서 클럽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94년 <드럭>의 출발로 <프리버드>, <블루 데블> (지금은 없어짐), <스팽글>, <재머스>, <하드코어>, <롤링 스톤즈>, <마스터 플랜> 등의 클럽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이 많이 모이고, 개성 있는 젊은이들이 자주 드나든다 는 홍대 앞의 지역적 특성 덕분에 이 일대는 자연스럽게 라이브 클럽의 중심지가 되어 갔다.
클럽들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무대에 설 밴드도 없었고 사람들의 클럽에 대한 인식 또한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클럽 중 약간 나이가 있는 프리버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창기에 <프리버드> 홍보를 위해 김버드 씨가 직접 각 대학을 다니며 포스터도 만들어 붙이고, 밴드도 모집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의 과정을 거친 후에 <프리버드>는 국내 밴드 뿐만 아니라 ‘Mr. Big’, ‘Steal Heart’ 같은 외국 그룹도 공연하는 유명한 클럽이 됐다. “내가 처음 여길 오픈할 땐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 나만이 할 수 있다라는 신념을 갖고 시작했지. 한참 클럽에 대한 붐이 일었을 때도 난 걱정 안했어. 나만 잘하면 되는 거야. 아무리 많은 클럽들이 생겨도 잘하는 곳은 살아남고, 없어지는 곳은 없어지는 거지.”
실제로 운영에 실패한 클럽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다. <블루데빌>도 95년 오픈했다가 자금난으로 97년 문을 닫았다. <스팽글> 역시 <더블듀스>에서 <태권브이>로 주인이 여러 번 바뀐 역사를 가지고 있다.
98년 현재 홍대 근처의 잘 나가는 클럽들은 모두 그들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처음에 레게바를 구상했다가 지금은 펑크 파티장이 된 <드럭>. 이 곳은 음식이나 주류의 판매가 가능한 ‘유흥업소’가 아닌 ‘공연장’으로 허가를 받은 장소이기 때문에 ‘생수’와 펑크 음악만이 존재한다. 음악 소모임으로 시작했던 <마스터 플랜>은 락 뿐만 아니라 힙합과 테크노도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하드코어>는 온갖 시끄러운(!) 음악들을 모두 취급하며, <재머스>는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써서 빵빵한 느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언더’가 아닌 ‘오버’에 위치한(2층에 있음) <프리버드>는 다른 클럽에 비해 넓어서 관객들이 편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으며 모든 요일마다 공연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몇 년 전부터는 클럽들의 레이블 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96년 10월 <드럭>의 ‘아우어 네이션 Our Nation Vol. 1’을 선두로 97년 <재머스>가 ‘Rock 닭의 울음소리 ‘를 내놓았으며 98년 릴레이 싱글 앨범 시리즈를 발매하기 시작했다. <롤링 스톤즈>와 <하드코어>도 98년 3월 동시에 옴니버스 앨범을 발표했다. <프리버드>도 처음에는 음반 제작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여건상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클럽 문화가 활성화된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붐이 일어나서 신촌, 홍대 쪽으로 집중되고, 클럽 레이블이 나오고, 클럽들마다의 특색있는 내용을 가지게 된 기간이 넉넉잡아 10년 정도. 외국의 문화 선진국들의 역사와 비교해 보면 터무니 없이 짧다.
이렇게 된 이유야 여러가지겠지만, 지금 당장 드러나고 있는 문제는 법적인 부분이다. 비싼 세금 때문에 유흥 음식점 허가를 받지 못해 당국의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장사도 안되고 법적인 문제까지 걸려있는 클럽이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온 것은 음악을 진정 아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음악이 좋아서 클럽을 운영하고, 무대에 서고, 음악을 듣기 위해 클럽을 찾는 사람들. 지금까지 짧은 클럽의 역사가 이들에 의해 어떻게 바뀔지는 정말 장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