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1월의 대학로는 다른때와는 달리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얀 눈도 볼 수 없는 대학로였지만 함박눈보다 더 반가운, 따뜻하고 뽀송뽀송한 ‘코끼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월 12일부터 24일까지 대학로 충돌 소극장에서 코끼리의 콘서트가 열렸다. 공연 시작 첫날 찾아가서 느꼈던 아직은 틀이 덜 잡혀 있던 공연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콘서트가 끝나기 전날 인 토요일(1월 23일) 1회 공연을 다시 찾았다.
충돌소극장 앞에 도착한 시간은 공연 시작하기 15분전인 3시 45분쯤. 관객들이 입장한 뒤라서인지 공연장 앞은 생각했던 것 보다 조용했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 관객들은 거의 입장해 있었고, 대부분의 1회 공연이 그렇듯 그리 많은 수가 아닌 50명 정도가 공연장의 3분의 2정도를 채우고 있었다. 첫날과 다르게 무대 위쪽에는 우주선, 코끼리등의 장식되어 있었고, 무대에 설치되어있는 스크린으로 ‘코끼리’의 공연장면과 뮤직비디오도 감상할 수 있었다.
1부의 여행을 시작하며….
4시 10분쯤 스크린의 비디오와 조명이 커지고 드라이 아이스가 뿌려지면서 하얀색 비닐(반짝반짝?!)정장을 입은 코끼리 멤버들이 등장했다(흰색 코끼리는 저렇게 생겼구나.. ^^;).
1집을 발표할 때 3명(이병훈, 이재학, 유원형)이었던 코끼리는 이제 코끼리 멤버과 브라스밴드(Brass band:금관악기를 연주하는 팀)까지 8명(이병훈, 이재학, 유원형, 강훈, 곽경묵, 김동하, 정만수, 장효석)의 대식구로 늘어나 있었다.
첫 번째 곡 로 1부의 공연이 차분하게 시작됐다. 분위기 파악을 하듯 기타 이병훈은 무대를 한 번 쭉 훓어보면서 연주를 했고, 이 곡에서 브라스 밴드의 연주와 코끼리의 호흡은 정말 훌륭하게 일치했다.
노래가 끝나고 보컬 유원형은 자신들도 관객들이 다 보이고 관객들도 자신들과 가까이 있으니까 친구처럼 편하게 같이 노래하고 즐기자고 말하고, 다음곡으로 ‘댓싱유두’라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으로 유명했던 ‘The Wonders’의 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곡이 끝나고 유원형이 이곡에 대한 설명을 했다.
‘The wonders’라는 밴드도 클럽에서 공연을 하다가 빌보드챠트 1위까지 한 팀이고, 코끼리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설명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기타 이병훈의 썰렁한 한마디! “우리는 길보드 챠트에서 일등이잖아~” 그말의 썰렁함을 수습하고자 했던지 코끼리의 노래 가 대한항공 기내에 서비스 되는 가요 10곡 중의 한곡으로 들어갔 다고 코끼리가 떴음을 부연 설명했다.
빨리 노래나 부르자는 유원형의 멘트와 함께 이어진 곡은 98년 여름쯤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히트한 영화 ‘컨스피러시’의 주제가 였다. 이곡은 마치 보컬 유원형의 목소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곡처럼 그와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서도 저런 남자친구가 이 노래를 불러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이 들었을 정도 였으니까..(필자의 개인적인 생각…^^;)
보컬의 스페셜 무대로 준비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의 두곡도 연속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앨범에 있는 이라는 곡과 ‘Jesica’의 곡으로 영화 ‘약속’ 의 사운드 트랙에 사용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Air Supply’의 까지 세곡으로 유원형의 스페셜 무대를 마무리하고, 이어 코끼리에 대한 소개를 한다고 했다.
평소때와는 달리 이날은 베이스 이재학이 코끼리에 대해서 소개할 것이라는 이병훈의 멘트가 끝나자 이재학은 준비가 돼 있다는 듯 구겨진 연습장을 그의 주머니에서 꺼내서 펼쳐 들었다.
16절지 연습장에 두장이나 적어온 코끼리 소개, 관객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약간 긴장을 했는지 손을 떨면서 읽어 내려갔다. 코끼리 멤버들이 처음 만났던 기억부터 코끼리가 결성되기까지, 그리고 멤버들 한사람 한사람이 더 들어오게 되는 과정들을 그만의 느낌으로 꼼꼼히 적어 온 글을 들으면서 코끼리에 대해서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이 글을 다 듣고 난 후 관객들과 코끼리 멤버들은 다들 감동 받았는지 조금은 숙연해 지는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를 이어서 연주한 곡은 그들의 앨범에서 ‘일기예보’와 ‘코끼리’ 전 멤버가 함께 부른 .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기타 이병훈이 베이스 이재학에게 물었다. “이재학씨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랑은 정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정원은 잘 가꾸면 아름답게 지킬 수 있지만, 조금만 소홀히 하면 폐허가 돼 버리니까요… 사랑도 그렇다고 생각해요.”(아니 이런 생각을…) 아름다운 멘트에 이어 멤버 모두 노래를 불렀는데, 곡의 후반부에 드러머 강 훈이 부르는 부분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아마 드러머 강 훈은 이 곡을 부르는 순서가 제일 괴로울 듯… ) 마지막을 가벼운 웃음으로 장식하고 게스트의 무대로 이어졌다.
이날의 게스트는 이름만 들어도 무대가 술렁일 정도로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박상민’이었다. 뛰어난 가창력과 재치있는 말솜씨로 객석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놓고 이제 코끼리가 휴식을 끝냈을 것이라며 무대를 코끼리에게 넘겼다.
날아라 코끼리! 2부에서는…
1부에서의 반짝이 옷과는 다른 빨강, 회색의 따뜻해 보이는 니트차림에 썬글라스와 헤어밴드, 모자 등으로 한껏 멋을 내고 등장한 코끼리 멤버들.
말이 필요없이 그들의 곡 중 라이브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로 2부의 첫무대를 장식했다. 이때부터 관중들은 코끼리의 리드와 함께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자리에 앉아 있기에는 민망하리 만큼 모든 관객이 일어나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환호를 했다.
곡이 끝나고 관객들은 아직 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고, 보컬 유원형은 광란의 2부가 있을 거라고 관객들에게 미리 말하고 “자! 환장을 해봅시다!”라는 고함과 함께 이들이 분위기를 만들고자 할 때 부르는 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처럼 관객들은 즐기고 있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하나씩 맺혀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바로 이어서 그들의 1집에 수록된 와 ‘Beatles’의 까지 연속 세곡으로 관객들에게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고 분위기를 몰아갔다. ‘코끼리’나 관객들이 지칠 때 쯤 멤버소개가 이어졌다.
이제 좀 쉴 수 있으려나…이제야 관객들은 자리에 잠깐 앉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코미디언 이주일이 불러서 유명해진 에 맞춰서 이루어진 멤버소개. 멤버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재주들을 보여 주었고, 특히 베이스 이재학은 ‘서태지’의 노래 의 랩을 멋들어지게 소화해냈다.
멤버소개가 끝나고 이어지는 곡은 ‘Wild Cheery’의 . 멤버소개 때 잠시 자리에 앉아서 쉬던 관객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도 자리에 앉지 않고 주저하던 관객들에게 코끼리는 이쯤에서 이벤트를 마련해 선물을 드려야 하는데 이제 공연이 막바지에 달해서 더 이상 줄 선물이 없어서 안타깝다고 하면서 “멤버들이라도 선물로 드릴까요?”. 이제 공연이 끝나갈 무렵이 됐다는 아쉬움을 표현하고 마지막 두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코끼리 1집에서 가장 떴던 노래라는 설명과 함께 이어진 곡은 와 . 두 곡이 끝나고도 계속 자리에 앉지 않고 즐거워하는 관객들 때문에 의 후렴부분을 세 번이나 반복한 끝에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무대를 떠날 준비를 하는 듯 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자리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공연이 끝난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선채로 다같이 박수를 치면서 앵콜을 외쳐댔다.
평소(약간 튕기던?..^^;)와는 다르게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코끼리의 전 멤버들은 바로 앵콜을 부르겠다고 했고, 앵콜곡으로 이병훈이 ‘Steppenwolf’의 를 특유의 장난끼 있는 표정으로 불려댔다. 이때 관객들은 코끼리와 하나가 되어 같이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코끼리 1집의 최고 히트곡인 를 다시 부르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아쉬운 분은 내일도 공연이 있고, 2부 공연도 있다”는 ‘코끼리’의 말과 함께 흥분되고 뜨거웠던 무대는 막을 내렸다.
공연이 끝나고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충돌소극장 앞에는 공연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붉어진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 공연에 대한 평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신나고 따뜻했던 ‘코끼리’ 콘서트의 포근함을 안고 대학로의 차가운 바람속으로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