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궁극적 과제는 작품 속에서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내가 소멸될 때 노래는 완성된다.’ -김창완
아주 상투적인 문구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잘난척 하려는 건 아니지만(하하!), 상투성 이야말로 보편성의 다른 이름이 아니겠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 그런데 22년이 되도록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서로 끈질긴 창작력을 보인 사람들이 있었대… 그들이 바로 “산울림”이야. 알아챘지? 이번 블루진의 프론트맨은 바로 그들이야.
세월과 나이에 걸맞는 외투를 입지 않고, 여전한 ‘젊음’과 탁구공처럼 통통거리는 정신의 자유로움을 가지고 지금껏 살아온 산울림. 누가 그들에게 ‘아저씨’라고 할까? 누가 그들의 음악을 듣고 22년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을까? 새로운 것이 아니면 이내 매장당해 버리는 1999년 이곳에서, 1977년산 산울림 데뷔 앨범은 여전히 축복의 말을 전해듣는 비단 강보에 싸인 ‘귀한’ 존재야. 적어도 아직은.
다들 알겠지만, 산울림은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형제들로 이루어진 그룹이야. 제 1회 대학 가요제 때 ‘뜬’ 노래, 샌드 페블즈의 는 산울림의 김창훈이 만든 노래였어. 산울림은 명문대 출신들이라고 해서 더 화제였는데, 가방끈 길이로 사람을 이리저리 재는 풍습은 그때도 여전했나봐. 하지만, 그들 음악이 ‘가방끈’의 유명세 덕을 본 게 아니란 것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산울림은 22년의 세월동안 13장의 정규 앨범과, 동요 앨범을 비롯 10여개의 비정규 앨범을 냈고, 얼마전에는 8개의 CD속에 1집~12집 전곡과 미발표곡을 포함한 140곡을 수록한 [산울림 1977-1996] 모음집을 내기도 했어.
산울림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1977년) 그들의 음악을 듣고 사람들은 많이 놀랬다고 해.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노래들이 ‘문어체’의 가사였거든. 근데, 는,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생활 속에서 늘 쓰는 구어체 문장 그대로였던 거야. 게다가 그 뒤에 깔리는 강한 전기 기타 사운드와 로큰롤 리듬, 실험적인 프로그레시브 락 사운드는 “산울림”이 누구냐?는 궁금증을 사람들에게 막 불러 일으켰던 거지.
는 한국 대중 음악계를 뒤집어 놓은 사건이었고, 산울림이 지향했던 음악적 태도는 천편일률인 대중음악의 박제된 정신에 던지는 화두와도 같았대. 프로그레시브 락에서부터 헤비메틀, 전통가락, 락 발라드, 포크와 컨츄리 블루스, 뉴웨이브까지를 넘나들며 보여줬던 그들의 실험 정신은 22년간 계속되어 왔고, 이건 ‘짧고 굵게’ 살다 가 버린 대부분의 국내 밴드들과 산울림을 차별짓는 아주 특별한 경우였대.
근데 그렇게 여러가지 음악 실험을 많이 했던 그들이 어떻게 인기 얻을 수 있었냐구?
그건 있지… 물론 다양한 형식과 실험의 토대위에 서 있었긴 해도, 산울림의 멜로디가 단순하고 쉽게 친숙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 그리구, 곡 쓸 때,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과감히 무시했던 덕분에 자연스럽고 신선한 노래들을 남길 수 있었던 거야. 뭐, 상식과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사고와 표현의 자유로움이 낳은 결과라고나 할까.
22년이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긴 하지만, 그동안 산울림은 참 많은 앨범들을 발표했어. 정규 앨범만해도 13장이나 되고, 그 밖의 것들은… 뭐가 있더라?
아! 맞어. 나 같은 동요 알지? 산울림은 동심의 세계를 다른 누구 보다도 더 잘 이해했고, 어린이들의 세계를 표현한 노래들을 많이 만들어 부른 것으로도 아주 유명하지. 동요 앨범만 해도 5장이나 돼.
그리고, 캐롤집도 냈고, “슈퍼 삼총사”라는 TV만화영화 기억나지? 그 주제가가 수록된 앨범도 있구,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사운드 트랙 앨범도 산울림이 만든거야.
어린이 뮤지컬 “피노키오”는 산울림의 맏형인 김창완의 작품이야. 산울림의 중반기 때, 둘째 (김창훈)와 막내(김창익)가 군대 갔을 때부터 산울림의 음악 성향을 거의 도맡다시피 한 게 김창완이래. ‘김창완’이란 이름으로『기타가 있는 수필』,『김창완의 새로운 여행』(TV드라 마 음악),『Postscript』등을 내기도했던 그는, 지금까지 TV 드라마 주제가를 만들거나,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해서 지금은 거의 ‘베테랑급’ 연기자로도 활동하고 있어. 못하는 게 없는 분이셔, 정말. 얼마전에 어린 친구 하나가 “김창완이 가수였어?”라고 묻더라니깐. 자, 그럼 이제 슬슬 산울림의 ‘진짜’ 앨범들을 한 번 볼래?
산울림 1집이 나온 건 1977년이야.
나와 여러분이 아주 어린 아이였던 그 때, 우리나라의 대중 음악은 침체되어 있었대. 트로트가 가요의 전부인양 판을 치고 있었는데, 아마츄어 음악인이었던 ‘산울림’의 데뷔 앨범이 나온거야… 그게 글쎄, 오십만장 가까이 팔려버릴 줄 누가 예상 했겠어?
이 데뷔 앨범에는 와 , , , 등의 노래가 실려 있어. 그 당시 우리 가요계에서 접할 수 없었던 놀라운 사운드와 리듬은 아주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대. 지금 들어도 그 신선함을 느낄 수 있어. 강한 개성으로 꽉 채워진 이 앨범은 ‘신중현과 엽전들’ 이후로 비워졌던 국내 락의 자리를 채웠다고들 하지.
락 사운드로 가득찼던 1집의 반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1집이 나온지 5개월만인 1978년 5월에-나온 2집은 프로그레시브와 헤비메틀 냄새가 물씬 났어.
와 는 2분 가량의 긴 전주로 시작되는 실험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어. 산울림은 그때 이미 이란 노래에서 국악과 현대음악의 접목을 시도했기도 해. 같은 곡은 산울림만의 독특한 느낌을 주는 발라드 곡이기도 하구…
이 앨범 역시 2집이 나온지 6개월이 채 못되어 나온 앨범이야. 이렇게 짧은 간격으로 앨범을 내면서도 완성도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산울림이 갖고 있던 자신들의 창작곡이 무지 많아서라고 해. (미리미리 준비해두면 뭐든지 이렇게 좋을 수 있다구…에구구, 무슨 얘기야?) 어떤 사람들은 산울림을 우리나라 헤비메틀의 원조격 선배로 보기도 하는데, 그 때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 3집이라고 해. 3집중에서도 특히 .
다른 앨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둘째 김창훈의 곡이 많이 수록된 이 앨범의 총 수록곡은 모두 5곡. 옛날 LP시절, B면이 패인 부분 하나 없이 미끈한 채 나와서 사람들을 경악시켰다지? 란 노래가 B면 전체를 채우고 있었거든. 지금도 아마 18분 39초짜리 노래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1978년에 이런 노래를 들고 나왔으니, 그 음악의 완성도에 상관 없이 시장에서 참패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건지도 몰라. 산울림 앨범 중에서 가장 실험정신이 왕성한 앨범일거야. 앨범 판매량에선 참패했지만, 그들은 이미 ‘스타’였어.
이건, 그들의 앨범이긴 하지만, ‘편집 앨범’에 가까운 앨범이야. 그때까지 산울림이 발표했던 연극, 영화, 드라마 주제 음악을 모아서 낸 것이거든.
는 추송웅의 연극 주제가였고, 은 ‘제 2의 관계’라는 연극에 씌였던 곡이래. 그리고, , , 는 라디오 연속극의 주제가였고, 은 TV드라마의 주제가였어. , , , 은 임권택의 ‘내일 또 내일’이란 영화에 사용된 노래래.
김창훈과 김창익이 군입대 하고 난 뒤 나온 앨범이야. 홀로 남은 김창완이 동생들의 입대 전에 기획해 놓았다가 동생들이 휴가 나온 기간에 마무리 한 앨범이래.
여기선 김창완이 17살 때 만든 첫 작품 를 감상할 수 있어. 여기서도 락과 전통 가락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데, 와 같은 노래가 그래.
80년에 나온 6집 앨범은 5집에서와 마찬가지로 혼자 남은 김창완의 색깔이 많이 들어간 앨범이야. 이 앨범에선 , , 같은 노래가 크게 히트를 했어. , , 과 같은 노래들도 초기 산울림의 색채와 조금은 달라졌지만 놀라운 곡들이야.
란 노래 알지? 왜, 있잖아… 이은하가 커버해서 부르기도 했잖아. 그 노래가 수록된 게 7집이야. 군대에서 제대한 창훈, 창익 형제들이 합류해 공들여 만들었다고 해. 는 헤비메틀 사운드를 느낄 수 있는 곡이고, 같은 곡은 발라드도 아니면서 묘한 여운을 주는 그런 노래였어. 은 정말 소름끼칠만큼 아름답고, 은 아직도 여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스탠다드 넘버’가 된 곡이야. 같은 곡에서는 여전한 실험정신을 느낄 수 있지…
산울림의 초기 특징이었던 ‘올갠’소리가 여기서부턴 들리지 않게 돼. 올갠이 차지했던 자리가 컸을텐데, 기타와 베이스 드럼만으로 채워진 그들 음악에 빈틈이란 느껴지지 않아.
, , , , 등이 수록된 앨범이야. 친숙하게 들리는, 무리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노래들이 다 아름답긴 하지만 산울림을 상징하는 실험정신이나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 정신이 빠진, 조금은 밍숭맹숭한 앨범.
김창완이 산울림 앨범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앨범이라고 그랬대…
, , , 등… 강렬한 사운드로 가득차 있는 앨범. 헤비메틀 사운드가 충만한 이 앨범은 산울림 앨범 중에서 김창완 자신이 가장 맘에 들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앨범이래. 에선 여전한 그들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어. 그 외에도 , , 등의 노래가 수록됐어. 락 필이 충만하고 에너지가 그야말로 퐁퐁 솟아오르는 느낌의 앨범이야. 하지만 3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결실은 없었어.
이 앨범을 끝으로 창훈, 창익 형제는 각자 다른 직업을 갖고 산울림을 떠나게 돼. 그러니까 이 앨범은 그들의 ‘백조의 노래’였던 셈이지. 13집으로 다시 뭉칠거라는 예상을 못한 그 당시로는 말야.
으로 시작되는 이 앨범은 다양한 종류의 음악이 선물처럼 담겨져 있어. 흥겨운 , 파워풀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 장난기 가득한 산울림의 어른들을 위한 동요 , 는 재밌어. 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팍팍 와닿을 맑고 투명한 가사와 김창완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곡이지. 아직도 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84년 나온 이 음반을 뒤로 하고 산울림의 활동은 잠시 뜸해지게 돼. 77년 데뷔 후 7년 동안 정규 앨범만 10장을 냈으니… 그리고, 창훈, 창익이 없는 산울림을 김창완 혼자 굴려가야 했으니…
10집이 나오고 난 후 2년여가 지나고 1986년에 나온 이 앨범 역시 창훈, 창익의 탈퇴로 혼자 산울림을 지켜야 했던 김창완 혼자만의 것이야. 산울림에 있을 때의 김창완과 혼자 있을 때의 김창완의 음악 색깔과 표현방식이 아주 다르다는 건 알지?
이 앨범은 김창완의 색깔만 느낄 수 있는 ‘아쉽고도 만족스러운’ 앨범이야. 수록곡들 제목에 유난히 ‘비’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비 노래’앨범이라고도 부른대. 으로 그 문을 열면, , ,, , , , 등의 노래가 기다리고 있어.
11집 발표 후 5년만에, 그러니까 1991년에 낸 이 앨범은 상업적인 참패를 하게 돼. 김창완의 음악적 순수성이 잘 드러난 앨범이기도 하구, 그 서정이 듣는 이의 가슴에 스며드는 힘을 갖고 있기도 해.
과 , , , , 등 여전히 우리말 가사 창작에선 아무도 따를 자가 없는 산울림 -비록 김창완 혼자 남았지만-이라고 판단되는 앨범이야. 잘 알려진 가 수록되어 있고, , 등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어.
12집 이후 6년만에 나온 13집은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산울림’의 앨범이야. 84년 9집을 낸 이후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가 모여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건 13년만의 일이었어. 다들 40대 아저씨가 되었지만 빛나는 음악 정신만은 변하지 않았지. 의 슈퍼-울트라-초강력-파워로 운을 떼는 이 앨범은 초기 산울림의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펄펄 뛰는 잉어와도 같은 놀라움이야. 아니 오히려 더 젊고 진보된, 진일보한 그들의 면면을 보여준 것이었지.
는 90년대말 번져갔던 펑크의 정신을 보여준 것이었고, 일렉트릭 사운드의 질주가 탄성을 자아내게 했어. 투명하기 이를데 없는 이 앨범의 사운드야 말로 어설픈 기교 없어도 락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후배 뮤지션들에게 보여준 일례라고 할 수 있지.
다소 건조한 느낌의 과 , , 90년대를 살아가는 산울림의 전언 는 관습과 상식을 뛰어넘은 자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른 느낌이야.
산울림은 시작부터 어쩌면 주류 내부에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들은 그 시대가 낳은, 여느 스타들과 코드는 달랐지만 ‘스타’였고, 그 만큼 안주하고 주저 앉을 수 있는 여지가 클 수도 있었을거야. 그렇지만 그들이 한결같이 보여준 것은 끝없는 음악의 열정과 변화였고, 그랬기 때문에 국내 대중 음악 계보도를 그려봐도 그들만 돌출되는 특이한 상황이 벌어지게 돼.
밥벌이로서의 음악도 아니고, 취미활동으로서의 음악도 아닌 그들의 음악을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저번에 김창완이 누군가와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는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한대. 펜 대신 기타를 들고 있을 뿐, 자신이 하는 것은 ‘문학 창작작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거지. 그 글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어. 그래. 그랬구나.
산울림의 모든 곡들은 ‘문학작품’으로서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빛을 발할 수 있었구나… 하고 말이지. 한국 대중 음악사에 산울림이 빠져 있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어? ‘저항으로서의 락’의 줄기와는 또다른 독자적인 줄기를 가지고 그만한 영향력과 그만한 작품들과 그만한 내용으로 대중음악의 내실을 기했던 뮤지션이 또 있을까?
산울림의 독창적인 음악과, 음악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가 음악의 다양한 발전에 정말 큰 힘이 되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인걸… 여전히 젊은 정신으로 무장한 그들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