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하나의 장르, 고만고만한 스타들의 독무대에서 서서히 다양한 음악들의 세계가 지하로부터 펼쳐지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상황이다. 앨범의 기획 제작에서도 이런 다양화는 확산되고 있는 실정인데, 바로 여러 인디 밴드들의 컴필레이션 앨범의 대거 출현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컴필레이션 앨범이야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대부분이 소비 시장의 확산을 위한 상업적 전략의 일환이었을 뿐, 음악적 가치를 따지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지금 여기서 거론하고자 하는 컴필레이션 앨범들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80년대에 출발한 ‘우리 노래 전시회’는 ‘포크’의 산실이자 새로운 포크/ 포크락 뮤지션의 데뷔 무대와도 같은 역할을 하면서 지금은 ‘하나옴니버스’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도시락圖詩樂특공대』,『One day tours』,『Smells Like Nirvana』,『Our Nation2』는 인디 정신에 입각한 컴필레이션 앨범 중에서 나름의 기준으로 선별한 것들이다.
근래들어 홍대앞 클럽씬에서 인데 레이블 작업과 컴필레이션 앨범의 생산이 가속화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주류 음악과 다른 인디 음악의 특징을 제대로 살린 앨범 제작과 유통 구조의 ‘인디 정신’을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인디밴드들은 자신의 이름을 건 앨범을 내기 전에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앨범들을 예시하자면, 클럽 ‘드럭’에서 나온『Our Nation 1』,『Our Nation 2』,클럽 ‘하드코어’의『아싸, 오방 첫앨범』, 클럽 ‘재머스’의 『Rock 닭의 울음소리』,’강아지문화예술’에서 제작한『99/옐로우키친』, 한국 인디씬이 그런지의 제왕, 커트코베인과 너바나에 바치는 ‘제멋대로’ 트리뷰트앨범 『Smells Like Nirvana』등이 있다.
지금도 인디씬의 컴필레이션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단순한 ‘편집앨범’이 아니라 클럽 연대의 개념에 가까운 이런 컴필레이션 앨범 작업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는 것이 ‘강아지문화예술’에서 제작한『One day tours』와 『도시락圖詩樂특공대』다.
이 앨범들은 클럽 연대의 개념은 아니지만, 주류 음악의 획일적인 시도를 거부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클럽씬과의 연결 선상에 있다. 대중 음악의 새로운 출발을 여는 컴필레이션 앨범들을 살펴나가보자.
『우리 노래 전시회 1·2』(1985.1987) 1집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이광조
그것만이 내 세상-전인권
비둘기에게-시인과 촌장
너무 아쉬워하지마-어떤날
매일 그대와-강인원
제발-최성원
그댄 왠지 달라요-박주연
이 세상 사랑이-양병집
2집
그런 날에는-어떤날
코스모스- 소리두울
무용수에게-강인원
이 세상 사랑이-정희남
북두칠성-박진영
너의 작은 두손엔-들국화
먼 곳에 있는 너에게-박주연
나는 떠나가야 하리-따로 또 같이
기쁨 보리떡-시인과 촌장
85년 발표된『우리 노래 전시회 1집』은 새로운 대중음악의 출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편집 앨범’이 아닌 일전한 컨셉을 갖고 진행된 이 앨범을 프로듀스한 것은 다름 아닌 최성원이었고, 이 앨범 작업에 참여한 뮤지션 대부분이 ‘무명’에 가까왔던 포크/포크락 가수들이었다. 4집까지 나온 이 컴필레이션 시리즈는 이후 ‘하나 옴니버스’라는 이름으로 계속된다.
‘시인과 촌장’, ‘어떤 날’, ‘들국화’가 데뷔 앨범을 발표하기 전에 데뷔전을 치른 곳이 바로 이 『우리 노래 전시회 1집』에서였다. 1집과 2집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게되어 옴니버스 앨범의 시리즈화를 가능케 했고, 신인 뮤지션의 데뷔의 장으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하게 된다.
『우리 노래 전시회』에서 『하나 옴니버스』까지의 앨범들에서 포크의 감성을 보여주었던 뮤지션으로는 들국화, 어떤날(이후 이병우와 조동익), 박주연, 강인원, 따로 또 같이, 낯선 사람들, ‘동물원’의 김창기, TOY, 장필순, 박학기 등이 있다.
『우리 노래 전시회 1집』(85)에서 주목할만한 곡은 전인권의 이나 최성원의 , 시인과 촌장의 , 그리고 어떤 날의 &ly;너무 아쉬워 하지마>이다.
『우리 노래 전시회 2집』(87)에는 어떤 날의 과 들국화의 라이브 앨범에 참여했던 맑은 미성을 가진 박진영의 , 들국화의 앨범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 시인과 촌장의 등의 주옥같은 노래가 실려있다.
『도시락특공대』(1997) 밥중독- 황신혜밴드(2:57)
외발비둘기- 황보령(5:20)
그땐 좋았지- 김창완(4:45)
비누방울 혹성(날으는 코끼리를 업은 저명한 이안 박사)- 장영규(2:50)
불(火)- 원일(연주곡)(3:55)
즉흥 Performance 1- 강산에, 달파란(삐롱스), 어어부, 황보령, 원일, 조윤석(황밴드)(9:50)
Hold Me- 이상은
꽃배달 위장강도- 삐삐롱 스타킹
밭가는 돼지- 어어부
코메디- 강산에
즉흥 Performance 2- 김창완, 김형태(황밴드), 고구마(삐롱스), 이상은, 장영규(15:10)
오버와 언더의 음악인들이 함께 만든 ‘맛있는 옴니버스’ 앨범『도시락특공대圖詩樂特功隊』의 ‘도시락’은 다의적인 단어이다. 말 글대로, 우리가 점심 시간에 먹던 도시락일 수도 있고, ‘도시(city라고나 할까)의 락(rock)’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그림과 시를 즐기는’ 그들이 꿈꾸는 이상향일 수도 있고…
이 색다른 컴필레이션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기성가수와 언더 가수의 합작품이라는 점외에도 기상천외한 즉흥 퍼포먼스 연주가 시도되었다.
황신혜 밴드의 은 실없고 유쾌하며 뒤집힌 발상의 재치가 돋보인다. 황보령의 는 음산하고 서글픈 읊조림이고, 김창완의 는 나직한 웃음소리 들리는 추억의 앨범과도 같은 느낌이다. 장영규의 는 한가한 발상을 하는 배부른 지식인을 조롱하는 가사와 보컬의 기괴하고 괴로운 음색이 재밌다. 원일의 자유로운 타악기와 피리 연주곡 이 끝나면,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 시작된다.
[무작위로 나누어 연습이나 약속없이 행해진] 이 퍼포먼스의 첫번째 팀은 [두발 상태와 복장 걸음걸이 등이 불량스러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문제아 모임같다고 하여 ‘열반’이라고 불리우기 시작했다]는데… ‘열반’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원일(여러가지 북, 퍼커션), 조윤석(베이스), 황보령(목소리, 각종 장난감), 달파란(일렉트릭 기타), 어어부(목소리, 타악기), 강산에(어쿠스틱 기타, 목소리)다. 길고도 자유로운 첫번째 즉흥 퍼포먼스가 끝나면, 의외로 조용하고 다소곳한 느낌의 이상은의 가 나오고, 여전히 짓궂은 독설같은 삐삐롱스타킹의 를 만나게 된다. 어어부의 는 어어부의 노래답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온갖 타악기 소리와 꽥꽤엑~거리는 돼지 소리, 반복되는 구령 소리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서글픈 마음 드는 이상한 노래. 강산에의 는 강산에의 여느 노래와 다르지 않지만, 즉흥 퍼포먼스에서 보여지는 그의 목소리와 기타는 또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마지막 곡은 이다.
두 번째 퍼포먼스 팀은 [무대에서와는 달리 평소에 차분하고 진지하며 두발상태와 복장도 비교적 깔끔하여 열반은 이들을 ‘우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구마(일렉트릭 기타, 톱), 장영규(키보드, 리듬 프로그래밍), 이상은(여러가지 물건, 목소리), 김창완(베이스, 나레이션), 김형태(곤제, 만돌린, 쇠그릇)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 퍼포먼스의 주제와도 같이 깔리는 나레이션의 텍스트는 [어느 아메리카 인디언이 그들의 땅을 돈으로 사려는 백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인용하였다].
([ ] 내의 글은 앨범 내지의 내용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도시락 특공대』에서 음악 외에 특이할 만한 부분은 앨범 내지에 실린 곡 소개 대부분을 뮤지션 자신의 ‘솜씨’로 꾸며놓았다는 것이다.
『One day tours』(1997) 나를 버리고 싶어 – 최희경
변기속 세상 – Gangtholic
라면을 끓이며 – 기완
(너의 더러운) 세탁소 – 강아지
뜬구름을 생각한다 – 옐로우 키친(Yellow kitchen)
넌 아냐 – 배드 테이스트(Bad taste)
구토 – 박현준, 신윤철
결혼 – 민경현
The World (is a smattering of Greek) -에스트로 노이즈
삐삐 롱스타킹의 보컬이었던 권병준(고구마)과 그 친구들이 함께 만든 인디레이블 ‘강아지 문화예술’은 그들의 음반『One day tours』에서 우리 대중문화의 재해석을 시도했다.
『One day tours』에 참여한 뮤지션으로는 권병준, 이한별 등의 ‘강아지’, 음악평론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성기완’, 삐삐롱 스타킹의 ‘박현준’, 기타리스트 ‘신윤철’, 갱스터 랩그룹인 ‘갱톨릭(Gangtholic)’, ‘옐로 키친(Yellow kitchen)’, ‘배드 테이스트(Bad taste)’, 국악과 대학원생 ‘민경현’, 테크노 그룹 ‘에스트로 노이즈(Astro noise)’ 등이다.
『One day tours』는 곡 전체가 실험 성향이 강하고, 위트와 페이소스, 패러독스의 향연이다. ‘옐로키친(Yellow Kitchen)’의 와 12분 가량의 긴시간의 트랙인 ‘에스트로 노이즈(Astro noise)’의 는 전자음이 전반적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중간중간의 뮤트mute처리가 독특하다. 박현준, 신윤철의 는 정통 락과 테크노의 새로운 만남이고, 성기완은 블루스의 독특한 선율과 힙합 리듬의 멋진 섞어찌개, 를 만들었다. ‘강아지’의 -스티븐 프리어즈의 영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와는 어떤 관계일까?하는 궁금증에 온몸이 근질거리는 글쓰는 이-는 사이키델릭 락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다양하고 원초적인, 낡은 듯 세련된, 구식 무그 신서사이저의 음률이다.
『Smells Like Nirvana』(1997) In bloom- 위퍼(weeper)
Everything and nothing- 크라잉 넛(Crying nut)
Polly- 배드보이(Bad boy)
Smells like teen spirit- 배드 테이스트(Bad taste)
Dumb- 레이니 썬(Rainny sun)
Lithium- 노 브레인(No brain)
Spank thru- 코코아(Cocore)
Come as you are- 언니네 이발관
School- 허벅지 밴드
Gallors rubbing alcohol flow through the strip- 갈매기
이 앨범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홍대 앞 클럽을 중심으로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한 공연 문화와 인디 밴드들이 ‘얼터너티브’의 제왕 커트 코베인과 너바나에 바치는 ‘송가’다. 일종의 트리뷰트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앨범의 제목은『Smells like Nirvana』이고, 10개의 인디 밴드들이 너바나 곡들을 ‘내맘대로’ 불러제꼈다.
먼저, ‘위퍼(Weeper)’가 을 불러 평소 공연 때의 너바나 커버 실력을 여실히 드러내고, 크라잉 넛(Crying Nut)은 경쾌하고 단순한 편곡으로 을 블렀다. ‘배드 보이(Bad boy)’는 를 원곡보다 훨씬 빠른 템포와 스카와 뽕짝 리듬이 가미된 기타 편곡에서 펑크와 하드코어를 넘나드는 신선한 커버 버전을 선보인다. ‘배드 테이스트(Bad taste)’가 을, 부산출신 밴드 ‘레이니 선(Rainny sun)’이 을 나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늘여서 부르고 있다. ‘노 브레인(No brain)’은 를 스카와 ‘쿵짝/뽕짝’ 리듬이 섞인 장난끼 넘치는 ‘오이펑크’로 탈바꿈시켜 부르고 있다. ‘코코아(Cocore)’가 부른 는 비교적 원곡에 가까운 연주와 보컬을 보여주고 있다. ‘언니네 이발관’은 를 느린 편곡으로 나른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부르고 있다. 음산하게 펼쳐지는 ‘허벅지 밴드’의 을 지나면, 데스 메탈에 가까운 ‘잘매기’의 가 이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Smells like Nirvana』가 너바나를 추모하는 성격의 트리뷰트 앨범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이 앨범에 참여한 국내 인디 음악의 10인의 ‘대표’들이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고 그 모든 작업을 해냈다는데 있다.
『Our nation 2』(1998) [No Brain]
재가 되어가리
배고파
바다 사나이
I get around
지하실 부루스
?
빨강머리
아름다운 세상
[Weeper]
머리통
숨어있기 좋은 방
공룡
바퀴벌레
BANG
헛수고
I’m O.K
제 흥에 겨운 연주와 살아있는 음악, 완벽하지 않은 연주지만 그것을 상쇄시킬 수 있는 흥미거리가 가득한 앨범. 『Our Nation 2』는 ‘인디 펑크 락의 스타’가 된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이 참여했던『Our Nation 1』의 후속타이다. 『Our Nation 2』는 펑크 락의 집산지랄 수 있는 클럽 ‘드럭’ 의 두 밴드, ‘노 브레인(No Brain)’ 과 ‘위퍼 (Weeper)’의 공동 앨범이다. 기존의 독립 음반들이 클럽 등 비주류 유통망을 이용했던 데 비해『Our Nation 2』는 저예산 레이블 ‘드럭’에서 제작을 하고, 유통을 대기업 자본인 금강기획 ‘멀티플러스’가 맡았다.
리드 보컬의 빨강머리(일명 ‘불대가리’)로 유명한 4인조 펑크밴드 ‘노 브레인(No brain)’은 /”야야야…/ 배고파∼ 우다다…배고파/…/ 모두가 팔자 좋게 놀고 있지만/ 나는 나에게 필요한 건 한 그릇 라면뿐” 등의 가사를 특유의 샤우팅 창법으로 불러 앨범의 시작을 힘있고 흥겹게 알려주고 있다.
스카(Ska)의 흥겨운 쿵짝 리듬을 차용(했다기보다 뽕짝에 더 가까운)한 , 신나는 펑크/록앤롤 풍의 , 등의 재기발랄한 곡들을 선보인다. 은 이들이 불평등하고 잔인한 세상에 보내는 냉소와 일갈이다. 노 브레인의 는 명백한 시나위의 의 패러디며, 나 , 에서 보여지는 가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 인디 밴드들의 실상이다. 하지만, 기가 죽기는 커녕 오히려 더 뻔뻔스럽고 신나고 당당한 이들의 노래는 유쾌하기 그지 없고 탄탄한 기타 시력과 어우러진 개성있는 보컬 역시 근사하다.
‘위퍼(Weeper)’ 는 3인조 얼터너티브 락 밴드로, 클럽에서 ‘너바나’의 커버 밴드로 활약하다가 유명해진 밴드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서 ‘위퍼’는 너바나풍의 노래에서 벗어난 듯 보이며, ‘노 브레인’에 비해 정통 락과 헤비메틀의 요소를 많이 느낄 수 있는 곡들을 선사하고 있다. 안정된 구성과 탄력 느껴지는 연주 실력이 만만찮다.
‘위퍼(Weeper)’는 에서 /”흔들지좀마 어지러워 죽겠어/내 머릴 훔쳐가지마∼”/ 라고 노래하고 있고, 에서 /”이렇게 바꾼다고 세상은 변하질 않아/ 이렇게 소리쳐도 너만 달라질 뿐야/…이렇게 바꾼다고 자극적일 수 없지/ 뭐가 그리 대단해 남과 다르지 않아 /…모두 바꾼다고 너를 자신하지마/ 그대로 세상은 조금도 움직이질 않잖아” 라고 노래하는 등 현실 속의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기 소외, 무력감 등을 정통 락과 섞인 펑크의 리듬 속에 실어 보내고 있다.
새로운 유통구조와 제작 방식을 지향하는 이런 앨범들이 과연 주류 음악시장 질서의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인가? 이 앨범은 그런 노력의 결과라는데 의미가 있으며, 음악적 완성도 보다는 그 정신과 자유로운 시도에 점수를 더 많이 줘야 할 앨범이다. 다양성과 모험성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취해야 할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