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계에는 시기에 상관없이 한 시대의 조류를 이끌어 갈 만한 음반들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대중가요에서도 어느 한 시대에 한 장르가 다른 장르보다 강세를 보였거나, 미약했던 한 장르를 보다 완성된 장르로 만들어 놓았던 앨범들이 등장했었다.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앨범들이 바로 그런 앨범들이다. 각 장르마다 힘을 불어 넣었 다고 할 수 있는 음반들을 다 다루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하면서,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대표적 음반 다섯장을 소개 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시대순으로 들국화, 유재하, 변진섭, 서태지, 넥스트의 앨범을 선정했다.(물론 절대적 기준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름대로 가치있는 앨범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들국화』
한국의 비틀즈 들국화의 출현
행진
그것만이 내세상
세계로 가는 기차
더 이상 내게
축복합니다
사랑일 뿐이야
매일 그대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1960년대 중반부터 1975년 중반까지 신중현에 의해 뿌리 내려지고 성장해 온 한국 ROCK 의 명맥을 이은 그룹이 바로 들국화이다.
1985년 발표되었던 들국화 데뷔 음반은 당시 침체기에 빠져있던 국내 대중음악의 새로 운 부흥기를 맞게 한 대단한 사건이었다.
지하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들은 처음부터 완벽에 가까운 창작력과 연주력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인권이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중심으로 Soft Rock음악을 표방하면서 한국의 Beatles라고 까지 불리 웠고, 당시 외국의 팝송이나 락 음악에 심취해 있던 청소년들을 단번에 휘어잡아 들국 화의 추종자로 만들어 버렸다.
Rock, Fork, Blues, Fusion등 7,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다양한 실험은 들국화 1집에 총 집결 되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감성의 Rock음악을 탄생시켰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기교를 당시 젊은이들과 청소년의 정서에 절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한국적 락’ 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음악을 등장시켰다.
이들이 시도했던 한국적인 락음악은 이후에도 H2O, 시나위, 부활 등에 의해서 명맥이 이어져 왔고, 90년대에도 강산에, 김종서, NEXT 등에 의해 그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유재하』
유재하의 1집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사랑
그대 내품에
텅빈 오늘밤
내 마음에 비친 내모습
가리워진 길
지난날
우울한 편지
사랑하기 때문에
Minuet(경음악)
유재하 1집「사랑하기 때문에」의 참신하고 세련됨은 – 그의 음악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라고 할 지라도 – 새로운 한 시대를 연 음악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좀 더 오랫동안 음악생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유재 하의 1집의 세련되고 독특한 멜로디, 현악기와 관악기를 사용한 고급스러운 연주, 가냘 프지만 호소력 짙은 보컬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 버린 앨범이 분명히 뛰어나다 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유재하의 앨범은 당시(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투쟁적인 운동권 문화)에서 독립 된 것으로, 이후 댄스음악이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기 전까지의 발라드 시대를 연 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이후 많은 가수들이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 음을 밝힌 것은 이를 뒷받침 해주는 사실이다)
『변진섭』
대중가요계의 여울목「변진섭 1집」
홀로된다는 것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대
그대에게
못다한 우리 사랑을
우리의 사랑 이야기
과수원 길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너무 늦었잖아요
새들처럼
안녕이라 말하지마요
혼자 걸어가는 거리
유재하가 발라드의 초석을 만들었다고 해도 트로트와 약간의 댄스 음악 사이에서 발라드가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변진섭의 1집「홀로된다는 것」은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고 볼 수 있고, 이 후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에서 발라드가 어느 장르보다도 힘있는 장르가 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있다.
이 앨범은 이 후 김민우, 이승환, 신승훈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발라드 계보의 시조격 앨범이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충격적 데뷔에서 혁명으로…서태지 1집「난 알아요」
Yo! Taiji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너와 함께한 시간속에서
이 밤이 깊어 가지만
내 모든 것
이제는
Blind Love
Rock’n Roll Dance
Missing
메탈 그룹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던 한 젊은 청년이 두명의 댄서와 함께 댄스 트리오를 결성한다. 이것이 바로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도 자체를 바꾼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이다.
“새로운 것만이 세상을 바꾼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92년 이후의 한국 가요계는 전통과는 다른 확실한 획이 그 어졌다.
발라드, 댄스, 트로트로 대변되던 가요가 흑인의 랩과 댄스가 접목된 형태로 자 리잡기 시작했다. 1집에서의 는 ‘국내 최초의 랩’은 아니더라도, 랩을 대중 화 시켰던 최초의 음악이었고, 팝과 같은 세련된 구성과 실험적인 시도로써 인정을 받 았던 음악이었기에 현재까지도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후 이어지는 서태지의 2, 3, 4집은 외국 음악의 저항정신은 당연시 하면서도 우리의 음악은 듣기 편하고 달콤한 노래를 선호했던 이중적인 잣대가 무너진 경우이다.
서태지의 1집은 이렇듯 그 전까지는 흔히 접하지 못했던 “새로움”으로 대변될 수 있다.
당시 낮설게만 느껴졌던 락과 댄스, 랩의 만남, 그리고 힙합과 우리 전통가락과의 융합 (2집-하여가)이 그렇고, 가사의 소재가 사랑 일색인 우리 가요에 저항 정신을 담은 것 또한 신선한 충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면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은 한국 대중 가요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 꿔 놓은 충격 그 자체의 앨범이다. 비록 이제는 촌스럽게 느껴지는 면도 없진 않지만, 그들의 앨범은 분명 우리 대중 음악사에서 한 획을 그은 명반임이 틀림없다.
『넥스트』
대중음악의 새로운 경험 ‘NEXT’의 1집「HOME」
인형의 기사 Part I
인형의 기사 Part II
도시인
TURN OFF THE T.V.
외로움의 거리
증조 할머니의 무덤가에서
아버지와 나 I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와 나 II
영원히
1992년 이미 N.EX.T(New EXperience Team)라는 팀명을 사용한 것을 보면 일단 음악적인 부분을 잠시 접어두고서라도 분명 여러면에서 한 발 앞서 나갔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데뷔앨범은 1집명「Home」에 걸맞게 ‘증조 할머니의 무덤가에서’, ‘아버지와 나 Part1, 2’등 실험적인 음악을 다수 수록, 비평가들의 찬사와 동시에 대중적인 사랑도 획 득한, 한마디로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앨범이다.
이 앨범은 발라드와 스레쉬메탈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와 국악까지도 결합시키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으며, 밴드활동의 약 조건들을 직시하고 있으면서도 음악적인 욕심을 져 버리지 않은 “도전적인 선택”을 하 고 있는 앨범이다.
그들을 언더락이라고 볼 수는 없을 지 몰라도 그들의 개성있는 실험 정신은 한국 락음악사에서 꼭 짚고 가야 할 부분이다.
이들은 우리 대중가요계의 여울목이 돼서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앨범들이다.
이 앨범들 이후에 비슷한 부류의 음반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도 많이 있어왔다. 이제 이들의 영향을 받고 흘러가는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에도 청출어람의 앨범을 만들 뮤지션이 나올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