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이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과 그 속에서 잃어가는 인간성과 만연되어지는 소외…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세기말이라서”란 말로 환치시킨다. 이런 세기말 증후군은 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나 미술, 음악 등의 문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음 대신 기계가 만들어 내는 음과 비트, 변조된 보이스를 쓰는 노래가 들려오고, 사이버 공간에서는 사이버 가수가 인기를 얻기도 한다. 이런 어수선한 세기말, 우리나라 대중 음악 씬에 새롭게 동참한 음악이 있다.이름하여 테크노!
테크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 강남과 홍대 부근에서 윤택한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적 풍요를 꿈 꾸는 젊은이들. 이들에게서 우린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매사에 익숙한 행동, 개방적이고 극히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겪는 만성적 스트레스와 초조, 불안감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테크노이다.
테크노 음악이 던져주는 순간적인 흥겨움과 신비함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사이 우리를 몰입하게 한다.
지금 보여지는 테크노 열풍이 일시적인 유행일지, 테크노가 하나의 안정적인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음악에 대한 욕심이 남다르고 새로운 음악 조류에 민감한 매니아나 신세대들에게 테크노는 남다른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음악 조류에 관한 갈증을 풀어주고자 이번 블루진은 “테크노”에 그 ‘포커스’를 맞추기로 했다.
연재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호에서는 테크노 음악의 전반적인 개괄과 테크노 왕국 영국의 테크노씬을 알아보기로 하고, 다음 호에서는 국내 테크노 씬에 대한 내용을 싣기로 한다..
테크노가 뭐야?
테크노의 최우선 목표는 신서사이저와 전자드럼류의 악기, 그리고 여러 믹싱기계로 음악의 기계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물론 이것에 대한 혹자들의 생각들은 어떤지 알수없지만… 하여튼!) 어쿠스틱 연주가 ‘손맛’이나 ‘필’을 중시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음악이라면, 기계적 정밀함이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의 음악은 바로 테크노 인 것이다.
테크노는 그 음악적 특성 때문에 많은 서브 장르를 거느리고 있다. 크라우트록(Kraut-Rock), 신스팝(Synth-Pop),하우스(House),앰비언트(Ambinet), 인더스트리얼(Industrial)일렉트로니카(Electronica) 등등…
테크노 음악이 뭔지 알기 위해서는 테크노 음악이 지켜야 할 몇가지 기본원칙을 짚어봐야 한다. 이는 테크노 음악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우선 테크노 음악은 반드시 전자 기기를 수반해야 하는 음악이다. 컴퓨터와 신서사이저의 사용은 기본, 그것들을 다시 많은 악기들과 첨단기기들의 접목을 통해 테크노의 음악 작업은 이루어진다.
두 번째로, 테크노는 반드시 전자음(인공의 소리)을 바탕으로 반복적이고 일률적인 사운드와 비트가 존재해야 한다. 이부분이 바로 테크노안에 존재하는 또다른 많은 장르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세 번째는 테크노 역시 음악을 섞거나 만드는 주체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주체는 다년간 음악 분야에서 노하우을 쌓은 캐리어의 전문 뮤지션이나 클럽 라이브를 통해 순발력과 감각을 익힌 DJ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테크노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져보기로 할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댄스음악과 테크노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현대 댄스 음악의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부터 알아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꼽는 댄스음악의 요소는 바로 사운드 이팩팅과 다양한 비트다. 이것이 바로 테크노가 누리고 있는 주요한 요소(사운드 이팩팅과 다양한 비트)와도 매치가 되는 것이므로, “테 크노=댄스음악”이라는 논리가 성립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위에서 말한 두요소(사운드 이팩팅과 다양한 비트)는 단지 최근에 형성된 테크노 음악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댄스가 존재하는 테크노에서 조차도 댄스는 테크노를 위한 하나의 구성 요소일 뿐이지만, 댄스 음악에서는 춤 그 자체가 목적이며 음악은 부수적인 도구가 된다는 차이가 있다.
결정적으로 테크노와 댄스뮤직 사이에서의 차이점은 바로 전자적인 그루브이다.(전자 그루브는 기계 사운드를 통해 인위적으로 조작한 리듬감을 동반한 적당한 비트를 의미한다) 댄스 뮤직 내에선 이런 전자적인 그루브가 필수이다. 하지만 테크노에선 전자적 그루브가 선택적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테크노에서 전자적인 그루브를 찾을수 있는 곳은 적당한 템포의 것에서만 가능하다.
영국 테크노씬에 대하여
흔히 테크노의 역사를 말할 때 우린 영국을 거론한다. 그 이유는 영국 테크노의 역사를 통해 테크노의 태동에서부터 변천, 그리고 현재의 대중화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영국의 테크노의 변천 과정을 되짚어 보면서, 우리는 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영국 대중 음악의 기술적인 발자취와 진보정신을 엿볼수 있다.
원래 테크노의 기원과 기본적인 틀을 구축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하지만 형식의 다양성과 실용성을 갖춰 다각적인 테크노의 붐을 일으킨 곳은 바로 영국이었다.
영국은 공업으로 일어선 나라이긴 했지만, 소규모 전자 제품이나 악기를 만드는데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관계로 영국의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악기를 구입할 수 밖에 없었으므로, 영국의 테크노는 테크노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선 중견 뮤지션들이나 비교적 생활이 윤택했던 인텔리 출신의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부유한 테크노 뮤지션들이 대부분이었던 탓에 그들이 표방한 사운드는 자기 도취적이고 약물과 연계를 맺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것들이었다.
74년부터 본격적으로 테크노 앨범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로 앰비언트의 대부인 브라이언 이노작품들이 속출했는데, 그는 글램적인 요소가 다분한 록시 뮤직(Roxy Music)에서의 활동을 끝으로 각종 프로젝트를 결성한다. 이후 패트릭 모라즈, 마이크 올드필드 등의 건반연주자와 리퓨지, 킹덤 컴 등의 밴드들이 신서사이저/키보드로만 일관된 음반을 발표함으로서, 테크노의 기 법상의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78년경엔 신서사이저와 드럼 머쉰만을 갖고도 음악을 하는 원맨 밴드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드디어 80년대 이후가 되어서 테크노는 댄스 음악과의 접목을 통해 영국 대중음악 씬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다시금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70년대 말엽까지의 매니어 취향, 또는 극단적인 실험 음악 형태의 테크노를 벗어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으로 변모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테크노와 댄스 뮤직의 접목이 어떻게 영국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었는가? 이것은 80년 대 초반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던 디스코가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쳐 주춤하면서, 이 시점에서 전자 음악의 힘을 빌기 시작하면서 발생한다. 전자음악(테크노)이 발달한 영국에게 기술적인 협력을 바라는 손길들이 미치기 시작, 이즈음부터 테크노는 그 세력을 독일에서 영국으로 옮겨오기 시작 한 것이다.
카바레 볼테어, 조이디비전으로 시작된 뉴 테크노 사운드(기복이 심하고 비트가 최소화된 사운드?)의 움직임은 휴먼리그, 디페쉬 모드등 팝과 테크노 댄스를 혼합한 음악들로 변모, 영국 음악의 부흥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까지 펼쳐진 일련의 음악들은 테크노라는 의미보다는 전자음악, 뉴 웨이브라는 의미로 통용될 뿐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80년대 말 앰비언트라는 장르와 인디펜던트라는 의미, 매니어용 댄스라는 구분이 알려지 면서 클럽과 소규모 공연장을 중심으로 분파가 갈리기 시작, 테크노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거 듭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들에 힘입어 테크노는 이제 메인스트림으로 돌변하게 되었고, 그동안 믹싱DJ나 스튜디오 맨에 불과하던 사이드 뮤지션들이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관중을 포섭하게 된다.
그후 록음악에서 보여지는 과격한 행동과 사운드를 선보인 프로디지나 케미컬 브러더스와 같은 팀들이 챠트 정상을 차지하는 빅히트를 하게 되면서 테크노는 완연한 대중 가요로 정착하게 된다.
90년대 말로 치닫는 현재의 테크노는 이제 브릿팝이라는 화두를 잠재우고 영국을 넘어 세계 각지에 그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는 영국 대중음악의 최고의 장르이자 글로벌 사운드가 되고 있다.
글을 접으며…
음악적 다양성에 있어 척박한 토양인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가수(이윤정, 신해철, 달파란, 클럽 테크노 밴드들(카사블랑카,데이트리퍼 등)..)들에 의해 테크노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테크노라는 것이 우리 정서에 얼마나 어필되어 뿌리내릴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번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세계적으로 새로운 열풍으로 다가오고 있는 테크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식견을 돕고자 시작했다는 것이다. 테크노는 단순히 춤을 추기 위한 BGM(Background Music)이 아니라, 춤과 많은 장비, 그리고 DJing 으로 구성된 철저하리만치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음악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수많은 하위 장르들과 타 장르와의 복잡한 연관성을 볼 때, 가벼운 외모와는 달리 뭔가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는 게 아닐까…
다음에는 한국에 상륙해서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노란 얼굴을 한 테크노’를 만나보기로 하자.
참고자료: GMV(97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