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매거진의 “블루아이즈”는 일본 대중문화(음악) 개방에 대한, 자유로운 발언대를 만련하고자 하였다.
필자들에게는 글의 소재만 제시하였을 뿐 그 방향이나 내용에 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것은 블루노이즈가 지향하는 “문화의 다양성” 만큼이나 중요한 “관점의 다양성”을 끌어내려는 의도였다.
글을 주신 분들은 의외로 하나같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정해진 수순이었다는데 암묵적으로 동의를 한 채 글을 시작하고 있다.
문제는 개방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기정 사실이 된 개방 문제에서 우리가 얼마나 주도권을 쥐고 우리 대중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일본 대중 문화개방은 어쩌면 기형적인 모습으로 소비자를 우롱하던 대중문화의 판도를 뒤엎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식당하느냐, 살아남느냐, 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무엇을 창조해내고, 무엇을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가 앞으로 고민할 우리의 관건이다.
글순서:
1. “일본 음악이 다가온다…” – 이소란(자유기고가) 2.
“문화시장 개방과 일본 음악” – 변영삼(강아지 문화/예술) 3. “그들은 시스템을 만든다.우리는 시스템에 맞춘다.” – 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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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음악이 다가온다…”
이소란(자유기고가)
일본음악이 다가온다……
정부가 지난 해 10월 20일 일본문화를 개방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의 문화를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1999년 들어 해방 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개방된 일본영화(하나비, 카게무샤)는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그리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하면서, 일단은 우리나라 영화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일본음악의 경우는 다르다. 위에 언급한 일본 영화의 경우,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가 개봉되기 전 여러 경로를 통해 영화를 관람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지 않은 것이지만, 음악이라는 문화는 영화와는 달리 그것을 듣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개방이 되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일본음악은 아직 공식적으로 개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10대와 20대에게 친숙한 음악이다. 그 비근한 예로 일본가요를 표절한 국내 가요를 들어보자. 곡의 소재에 궁한 작곡가들이 일본의 가요를 일부 혹은 전부 표절했다가 그만 수명이 다하는 경우가 꽤 빈번히 발생하며, 그걸 밝혀내는 장본인은 바로 국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일본가요 매니아들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락 그룹인 ‘X-Japan’의 팬클럽을 위시하여 ‘아무로 나미에’의 팬클럽 등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의 가요는 이미 동남아로 진출하여 자기들의 세력을 확장시키는 중이다. 외국 곡 인기차트에 등장하는 곡이 굳이 팝송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남아와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어에 많이 익숙해 있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 일본의 가요는 분명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댄스음악이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는 하나, 개인적인 견해로는 서태지가 1992년에 발표한 음악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우리나라보다 적어도 10년은 앞서 있는 일본의 댄스음악과 세련된 분위기의 뮤지션이 밀려올 경우, 새로운 것과 더 자극적인 것을 즐기는 국내의 신세대들의 시선과 취향이 일본음악으로 몰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일본의 연예계 매니지먼트는 놀라울 정도로 전문적이어서 가수를 하나의 상품으로 여긴 이상 최고의 이익을 내고자 노력할 뿐 아니라, 그 가수를 단기성 상품이 아닌 장기성 상품으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런 만큼 일본의 가요(Japanese Pop)에 대한 법적 제재가 풀릴 경우, 그들이 만들어 낸 상품의 힘은 아시아권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자라난 곡과 더불어 엄청난 힘을 나타낼 것이다.
혹자는 일본문화가 개방되면 최소한 음악 부문에 있어서 일년에 적어도 일 조원의 무역적자가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솔직히 그 규모가 얼마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엄청난 양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음악이란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하나만 소유하면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우려 속에서도 필자가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건 분명, 일본음악이 개방됨으로써 우리나라의 가요계에도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라는 거다. 철저한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일본을 뛰어넘는 음악을 만들어 내거나,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우리나라 만의 음악을 만드는 이들만이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수들을 일회용품 취급하거나, 상품성을 최고화 하지 않는 매니지먼트 회사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전문적인 가수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을까 하는 전망도 해볼 수 있다. -물론 이건 나의 바램이지만-
어쨌든 이제 일본음악의 개방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애국심에 호소해 우리나라의 가요만을 아껴 달라고 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우리나라의 가요 관계자들이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할 것인가를 지켜보자.
우리 또한 현명한 선택을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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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장 개방과 일본 음악”
변영삼(강아지 문화/예술)
현실적으로 가시화된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은 일단 ‘하나비’,’카케무샤’등의 몇 편의 영화를 첨병으로 이루어졌지만, 우려했던 것처럼 크나큰 사회적·문화적 파장은 일으키지 못한채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요즘 전반적인 대중문화씬의 실정이다.
그러나 이제 본격적으로 몰려올 일본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심각하게 재고를 해야할 시기가 왔다. 일단 그 범위를 좁혀 음악시장에만 국한해 보면 그 문제점은 크고 심각하다.
현재 음악계에서는 올 가을이후 본격적으로 음악시장이 개방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 다. 암묵적으로 일본음악을 표절 해대던 메인스트림 시장의 몰락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로부 터 예견된 부분이며, 거기에 최근의 경제 상황과 음반 시장의 불황, 공중파 방송의 쇼 프로 그램 축소 등이 이러한 예측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음악에 대한 개방시 점이 우리 음악시장의 판도 변화에 중대한 시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심 섞인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문화란 다양성으로부터 그 활력을 얻어 거시적인 변화를 해나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지녀야 한다. 음식문화와도 흡사한 습성으로 기호와 취향 역시 변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볼 때 자본의 논리와 문화는 또다른 모습을 갖는다. 현재의 주류 음악계에서는 변화의 필요성과 문화시장개방에 대한 위기의식 을 공유하면서도, 점유하고 있는 시장에 대한 경제적 구속으로 섣부른 모험과 실험보다는 안정적인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신년초에 NHK 방송에서 1주일간 매일 심야 시간대에 1998년 한해 동안 일본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음악 공연의 하일라이트를 방영했다. 필자는 쟝르별로 묶어서 방영하던 그 프로그램을 매일 보면서 하루하루 더해가는 두려움과 충격을 경험했다. 물론 일본에도 메인스트림이 존재하겠지만 그렇게도 다양한 음악에 대한 상당수의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과 공영방송에서 편견없이 보여주는 문화풍토에 과연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안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무엇보다도 지나친 편식위주의 음악 대중에 대한 다양한 메뉴의 제공이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은 96년도부터 싹트기 시작하던 클럽문화와 인디펜던트 레이블이 주도하는 차별 성있는 음악 제작 풍토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소수의 매니아에게도 충족될 수 있는 음악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인디음악은 기본적으로 소자본으로 자본대비 최대의 음악을 끌어내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 또한 기존 음악씬에서 접할 수 없던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화에 대한 정부나 국민의 자각이 없는 한 대중문화는 자생력을 가질 수가 없다.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진보된 음악을 하고 있는 음악인들만이 그러한 문화운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음악이 우리음악계를 재편할 힘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재편 이후 발생할 문제에 대한 주체적인 준비가 없다면 우리 음악계에는 일본문화의 뿌리에 우리 식의 열매가 달리는 기형이 판칠 것이다. 문화는 국민의 자존심이며 더 나아가서는 국력의 척도이다. 문 화개방은 당연한 것이지만 교류없는 일방통행은 위험한 것이다. 시장이 개방되었을 때 우리 가 그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문화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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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시스템을 만든다. 우리는 시스템에 맞춘다…”
정은영(블루노이즈)
일본 가요개방은 공연을 먼저, 출고 음반이 뒤를 잇는 순서로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정부의 발빠른 개방 원칙에 비춰볼 때 머지않아 일본 가수가 우리 무대에서 일본어 로 노래를 부르는 공연이 성사되리라고 관측하고 있다.
일본 대중음악의 최고 흥행사로 불리는 , 등은 대만, 중 국 시장 공략에 이어 한국 진출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음반 판매는 라이브 공연에 비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본 음악 사업가협회 가사이 이사는 [한일간에 환율격차가 크기 때문에 음반 판매는 라이 브 공연을 통한 사전 정지작업이 어느정도 이루어진 다음 본격적으로 진출이 가능할 것]이 라고 전망했다.
기획사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 빅 카드는 역시 아무로 나미에이다.
뛰어난 춤 실력과 가창력을 겸비 1990년대 일본 가요의 최고 슈퍼스타로 꼽히는 그는 국내 에도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일본측과 선이 닿아 있는 C사가 공연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공연의 1호는 ROCK 그룹이 차지할 공산이 크다.
일본 ROCK은 1980년대 말 슈퍼그룹 X-japan의 출현으로 이라는 독특한 쟝 르를 발전시켰고, 이들은 포크와 더불어 일본 음반시장의 판매량 70%를 차지할 만큼 초강 세이다.
요사이에 일본에서 화려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비쥬얼 ROCK이다.
음악방송의 PD들은 그들의 음악보다는 화려한 ‘외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현란한 외모와는 달리 가창력이 있었고 멜로디가 뛰어난 노래를 불렀다. 일 시적인 붐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비주얼 ROCK밴드는 고무로 사운드와 댄스 음악을 위 협하는 거대한 존재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비주얼ROCK’이 주류가 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GLAY의 기적.
그들은 고무로 데츠야조차 깨지 못했던 500만매 판매라는 벽을 돌파했다.
특히 시류와는 거리가 먼 ROCK뮤직으로 이같은 기록을 세웠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점이다.
한국을 위협할 일본 대중가요는 고무로사단이나 SMAP같은 수준 낮은 가요가 아니라 사잔 올스타즈, B’z, 스피츠, glay로 이어지는 수준 높고 수명도 긴 가수들이다. 연주와 보컬이 뛰어난 일본 ROCK그룹들이 한국무대로 몰려들면 젊은이들 사이에 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가수들과 대항할 수 있는 가수를 배출할 만한 토양이 갖추어져 있는가?
전문가들은 일본 음반이 한국 시장에 진출할 경우 점유율은 15%이상으로 점치고 있다. 홍콩, 대만 등의 동남아에서 10%선이며 일본 노래 표절이 범람한 한국 시장에서는 15%이상 을 점치고 있는 것이다. 10%만 잡아도 연간 60억이 일본으로 넘아갈 공산이 크다.
특히 일본 회사들이 한국 판권을 넘겨주지 않고 직배체제를 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럴 경우 국내 음반산업이 받을 타격은 훨씬 커질 전망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은 우리 가수와 음반이 일본에 본격 진출 하는데 따 른 이득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한국 댄스음악의 일본 침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 자체의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일본의 방어를 뚫고 나갈 힘이 있을 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일본 음악의 개방을 앞두고 당장 우리가 입을 손해, 문화 침략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한편으로는 일본 음악을 개방 함으로써 우리 나라 대중음악이 경쟁력을 높이 기 위해서라도 보다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으로선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지만, 선행돼야 할 것은 우리나라 대중음악계 에 고질적인 문제인 시스템 자체의 구조조정이다.
앨범 사전심의제도가 폐지 됐다고는 하지만 여러가지 방법에 의해서 계속 되어지는 규제들, 10대 들만의 견향한 스타상품 만들기 경쟁, 그리고 시청률만 생각한 잘못된 방송순위프로그 램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 대중 음악의 미래는 답답하게만 보인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실력있는 음악인을 탄생시키는 한 단계로 당연시 되고 있는 라이브 클 럽이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불법영업행위를 하는 장소로 밖에 취급받지 못하는 현실 하나 만을 보더라도 우리나라 음악이 왜 다양화 되지 못하고 있는지, 왜 일본음악이 들어오는 것 을 이렇게 겁내고 떠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바람직한 하나의 움직임으로 주류에 반대한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인디레이블 등이 서서히 시작을 알리면서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은 미약하기만 하다.
메이저와 언더, 주류와 비주류의 공존만이 탄탄한 대중음악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구성요 소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 대중 음악계는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언더그라운드와 인디 레이블을 발전시켜 절름발이가 아닌 보다 완성되고 뿌리있는 음악계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회용 가수 만들기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뮤지션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음악인을 양성 하는데 힘쓴다면 어떤 음악이 들어온다고 해도 우리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