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PD.
본명 조중훈.
지난해 말, 통신에서 뜨더니, 뜨고 나선 자신의 노래가 담긴 MP3 파일을 쌱 지우더니, 드뎌… 자신의 손으로 매만진 앨범으로 음반 시장의 ‘이변’을 불러 일으킨 스물 넷의 젊은 아해.
버클리 음대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대서 한번 더 참새들의 입방아에 오르다. 그의 노래에 들어있는 ‘비속어’의 찬람함으로 연일 신문이나 TV 뉴스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스타성’을 과시하다. 앨범의 제목대로 ‘스타덤’에 오르다.
기성의 질서에 도전하는 듯이 보이는 그의 노래를 듣고 사람들은 제 2의 서태지다, 천재다, 또라이다, 지독히도 머리좋은 비즈니스 맨이다, 왈가왈부… 말도 많다. 그의 원색적이고 솔직한 가삿말에 거침없이 섞여드는 비속어에 관해서도 너무 하지 않느냐,는 지극히 바른 생활맨의 관점부터 늘 쓰는 말인데 뭐 그러냐,는 생각 없는 옹호론까지 난립해 있다.
당연히 방송불가 투성이인 그의 노래 중에서 와 만이 방송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아해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만 지고…
그가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 글쎄… 그건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조건이 아주 딱 맞아 떨어진 데서 온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객관적인 조건이라 함은 우리나라 대중 음악계의 고질적인 병폐 -즉, 획일적인 장르의 독식과 나눠먹기식 챠트 문화, 마네킹같은 아이돌 가수들만이 판치는 현실에 있을테고, 주관적인 조건은 조피디의 음악이 그저 장난 함 쳐봤수다, 할 수준의 것이 절대 아니라는 데 있다.
그가 노래 가사에서도 얘기하고 있지만 그가 노래 속에서 쓰고 있는 욕은 시도 때도 없이 벗는 외설 영화처럼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선정적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조피디의 음악을 들으면 리듬과 랩의 딱딱 맞아 떨어지는 라임rhyme, 일관성 있는 노래의 메세지와 신선한 감각에 감탄하게 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아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시원히 대변해 주었다는 점에서 조피디가 서태지와 비교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서태지가 주류 내부에 존재했던 비주류면서, 새로운 장르의 개척과 창작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던 데 비해 조피디는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즐기면서 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조피디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믹싱하는 것 또한 새로운 창작 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새로운 음악 창작 과정을 보여준 조피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고, 그 좋아하는 이유 또한 제각각일 것이다.
‘힙합 프로듀서’ 조피디.
그의 출현은 우리나라 음악의 열악한 환경과 시덥잖은 도덕론 덕분에 더욱 화제가 된 건지도 모른다. 다양한 음악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게 되는 때가 온다면 그와 같은 수많은 아해들의 시도가 그저 또 하나의 음악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조피디의 앨범에 대한 심의 문제가 매스컴을 통해 대두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우려하는 ‘어른’들의 아우성이 높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조피디가 인기 있는 게 그 가사의 노골적인 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아해들은 아무도 없다. 그 욕 속에 담겨 있는 진실, 그 진실을 겁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제발, 그대로 놔둬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선정성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정치판 보다 더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인 게 있을 수 있냔 말이다.
우연히 맞아 떨어졌든, 철저한 계산 속으로 만들어졌든, 음악 천재든, 또라이든, 어쨌거나 저쨌거나 한 뮤지션의 음악은 그 음악으로 평가해야지 ‘도덕률’이나 ‘청소년 문제 어쩌구…’란 말로 심의의 가위를 다시 들어서는 안된다.
그것만은 정말 안된다. 정태춘이 울고, 서태지가 울고, 마광수가 울고, 장정일이 운다… 그리고 나도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