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1세기를 목전에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힙합”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그 유령은 공중파 방송의 음악 프로를 장악하기도 하고, 거리를 쓸고 다니는 젊은 아해들의 바지 자락 끄트머리에 찰싹 붙어 있기도 하다. 게다가 저 지하 음습한 “클럽”들에서도 언젠가부터 랩퍼들의 시니컬한 샤우팅이 울려퍼지고 있었으니…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랩을 모욕하지마”라거나, “너희가 힙합을 알어?”라고 딴지를 걸고 있다는 점이다.
하여, 중립을 빙자한 편향을 밥먹듯이 하는 블루노이즈에서 힙합의 정체를 까발리기 위해 괴나리 봇짐 하나 지고 거리를 나섰다는데…
[힙합아, 힙합아, 넌 어디서 왔니?]
힙합의 고향은 미국이다.
넓고 넓은 미국 땅 중에서도 흑인들이 모여 있는 슬럼가나 게토가 힙합의 고향이다. 흑인 문화권 내에서 발생한 힙합은 단순히 음악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이나 그래피티같은 다양한 요소를 포함한 “문화”이다.
흑인의 지역성이 강한 음악이다보니 지역별 계파가 존재하고, 그 계파간의 견제와 경쟁이 심하다. 흑인 슬럼가 문화와 힙합의 경쟁이 결합하여 치열한 배틀Battle이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제로 1990년대말, 이스트 코스트East Coast 대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간의 분쟁으로 투팩Tupac Shakur와 노터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가 죽은 일이 있었다.
[힙합아, 힙합아, 넌 뭐니?]
힙합 문화를 완성하기 위한 4대 요소로는 MCing, DJing, Tagging, B-Boying이 있다.
MC는 Mic Checker 또는 Mic Controller의 약자로, 관중들 앞에서 랩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단순히 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쓴 가사를 관중들 앞에 선보이는, 힙합의 ‘드러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DJ는 Disc Jockey의 약자로 MC에게 음악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요즘은 디지털음악재생기구들이 많이 발달해 있어서 MC와 팀을 이루어 활동하던 옛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DJ의 역할이 축소되었지만, 아직 많은 DJ들이 프로듀서로 활동하거나 DJing을 하나의 음악 장르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Tagging은 Graffiti Artist들이 작품을 완성하고 자신들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이런 아티스트들을 Tagger라고 부르기도 한다) Graffiti Art는 벽이나 전철, 다리 교각 같은 곳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독특한 모양의 글자, 그림, 문구를 그려넣는 것을 말한다.
“범죄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는 최근에는 당당히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B-Boying에서 “B”는 Breaking(Break dance)을 가리키며, B-Boy(B-Girl)는 브레이크 댄스를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을 가리킨다.
[코리안 힙합?]
국내에서 힙합 문화는 10대를 중심으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힙합 본래의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문화”로서의 측면보다는 (패션) 스타일로서의 힙합이 더 강조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주류 음악 내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어지는 “힙합”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힙합의 형식을 차용한 “가짜”가 대부분이다.
HOT가 힙합인가? GOD가 힙합인가?
진정한 힙합이 뭔지, 누군가가 “나만이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하지만 분명한 것은 힙합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함과 진실성이라는 점이다. 어떤 것을 표현할 것인가는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공통된 힙합 무드는 솔직함과 진실성에서 나온다는 것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힙합 음악에서 언더냐 오버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힙합음악이 삶을 비춰내는 거울이라 했을때, 다른 사람이 만든 가사로 랩을 하는 것은 힙합 정신을 무시하는 일이 된다.
힙합 음악에서는 랩을 통해서 힙합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란 말이다. 랩에서 랩퍼 이외의 창작자는 있을 수 없단 말이다. 결국 음악 그 자체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하단 말이다.
(말도 안되는 라임이 나도 모르게… ^^”)
언더에서 잔뼈가 굵은 국내 힙합의 ‘어르신’격인 갱톨릭의 임태형 군(물론 나이와 외모는 ‘어르신’이 되려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은 “랩의 창작”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의도적으로 만들거나 사회 비판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여기서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뭔가를 얘기해야지, 라고 생각해놓고 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랩 만들 때 생각나는 부분, 상황, 그런 것들을 그 때 그 때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우리들의 랩이다.
랩을 만들 때 사회의 모순이 떠올랐다면 그대로 가는 것이고, 사랑에 관한 절실한 감정이 들면 또 그 내용대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메세지가 작위적이면 안되는 게 랩이다.”
[Nature Born a Hip-Hopper? Orthodox Hip-Hop?]
힙합의 원조는 분명히 “미국 내의 흑인 문화”다.
“정통”과 “한국적인 코드를 가진” 힙합의 간격은 어떻게 메꿀 것인가?
그 간격을 꼭 메꾸어야만 하나? 그래야 제대로 된 힙합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걸까?
힙합의 기본 정서와 내용을 지킨다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힙합 문화”라는 것을 하나의 그릇으로 쳤을 때, 그 그릇을 가지고 와서 밥을 담든지 물을 담든지는 주체의 마음이다.
드럼 톤 하나에도 자기의 철학을 담을 수 있는 것이 힙합 음악이니만큼 자기만의 스타일과 솔직성이 중요하다. 결국 “정통”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생이 정통이다’. 자생은 내 속에, 한국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언더씬 내에서 음악 장르가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 힙합 음악 역시 그 다양한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음악 장르가 다양하게 발전한다는 것은 음악의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클럽 “마스터 플랜”을 중심으로 “가리온”, “Dope Boyz”, “Side-B”, “Who’s The Man”, “PDPB” 등의 힙합퍼들의 약진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다음 편 예고!!!
주류 힙합 앨범과 언더 힙합 앨범의 비교분석!
이름하야 “『1999 대한민국』VS『블렉스』
*『블렉스』는 [강아지 문화/예술]에서 나올 예정인, PC통신 ‘흑인음악동호회 블렉스’의 힙합 앨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