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오랜동안 구전에 의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구전에 의한 학습은 철저한 실기 위주로 스승의 소리를 잘 이어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에서 판소리 교육이 실시되면서 구전에 의한 방법으로는 많은 학습 성과를 올리 수 없게 되었다. 구전에 의해서 판소리를 전수해 왔기 때문에 판소리 교육현장에서는 체계적인 학습 이론이 정립되지 못했고, 마땅한 교습 악보 조차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판소리를 전수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는 옛날의 판소리 전수 방법과 오늘날에 전수 방법에 있어서 일어나는 변화들 그리고 그 대안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렇게 배워왔다…
고대 서양철학에서도 스승에 의한 학파가 있었다. 중국의 무술에도 그 스승에 따라 달라지는 무술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판소리가 그런 맥락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판소리도 배우는 지방 그리고 스승에 따라서 색깔이 달랐던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판소리를 배울때는 여러군데를 교육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한 스승밑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스승으로 부터 판소리를 배울때는 먼저 스승의 집으로 들어가거나 스승의 집근처에 거처를 정하고 24시간 소리 교육을 받는다. 소리 교육을 받는 방법도 스승이 한소절을 부르면 제자가 한소절을 따라서 하는 방법이었다. 그런 방법으로 스승이 가지고 있는 모든 창을 익혀가는 단순한 방식의 교육이 이뤄졌 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스승밑에서 배운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의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스승이 가지고 있는 창을 익히고 나면 “독공”이라는 과정에 들어가게 됐다. “독공”은 혼자서 자신만의 소리를 깨닫는 것을 말하는데, 이 “독공” 과정이 아주 어려운 것 이어서 누구나 이 과정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옛말에 독공의 과정이 힘듦을 표현한 말이 있다.
“광대 집안에 명창 하나 나기가 양반 집안에 정승판서 나기 보다 어렵다”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치는 과정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스승에 따라 가르치는 방법도 달랐다.
예를들어, 명창 박동진옹 같은 경우에는 소리를 죽 불러주신 뒤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면 그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가르친 내용과 내일 가르치는 내용이 다를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럴때 학생이 “선생님 어제는 그렇게 안 가르쳐 주셨습니다.”라고 하면 “후리 아들놈! 네가 선생해라” 하시면서 북통을 제자 가슴팍에 안겨주고 나가 버리셨다고 한다. 그러면 그날 소리공부는 그걸 로 끝나는 것이었다.
정정역 선생의 교습법도 마찬가지 였다고 볼 수 있다. “소리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즉 광대의 수완이다. 특히 남자 소리는 재 봉트 박음질 하듯이 박음 소리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두가지 실례를 보면 판소리의 즉흥성을 알 수 있다. 판소리라는 것은 “독공”에서 득음을 한 명창들에 의해서 계속 변화되어 왔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전통에서는 사람이 음악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식으로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악이 달라지고 사사계보에 따라 음악 내용이 달라져 왔다.
구전에 의한 현장교육방법이 음악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즉흥성과 청중들의 취향에 맞출 수 있는 적응 능력을 기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판소리가 대학교육에 수용되기도 하고, 판소리라는 것이 광대들이 하는 광대들만의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옛날과 같은 구전에 의한 방법으로만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졌다.
이런 구전으로 전수되는 방법들이 바뀌게 된 것은 옛날에 우리가 유성기라고 말했던 기계가 출연하면서 부터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녹음기가 그것이다. 녹음기가 팔달하면서 판소리 전수를 받는 것이 꼭 스승에 의해서가 아니고도 가능하게 되었다. 악보와 녹음가기 있으면 판소리를 배우는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날에 명창들이 배웠던 대로 그 성장환경은 가질 수가 없고, 또 판소리를 배우는 시간도 충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비교해 보자면 빠른 시간내에 받은 교육이므로 시간도 충분하지 못하고 학습량이나 형편도 옛날보다 좋지 못하게 됐다. (옛날에는 쉽게 명창이 되는 것이 아니었고, 판소리를 배우고 나서도 득음의 시간까지 많은 시간이 걸려서 배웠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하게 되기는 했지만 옛날과 같은 명창은 그리 쉽게 만나볼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악보에 의한 교육에 대해서 “악보에 연연해 배우게 되면 국악의 맛이 제대로 안나고 ‘악보 정확히 읽기’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악 교육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단점을 지적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음악이 전적으로 악보에만 의존하여 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을 이용하여 가르치는 스승이 있으므로, 악보를 통한 교습행태를 보완해 가면서 새로운 방법의 완충된 교육방 법을 만들어 간다면, 옛날 교육방법의 장점과 현대에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의 장점이 보강된다면 우리 판소리의 새로운 전수 방법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