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공연의 황무지이다. 인기가 있는 댄스그룹들은 도저히 공연을 할 수 있는 실력들이 안 되고, – 춤만 보여주는 거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 실력이 있는 진짜 뮤지션들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마련하여, 자신의 이름을 건 공연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위치에 오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혹 그런 위치에 오른다 해도 마땅한 공연장이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현재 서울지역 내에 있는 대중음악 전용공연장은 5개 정도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100석에서 200석 정도의 좌석을 가지고 있는 소극장 (무대에 서면 제일 뒷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까지 보이는 말 그대로의 소극장)이다. 이 몇 안 되는 공연장들의 공연일 수가 3백일을 넘지 못하니 이것은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또 다른 고민거리이다. 1994년 개장이래 가장 많은 공연이 열렸고, 우리나라 라이브 문화를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라이브극장마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2개의 공연장 중 하나의 문을 닫아야만 했던 것을 보면, 다른 공연장들의 모습은 말하지 않아도 눈에 훤히 보일 것이다.
변변한 공연장을 찾을 수 없는 이 같은 상황은 국내 공연문화를 극도로 위축시켜, 방송이 신곡전파, 공연의 유일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이 결과 우리의 가요계는 가창력 보다 얼굴이나 댄스로 한 몫 보는 비디오형 10대 가수들만이 판치고 있다. 이렇게 기형적인 우리의 대중음악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음악인들이 대중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그렇다고 많은 돈을 들여 공연장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클럽이다. 공연장을 대관하기 힘든 음악인들이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곳, 가까운 곳에 앉아서 서로 호흡할 수 있는 곳. 그러나 우리나라의 클럽들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형법상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여러 명이 연주를 할 수 있는 사업장은 소극장과 유흥업소 등 몇 곳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자금력이 있는 일부 클럽은 유흥업소 허가를 받아서 공연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클럽의 주인들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 만으로 클럽을 운영하기 때문에, 재정이 풍부하지 않은 데다가 클럽이 대학가 근처에 자리한 관계로 유흥업소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이 받는 것은 일반음식점 허가이다. (우리는 일반음식점에서 밥 대신 음악을 먹는군요.)
각설하고. 다들 잘 아는 이야기겠지만, 일반음식점에서는 통기타같은 무증폭 -언플러그드라는 말이 더 친숙하실려나???-악기를 들고 한 사람이 연주하는 것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즐겨보는 시끄러운 공연은 자동 불법이 된다. 그럼 법을 어기는 경우 어떻게 되는가는 다들 잘 아는 이야기. 바로 홍대 클럽 메카 중의 하나, 프리버드 꼴이 되는 것이다.
영업정지와 벌금형. 그 벌금이라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자그마치 6백만원. 몇 달 동안 고생고생 해가며 운영해야 나오는 돈을 그 놈의 법이라는 것이 모조리 몽땅 쓸어 가버리는 것이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들이 있나. 이렇게 많은 벌금을 몇 번 내고도 살아 남는 클럽이 있으면 한 번 나와보라지. 그래서 다들 외친 것이 바로 클럽의 합법화이다.
기자회견까지 해가며 정말 오랫동안 열심히 외쳐댄 결과였을까.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요즘 들려온다. 또 클럽 합법화를 위한 공연이 문화체육부의 천만원이라는 엄청난 재정지원 아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다는 들뜨는 이야기도 들리고. 클럽이 합법화 됨으로 해서 우리가 받을 혜택은 무엇일까.
일단 벌금을 낼 필요가 없으니 벌금 내다가 클럽 문 닫을 일이 없어질 것이다. 안 낸 벌금만큼 클럽의 사정이 조금은 더 좋아지면 아무래도 공연 기자재도 좀 더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클럽이 돈이 없는 관계로 죽어라 공연하고 돈 한 푼 못 받는 가난한 밴드들의 주머니도 조금은 짤랑거리겠지. 그뿐인가. 공연도중 갑자기 들이닥치는 경찰들 때문에 공연이 엉망이 되는 일도 이젠 안 일어날 것이다. 물론 다들 무척이나 낙관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하지만 클럽들도 이 기회에 반성을 해야 한다. 어느 클럽이나 무대에 서는 밴드들이 비슷비슷 하다. 게다가 다들 요즈음 언더계의 주류음악인 힙합과 하드코어 그리고 모던 락 밴드들 뿐이다. 한 마디로 클럽의 색깔이 없는 것이다. 돈 벌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하지만 때로는 돈 안 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이는 세종대왕의 뜻이기도 하니까…
클럽의 환경이 바뀐 만큼 클럽에서 음악을 하는 이들과, 음악을 들으러 다니는 이들의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언더에서 음악하는 거 절대 자랑이 아니다. 음악이 좋아서, 음악이 너무 하고 싶은데 지금 도저히 언더에서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좋다. 멋진 일이다.
그렇지만 언더에서 음악하는 것을 멋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좀 알아본다고, 인기 좀 얻었다고 금방 겉 멋 들어서 음악은 팽개치고 여자나 사귀고, 잘난 체 하는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음악을 하는 것을 삶이고 치열한 전쟁이어야 한다.
음악 듣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음악 팬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너무나 배타적이다. 펑크가 유행이라면 펑크만, 하드코어가 유행이라면 하드코어만 들으면서, 다른 음악은 들어보지도 않고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뿐인가. 자기랑 다른 음악을 듣는 이들은 무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잘난(?) 인간들은 조금 세월이 지난 우아한 노래를 들으면서 펑크나 하드코어를 좋아하는 인간들을 무식한 집단 취급하는 “고급 청취자들”이다. ) 공연도 내가 좋아하는 밴드 공연만 본다.
음악을 정말 사랑한다면 아무나 보고 아무거나 듣자. 토요일, 일요일에 공연하는 그룹만 멋진 건 아니다. 지금 주말의 클럽을 장식하는 밴드들도 전에는 평일날 5~6명의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했던 사람들이다. 진짜 진주들은 평일의 밴드들 속에 숨어있다. 솔직히 평일날 저녁 할 일도 없지 않은가. 고등학생들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다들 변하자. 다들 변해야 클럽이 살고, 언더의 밴드들이 살고, 우리의 대중음악계가 산다. 단지 법만 변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