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힙합 동호회 블렉스의 힙합 앨범 『검은소리』와 오버그라운드 내의 힙합-꼭 그렇다고 얘기할 순 없지만- 뮤지션들이 총출동해서 만든 프로젝트 앨범 『1999 대한민국』을 번갈아 듣노라니, 삐질삐질 웃음이 나온다. 흠… 둘 다 재밌는걸.
먼저, 좋은 얘기부터 해야겠지…
“검은소리”와 “1999 대한민국” 둘 다 아주 잘 만들어진 앨범이다.
“검은 소리”의 경우,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힙합퍼들의 공동작업으로 힙합 본연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 노력이 엿보이는 앨범이다. 그리고, “1999 대한민국”의 경우, 오버그라운드에서도 특별히 뛰어난 랩퍼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멜로디와 다양한 장르의 포섭이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앨범이다.
두 앨범 다 랩퍼들에게 랩의 창작을 맡겼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랩의 창작자는 랩퍼 이외에 있을 수 없다는 힙합의 불문율을 지키는 것이었다.
“1999 대한민국”에 김진표가 있다면, “검은 소리”에는 “가리온”이 있고, “1999 대한민국”에 윤미래가 있다면 “검은 소리”에는 이새롬이 있다. 랩퍼들의 개성과 어우러짐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점도 두 앨범에서 보여지는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 두 앨범이 가지는 차이점은 단순히 메이저 레이블에서 나왔냐, 인디 레이블에서 나왔냐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힙합에 대한 해석 역시 많이 다르다.
우선, 힙합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해하기 십상일 특징을 이 두 앨범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게 무어냐…하믄,
“1999 대한민국”에는 사회비판적인 메세지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고, “검은 소리”에는 오히려 개인의 좌절과 꼬인 속내들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생각하는 ‘힙합 정신 = 사회비판/메세지’라는 도식을 떠올린다면,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진짜 힙합’으로 검증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가 사회비판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고정된 ‘힙합 정신’이란 게 있을 리 없잖은가!
“랩퍼 자신의 솔직한 얘기를 하는 것”이 랩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삶과 상황속에서의 진실성, 그것이 바로 랩퍼의 진실이지 않을까.
“1999 대한민국”에서 반복되는 ‘세상을 바꾸자’는 메세지는 현실적인 울림 보다는 계몽적 당위성 혹은 소위 말하는 “힙합 정신”에 맞추기 위한 억지로 비쳐진다. 그에 반해 “검은 소리”는 젊은이들의 ‘거리의 언어 노이즈’를 여과없이 쓰고 있지만 그것이 치기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솔직함으로 여겨진다.
힙합에서 주류와 비주류란 무의미한 말이다.
하지만, “1999대한민국”은 오버그라운드에서 활약하던 많은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사이드” 작업물이다. 그런만큼, 이들의 앨범은 듣기 좋은 달착지근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재즈나 발라드, 클래식, 트롯까지 리메이크 해가면서 들려주는 랩은 그 자체로 보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분명히 앨범이 가지는 장점과 미덕이 될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너무 미끈해서, 너무 광범위한 사회 문제를 얘기해서, 그리고 결론은 장미빛 미래,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공허한) 긍정적인 외침일 뿐이라서 …솔직히, 조금 정떨어진다.
삐딱한 나로서는 밸이 꼬인다.
통일과 청소년 문제와 전쟁과 매춘…등등의 사회적인 문제를 소재 삼는 것도, 힙합을 가장한 다른 아류들보다 보다 근사한 스타일로 포장한 것일뿐 다른 게 뭐가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너 자신의 얘길 하란 말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검은 소리”는 그런 점에서는 랩퍼 개인이 보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얘기를 솔직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 미덕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실력에서 뒤지지 않지만, 뭔가가 삐걱거리는 느낌…
이러 저러한 미흡한 요소들을 언더의 한계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더 이상 그런 얘기가 변명으로 통해서는 안될 것이다.
“검은 소리”의 트랙들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한 것은 전체적인 색깔 속에서 중간 중간 돌출되는 트랙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앨범은 “1999 대한민국” 보다 ‘대중성’은 덜하겠지만, 힙합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다.
랩의 메세지에 대한 강박이 없다는 것 또한 이 앨범이 “1999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다른 힙합 앨범과 다른 점이다.
이와 비근한 예로 “갱톨릭”의 앨범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갱톨릭의 앨범은 분명히 사회비판적인 메세지를 강하게 담고 있지만, 그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에서 공허하지 않고 설득력을 가진다.
“1999 대한민국”은 잘 만들어진 앨범임에는 틀림 없다.
사더라도 본전 생각이 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참여 뮤지션들의 유명세 덕분에 조금은 과대 평가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다. 그리고, 진정한 힙합이냐 아니냐라고 얘기할 필요는 없지만, 힙합의 전형화를 만들 우려도 있다.
말하자면 그들이 존재한 자리가 오버그라운드였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거리의 젊은이’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면, 그것을 지금 대한민국의 힙합 정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검은 소리”가 아마 조금은 답을 줄 지도 모르겠다. “1999 대한민국”보다는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게 뭐 대수겠는가.
…두 앨범을 비교하면서 어느 한 쪽에 손을 번쩍 들어줄 수 없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고, 매력이 있고, 한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두 앨범은 국내 힙합의 성과물이라고 여겨진다.
지금 우리나라 힙합 씬은 과도기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 언더에서나 오버에서나 힙합의 춘추전국 시대라고 할 만한 지금, 모두가 찾고 있는 그런 정답(“진짜 힙합”, “본연의 랩”)은 애초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