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라이브 클럽은 신중현, 패티김, 윤복희 등 뛰어난 음악인들을 배출하면서 음악의 메카로 성장했었다.
하지만 박정희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라이브 클럽의 명맥은 끊기게 되고, 오랜 암흑기 끝에 1990년대 초에 등장한 클럽들은 대중음식점이라는 허가 아래 공연이 불법화되고 만다.
10년에 가까운 불법의 세월 후, 일본 문화 개방에 앞서 그 대안은 클럽 문화밖에 없다는 정부의 인식하에 라이브 클럽은 드디어 합법적인 ‘문화공간’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6월 13일 젊음을 대표하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전국의 클럽이 주최하는 가운데 24개 팀이 참가하는 국내 초유의 최대규모의 자축 페스티벌이 열리게 된다.
그럼 여기서 클럽들이 발표한 선언문의 일부를 보도록 하자.
“이 공연은 안으로는 라이브 클럽을 지켜온 모든 사람들의 축제이자 밖으로는 라이브 클럽의 관객 층을 대중에게로 확대시켜 우리 나라의 공연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공연에는 전국의 각 라이브 클럽에서 추천한 밴드와 클럽의 활동을 통해서 어느 정도 지명도를 획득한 밴드 중 참여의사를 밝혀온 밴드 그리고 후배들의 잔치를 축하해주는 선배밴드들로 구성된 총 24개 팀이 참여한다.
아울러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열심히 음악생활에 전념하고 있는 전국의 라이브 클럽 밴드와 그 밴드에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주고 있는 라이브 클럽 운영자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하며 이 행사가 내년에도 이루어져 보다 많은 밴드가 참여할 수 있는 페스티벌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1999년 6월 13일의 대학로는 묘한 설레임으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7월 1일 라이브 클럽이 합법화되면서 이를 축하하기 위한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취지로 개최된 공연은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로를 찾은 사람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긴 체 끝나고 말았다.
클럽 합법화는 축하할 일이고, 언더그라운드 음악인이나, 언더 매니아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이번 공연은 어느 공연보다도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클럽의 미래가 막막해 보이기만 하던 때, 클럽 합법화 기념 공연을 할 지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공연에 관해서는 일단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스러운 공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주최측에서 이런 저런 어려움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 하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행사였는데 사전준비의 부족함이 못내 아쉬웠다.
이날 공연에서 출연 팀은 서울과 지방의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팀들과, 클럽에서 활동하다가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어 지금은 그래도 유명 밴드가 된 팀들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출연 팀을 보면,
서울의 클럽에서
큰바위 얼굴(프리버드), Wounded Fly(빵), 리디안(재머스), AD18-292413(타임투락), 가나안(트럭), 힙합팀(마스터플랜), Loop(롤링스톤즈), O.H.N(S.H),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코다), 은희의 노을(스팽글), 조선펑크프로젝트(드럭), 모레인(피드백), 마마새드(락커) 총 13개 팀이 출연했고,
지방 클럽의 팀으로는,
내추럴푸드(인천 락캠프), 시(대전 룩스), 해머(대구 헤비네), 스틸(광주 메탈리카), 더 키취펜슬 (부산 네로), 오뎅국물(제주 레드제플린) 6개 팀.
게스트로는,
99, 크라잉너트, 황신혜밴드, 마루, 이발쑈포르노씨 의 5팀이 출연했다.
공연 시작하기 두 시간 전에 공연 장소인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했지만, 좁은 객석은 이미 관객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만큼 이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연을 보러오는 사람들에 비해 공연장이 너무 비좁았다. 개방된 무대가 아닌 장소라서 – 마로니에 공원의 무대는 물론 개방돼 있다. 하지만 일정 사람들이 서면 그 나머지 사람들은 무대를 조금도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 아무리 뒤에서 까치발을 하고 선다고 해도 도저히 무대가 보이질 않았다(필자도 왠만큼 사람이 많은 곳을 뚫고 들어가는데는 자신이 있지만 이날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
그런 점을 감안해서 주최측에서는 무대와 조금 떨어진 마로니에 공원 중앙에 멀티비전을 설치했다.
멀티비전이라도…하는 심정으로 멀티비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그러나…
햇빛 쨍쨍한 야외에서 멀티비전의 화면이 잘 보일 리가….
멀티비전 옆에 설치돼 있던 육중한 스피커들은 자기 본분을 잊어 먹은채 아무 소리도…
클럽 합법화를 기념하는 공연이어서 그 행사의 의미가 중요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행사의 의미 때문에 공연하는 밴드들과 관객들이 많은 부분을 이해해야만 했던 공연이었다.
공연을 위해서 밴드들이 지방에서 올라왔지만 겨우 2곡만을 선보이고 무대를 내려가야 했고, 그 2곡도 중간에 시스템의 문제로 제대로 연주하지도 못한 팀도 있었다. 그리고 관객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클럽합법화’를 축하하기 위해 왔지만, 공연의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그 공연의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 보다는 짜증을 내고 돌아와야 했던 결코 뒤가 개운치 않은 공연이었지 않나 싶다.
이번 공연은 클럽 합법화를 축하하기 위한 기념적인 공연이었고, 그 의미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역사적인 것이다. 하지만 유례없이 큰 공연이었기 때문에 완벽한 준비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아쉬움이 남았던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인 공연이 회를 거듭해 갈수록 보다 의미 있고 완성된 페스티벌의 형태로 발전해 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