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오래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 인디 음악 씬은 특정한 장르에 전체 씬이 기울어져 있다는 특성 아닌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주류 음악의 장르 독식에 버금갈 정도로 한 장르의 유행과 편향에 기울어진 인디 씬의 모습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편식으로 앓아 누워있는 어린아이의 형국이었다.
하지만, 인디씬이 그 나름대로의 지평을 넓혀가고,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서서히 안정된 구도로 접어듬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의 음악들이 속속 출몰하게 되었다. (오히려 어쩌면 여러가지 모습의 음악들이 인디씬의 안정된 구도를 이끌어 냈는지도 모르겠지만)
인디 씬 내의 다양한 음악 장르 중에서도 “모던 락”은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장르이다.
‘언니네 이발관’이나 ‘미선이’, ‘델리스파이스’, ‘은희의 노을’, ‘에브리 싱글 데이’, ‘마이 앤트 메리’ 등으로 대표되는 인디 모던 락은 조용하지만 꾸준히 많은 팬 층을 확보해 온 경우이다.
라이브 클럽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펑크나 하드코어, 하드 락 등의 밴드들과는 달리, 모던 락 밴드들은 공연 활동 뿐만 아니라 앨범을 통해서 더 많은 팬들을 양산해 왔다.
이들의 음악적인 특징은, 주류의 발라드와도 다르고, 인디의 타 장르와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섬세하고 안정적인 사운드, 유치하지도 식상하지도 않은 참신한 가사말로 대변될 수 있는 이들의 음악을 “모던 락”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버리기엔 밴드 마다의 개성이 너무나 독립적으로 존재하긴 하지만…
정통 하드락이나 펑크, 혹은 하드 코어만이 존재했던 인디 씬에서 이들의 출현은 “새로운 경향”임에 틀림이 없었고, 모던 락의 출현과 발전은 인디 씬의 발전을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인디 음악하면 우선 시끄러운 사운드와 요란한 무대 매너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지극히 점잖고 범생이다운(?) 모습은 주목할 만한 꺼리였다. 이들의 사운드는 공통적으로 단순하고 “느낌이 좋은” 락의 기본적인 사운드와 팝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테크닉이나 깜짝쇼같은 기발함 보다는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에 충실한 것 또한 특징이다.
인디 모던락의 선구자이자 대부격인 밴드로는 ‘언니네 이발관’을 들 수 있다.
밴드의 탄생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던(이에 관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궁금하신 분들은 제게 멜 주십쇼) 이들은 그때까지 은연 중에 존재했던 ‘잘하는 음악=좋은 음악’이라는 공식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들의 데뷔 앨범인 [비둘기는 하늘의 쥐]는 음악적 기교로만 본다면 꽝일 수도 있는 앨범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코드에 못하게 들리는 연주에도 불구하고 ‘경쾌하고 슬픈’ 느낌의 음악들은 더 없이 예쁘기만 했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들만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당시 대중 음악씬에 대해서 나 와 같은 노래로 차분히 비꼬기도 했다.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은 멜로디를 중시하고 있었고, 음악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시도조차 안했을 코드 진행과 곡 구성을 보여줬다. 그것은 의외로 느낌이 좋은, 획기적인 것이 되었다.
그리고 ‘델리스파이스’.
‘맛있는 음악’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음악은 당시 인디 음악 내의 ‘조용한 반란’이었다.
라는 노래가 라디오 방송을 점령하면서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려진 이들의 특징은 쉽지만 평범하지 않은 가사말과 독특한 멜로디에 있었다.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가사말이나 멜로디의 개성을 얘기하자면 ‘미선이’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미선이’의 음악은 친근한 이미지 톤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운드에 그 특징이 있다. 살랑거리는 멜로디와 자연스러운 느낌의 보컬이 듣기 좋은 미선이의 음악은 그러나, 절대 평범하지는 않다.
그들이 달콤한 멜로디로 부르고 있는 노래는 개인의 삶 속에서 느끼는 소외와 아픔이고, 언론에 대한 불신과 역사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위에 거론한 밴드들 외에도 개성있는 보컬 톤과 ‘노을’과도 같은 사운드로 사랑받고 있는 ‘은희의 노을’과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깔끔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마이 앤트 메리’, 경쾌한 느낌의 70년대 락 분위기의 ‘에브리 싱글 데이’등이 우리나라 인디 모던락 씬의 뿌리를 다지고 싹을 틔우고 있다.
**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모던 락 밴드의 앨범으로는
‘언니네 이발관’의 『비둘기는 하늘의 쥐』,『후일담』
‘델리스파이스’의 『델리스파이스』,『Welcome To The Delihouse』
‘미선이’의 『Drifting』
‘은희의 노을’의 싱글 앨범『Spring』
‘에브리 싱글 데이’의 『에브리 싱글 데이』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