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명 락 밴드들의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여러 유명팀들이 자주 공연을 갖는 일본과는 달리 무척이나 고상하고 도덕적인 사고방식을 지니신 문화계의 원로님들 덕에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가사와 외모를 지닌 가수들만이 내한공연을 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당연히 락 음악팬들은 공연에 굶주려 있을 수 밖에. 지난 40년 동안 우리나라를 찾은 팀들은 대체로 한물 갔거나 그리 유명하지 않은 팀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올해 열린 트라이포트 공연은 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니 존재여만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 바쁜 사람들의 집단이 만든 공연은 그야말로 졸작이어서 사회의 이방인들인 락 음악 팬들이 다시 한 번 사회에 불신을 품게되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정말로 그렇지만.. 다시는 락 페스티발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우리 주제에 무슨.. 이라는 비관적인 생각만은 하지 말자. 이번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안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다시 한 번 이러한 대규모의 락 콘서트가 열린다면 조금은 깨어있는 그리고 조금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정말 락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대한민국 사람들의 자존심 문제가 아니던가!
가까운 일본에서 열리는 후지 락의 경우를 보자. 1997년 시작한 후지 락은 올해로 3회째를 맞으면서 엄청난 규모의 공연으로 자라났다. 1회 때 3만 명이었던 관중은 올해 9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밴드들의 수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올해는 전 세계를 강타중인 림프 비스킷 Limp Bizkit, Rage Against the Machine, 블러 Blur, 케미컬 브라더스 The Chemical Brothers 등 유명한 밴드들이 콘서트 무대에 섰다.
하지만 후지 락도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1997년 열린 1회 공연 이틀째 날 태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공연을 취소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 해 더 뛰어난 장비와 뮤지션들로 공연을 주최했고 1회보다 2배는 더 많은 6만 7천명의 젊은이들의 혈기로 인해 성공적으로 페스티발을 마치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다시 공연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필요한 건 과감한 투자이다. 환경에 대한 과감한 투자. 물론 운도 따라야겠지만 올해 열린 트라이포트같은 환경에서 다시는 팬들이 공연을 봐서는 안 된다.
공연장의 현실이 어떠했는지는 이미 많은 경로를 통해 말을 들었을 것이다. (블루아이즈 참고) 그곳은 정말로 끔직한 곳이었다. 유명한 뮤지션들을 무대 위에 많이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생이 엉망인 곳에 사람들을 처박아 놓고는 그저 참아라, 혹은 너희들은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 고마운 줄 알아라는 식의 방만한 태도는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우리는 아무데나 던져놓아도 되는 물건들이 아닌 것이다.
그 곳에는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몸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샤워장, 깨끗한 공중 화장실,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장소, 절대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상점들, 잡상인들 출입금지, 마음 편안히 놓고 밟을 수 있는 땅, 물이 잘 빠지는 배수로가 되어있는 텐트촌, 텐트가 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작은 혹은 큰 규모의 방갈로, 시간이 되면 켜지고 꺼지는 가로등 설치,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들을 수 있는 P.A. system, 철저한 보안,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관리요원들..
이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돈이라는 건 쓰는 만큼 버는 것이거늘.. 그들은 전혀 투자하지 않은 채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만을 원했다. 우리는 그들이 건 도박판의 판돈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밴드들에 대한 외국밴드와 똑같은 대우도 중요하다. 트라이포트에서 유일하게 공연을 한 크래쉬의 후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밴드와 외국밴드에 대한 대우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게다가 사운드 체킹도 엉망이었고. 공연 전날 텐트촌에 입소하는 사람들에게 안전요원들은 리허설을 해야 하니 절대로 무대근처에는 오지 말라고 했지만, 무대를 마주보고 설치되어 있는 상가를 들르느라 그 곳을 오간 나는 리허설하는 사람은커녕 무대 위에 서있는 사람들도 본 적이 없다. 물론 리허설 하는 소리도 들은 적이 없고.
지금은 모든 일들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 특유의 어떻게 되겠지 식의 행동은 이제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 공연을 주최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음악을 듣는 작은 개인들의 힘이 우리나라의 음악계를 이끌어 가는 힘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년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시 열리게 될 락 페스티발은 올해와 같은 실패작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1999년 7월 31일 엄마 아빠의 손에 끌려 공연장을 찾았던 어린 아이들과 같은 우리 음악의 미래들에게 락 페스티발이란 지겹고도 싫은 것이라는 기억은 다시는 남겨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