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말부터 97년을 거쳐 그 후로 계속 인디레이블들이 속속 출연하기 시작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드디어” 우리도 새로운 형식들을 받아들여 음악계의 지도를 다시 그려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
너무 성급한 판단일지는 모르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상황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뿌리 깊은 편견의 틀을 넘기도 힘들었고, 화려한 메이저의 상품들에 눈이 팔려 있는 사람들을 (신기한 게 많다고) 구멍가게에 끌어 들이는 것도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뭐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생각도 없었겠지만, 처음의 의도보다 지금 상황은 썩 좋지 못한 것 같다.
이쯤에서 지금까지 인디레이블의 시작과 그들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자.
외국에서는 이미 일반화 되어 있는 인디레이블들이 우리나라에 나타나기 시작을 한 것은 1996, 7년의 일이다. 밴드나 클럽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인디레이블이 하나 둘 생겨났고, 어떤 레이블에서는 수십 장을 앨범을 만들어 냈고 또 어떤 레이블에서는 한 장의 앨범이 전부인 경우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인디레이블들의 분위기는 상승세에 있었고(그래 봐야 아직은 멀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렇게 되면 우리 나라에서도 음악계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상승분위기만은 아닌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게 됐다. 1년에 앨범을 여러 장 찍어내던 레이블들에서 몇 달 동안 앨범 소식이 없는가 하면 앨범을 내겠다고 계약하고 녹음 작업을 시작했던 앨범들이 녹음작업이 끝난 상태에서 발매되지 못하고 사장 되는 등 여러 가지 불안한 징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실 요즘은 인디레이블 들에서 나온 신보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얼마전과 비교해 봤을 때 말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인디레이블들은 언더그라운들의 다양한 음악들을 선보이겠다는 의지아래 앨범을 만들어 내고 의욕적인 시작을 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 문제에 부딪히게 됐다.
앨범을 간신히 녹음을 해서 발매했다고 해도 그 앨범을 홍보한다는 것은 잘해봐야 뮤직비디오를 찍어서 운 좋으면 케이블 TV에 한두번 나가는 거고, 나머지는 클럽공연이든 기획공연 이든 공연을 많이 하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방법이 얼마간의 효과는 있겠지만 언더가 그리 탄탄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그것만으로는 앨범을 판매하는데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렇다보면 앨범 한장을 발매해서 손해를 보게 된다.
인디레이블들의 방식은 밴드와 레이블이 앨범제작에 든 돈과 판매를 통한 수입의 손익분기점(최소한의 비용으로 앨범을 제작했다고 해도 적어도 3.000장 이상은 팔려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이 넘었을 때 나눠갖기 식이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는 힘든 일이었고, 그런 결과로 레이블이나 밴드들은 모두 뻔한 상황에 이르게 됐다.
그런 상황을 넘기면서 다시 앨범을 만들어 내도 똑같은 악순환의 상황은 반복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되다 보니 밴드도 견디기 힘들고 레이블도 견디기 힘들어지는 상황에 까지 몰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락매니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나라 매니아들은 외국의 밴드들을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고 외국 락밴드의 앨범들은 사지만 우리나라 밴드들의 앨범은 공연보면 되는데 왜 사냐는 식이다. 돈이 아깝데나 뭐래나…
그래도 요즘은 우리나라 언더 락 밴드들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늘어나고 분위기도 좋아졌다고는 할 수 있지만 인디 앨범은 사실 구하기가 힘든 경우도 많다(인디레이블들이 가지는 유통망의 한계 때문에…).
어렵게 앨범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고작 홍대 근처의 클럽에 많이 다니는 매니아들인데 그 매니아들이 얼마나 되겠나…. 그렇다고 그 매니아들이 인디 밴드들의 앨범을 다 사줄 수는 없는 일이고….
영화매니아들이 외화는 보면서 한국영화는 무시하는 처사나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 음악도 쿼터제를 적용해야 하려나…^^;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다 보니 좋은 의도를 가지고 의욕적으로 시작을 했던 인디레이블의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우후죽순격으로 만들어지던 인디레이블들이 지금은 다소(?) 침체되어 가는 분위기 이고, 이것은 물론 과도기적 현상일 지도 모르겠다.
과도기를 넘어서 보다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인디레이블들도 자신들만의 전략을 세워서 앨범을 만들어내고 홍보해야 하지 않을까…
인디지만 앨범을 낼 정도의 수준이 되는 밴드들의 앨범을 제작해서 인디에서 나온 앨범들은 다 그렇고 그렇다는 인식을 먼저 깨야만 하고,
전문레이블의 형태도 고려해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레이블에서 나오는 음반은 어떤 장르의 뛰어난 앨범들이고, 이 레이블에서 나오는 음반들은 들어보지 않아도 신선한고 훌륭할 것이라는 신뢰감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물론 신뢰감 회복이나 인식 전환만으로 가능한 작전은 아닐 것이다. 수없이 많은 자본과 싸워야 하고 매체를 파고 들어야 할 필요도 있다. 불가능한 작전을 가능한 작전으로 만들기 위한 체계적인 기획력과 홍보, 메니지먼트가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아주 애매한 시기에 있는 인디레이블 들이지만 정신만 앞서가는 인디라면 어떤 힘도 갖지 못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헛수고에 지나 버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음악계의 새로운 물결로 그 번식력을 넓혀가기 위해 노력이 필요할 때고 여기서 지쳐 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