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52이라는 나이는 사람에게 어떤 기분을,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젊음의 시간을 보내고, 사회에서 안정된 자리를 차지하고, 성장(成長)한 자식들이 때로는 손자, 손녀들을 안겨주기도 하는 52이라는 나이에 있는 두 동갑내기가 새로운 앨범을 들고 우리의 곁을 찾아왔다.
데이비드 보위 David Bowie와 이기 팝 Iggy Pop..
진한 화장과 요란한 색의 머리, 여성취향의 의상, 중성적인 이미지를 지닌 글램락의 선두자로서 1970년대 초반 영국을 온통 뒤흔들어놓았던 락계의 카멜레온 데이비드 보위.
그는 지금까지 젊은 세대들에게 단정히 빗은 금발머리에 하늘색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개다리춤을 추면서 “Let’s Dance”나 “China Girl”같은 댄스 음악을 부르는 나이 든 아저씨 정도로 밖에 기억되었다.
하지만 최근 개봉된 영화 의 주인공이 데이비드 보위라는 것과, 영화의 제목이 그의 곡에서 따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말부분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화에 자신의 곡을 싣지 않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새삼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깨어진 유리로 벌거벗은 가슴을 베거나, 온 몸에 땅콩버터를 바르는 등의 행동을 서슴지않았던 음악계의 기인 이기 팝.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인트로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의 주제가인 “Lust for Life”를 부른 사람 정도로 기억될 뿐이다.
하지만 이 둘은 음악사에 있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그리고 무시해서는 안 되는 뮤지션들이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땅 영국에서 새로운 청년문화를 만들고 이끌어 나갔을 뿐 아니라, 미국까지 점령해버린 이들은 뮤지션들이 톡톡 튀는 개성과 남다른 음악성을 지니면서도 얼마나 상업적으로 성공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매우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그거야 다 지난 옛 이야기이지, 그 사람들이 앨범을 냈다고 해서 뭐 그리 신기할 것이 있겠냐고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특별한 것이어서, 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새 앨범 또한 나름대로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1960년대 말 데뷔하여 상업적인 실패를 몇 번 경험하던 데이비드 보위는 1971년 지기 스타더스트 Ziggy Stardust -다른 혹성에서 온 자웅동체의 양성애자 락스타- 라는 이름의 가상인물을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1972년 멜로디 메이커지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이 발표할 앨범의 홍보를 위해, 자신을 게이라고 밝힌다.
T-Rex의 마크 볼란 Marc Bolan에게서 힌트를 얻어 머리를 오렌지 색으로 염색을 하고, 여자 옷을 입은 그는 the Spiders from the Mars라는 밴드를 이끌고 화려한 무대를 무기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이 인기를 등에 업고 미국까지 진출한 데이비드 보위는 1972년부터 73년까지 2 장의 앨범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여러 아티스트의 앨범을 프로듀스하는 둥 바쁜 시간을 보낸다.
그 때 그가 제작한 앨범 중 하나가 바로 이기 팝의 재기 앨범 이다.
영화 을 본 사람이라면, 브라이언 슬레이드와 커트 와일드가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할 것이다. 이 둘의 만남도 그와 비슷한 경우이다. 이기 팝이 60년대 말 이끌던 세미펑크 스타일의 밴드 The Stooges의 공연비디오를 보고 이에 반한 데이비드 보위가 1971년 밴드를 잠정해체한 후 음악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던 이기를 찾아가 다시 그를 음악씬으로 끌어들였으니까.. (공통점이 있지요? ^_^)
보위가 제작한 이 앨범은 비평가들로부터 커다란 호평을 받게 되고, The Stoogies 또한 커다란 인기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마약을 끊으려고 했던 이기 팝은 다시 한 번 마약에 빠져들게 되고, 정신병원에서 70년대 중반을 보내던 그는 팬들에게 나찌식 경례를 했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오르게 된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브라이언 이노와 함께 베를린으로 옮기기에 이른다.
베를린에 정착한 후 이기 팝은 1977년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 과 – 이 또한 보위의 제작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후 몇 년 동안 이기 팝은 심각한 마약중독으로 큰 위기에 처하게 되고, 앨범 또한 그리 큰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서 그의 팬이나 후원자들마저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렇지만 1983년 데이비드 보위가 이기 팝의 원곡인 “China Girl”을 히트시키면서 다시 한 번 락 팬들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86년 보위가 제작한 이기 팝의 앨범 에 수록된 노래 “Real Wild Child”가 빌보드 싱글 챠트 100위권에 진입하면서 이기 팝은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그 후 이기 팝과 데이비드 보위가 같이 작업을 한 적은 없지만 그 둘은 음악계의 거장으로 많은 후배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활발하게 활동을 해 왔다.
그리고는 52세라는 나이를 맞이한 올해, 30년이 넘는 음악생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앨범을 발표한 것이다. 이 둘의 음악스타일이 기본적으로 틀렸던 만큼 이 두 앨범 또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의 박자나 스타일이 다르다는 건 아니다. 조금 설명하기 힘들지만, 발라드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서는 데이비드 보위의 와 이기 팝의 는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다르다. (자꾸 이리저리 꼬아서 죄송.. ^^;;)
데이비드 보위는 를 통해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난 나이먹는 것이 싫어.. 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운드적으로는 과거 그가 하던 음악스타일을 찾았지만 오히려 가사는 인생을 성찰하는 모습을 띄고 있다. 그래서인가. 이번 신보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들은 나이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의 목소리와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반면 이기 팝의 는 현재 음악 팬들에게 익숙한 그의 노래스타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블루스적인 느낌이 강한 이 앨범은 인생의 어두움, 외로움 그리고 자신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 성향이 강하다.
개인적으로 이 두 앨범을 저울질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손을 들어주고 싶지도 않다. 여기가 무슨 복싱경기장이 아닌 이상에야 그럴 필요가 있을까.
단지 오랜 세월동안 음악인으로서 폭풍과 같은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새로운 앨범을 냈다는 것과 서로의 끈끈했던 음악적, 인간적 연계가 과거를 돌아보는 이들의 앨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생각을 한 번은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