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노이즈의 웹진인 “블루진”이 탄생한 지도 11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블루진에 실렸던 내용들이 얼마나 적절했을까…얼마나 유익하고 재미있었을까… 여유 없이 달려오다가 어디쯤 왔을까, 제대로 된 길을 달려왔을까, 돌아보는 사람의 심정으로 이번 기사를 준비하려 한다. 물론 여러 독자님들의 의견이 먼저 개진되면 좋았겠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우리 스스로 우리가 걸어온 길을 진단(!) 하고 싶었다.
이 기사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한살박이 블루진의 자기 반성문인 셈이다.
꼭지별로 다루었던 내용과 기사의 특징을 살펴보면…
스포트라이트의 경우, 초기에는 블루노이즈 내에서 국내 대중음악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아티스트(1월-정태춘, 2월- 산울림)를 다루었으나, 3월 이후 그 당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이나 중요해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들로 주제가 정해지게 되었다.
3월에는 인디 음악의 새로운 경향인 모던락 밴드들을 살펴보며, 하나의 장르로 고착되지 않고 다양성이 확산되고 있는 인디 음악 씬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진단했었다. 4월의 스포트라이트는 국내 인터넷 음악 씬의 현황을 살펴보았었다. 이는 블루노이즈의 현재를 진단해본다는 의미보다는 인테넷 시대에 걸 맞는 음악 매체의 방향에 대한 고민과 문제 제기였다.
그리고 5월의 스포트라이트는 일본 문화개방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아직은 “불법”이었던 시기(4월 16-17)에 ‘타임투락’이라는 클럽에서 열렸던 한일 양국의 인디 음악 공연 이야기였다.
그리고 6월의 스포트라이트는 당시 이슈가 되고 있었던 “유흥업소”와 “공연장”의 허가문제, 영세한 클럽의 실정에 맞지 않는 법 제도적 구속에 따른 클럽문화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클럽의 진정한 독립만세는 언제일까?”라는 기사였다.
7월은 그 사이 이루어 낸 성과인 “클럽 합법화”와 대학로에서 열렸던 “클럽합법화 축하공연”에 대한 기사였다.
그리고 8월의 스포트라이트 기사는 밥 말리 특집기사로 꾸며졌었다.
9월은 뭐니 뭐니 해도 “트라이포트”에 대한 이야기가 블루진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9월 블루진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실패가 예견된’ 트라이포트의 현실적인 문제점(주최측의 준비 미비 등)과 대안을 제시하려 했었다.
그리고, 10월의 스포트라이트는 음반사전심의제 철폐 이후 다시 새로운 가위로 자리잡고 있는 방송심의제 문제 등을 거론하였다.
11월 스포트라이트에서는 90년대 후반 인디 씬이 자리를 잡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던 여러 인디 레이블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짚어내려 했다.
위를 보면 알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블루스포트라이트는 국내 음악 씬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으로 그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주체의 한계 때문에 심도있는 기사가 나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때로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해야 할 이야기들을 대폭 수정하고 잘라야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때로는 애초 의도했던 방향이 아닌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
이는 계속해서 고쳐나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블루 포커스는 스포트라이트와는 또 다른 “초점거리”를 다루며 시작했다.
1월에 홍대 앞 클럽의 역사에 대한 개괄적인 얘기로 시작했던 “블루 포커스”는 2월에는 코끼리 공연기사, 3월에는 유행을 타기 시작했던 테크노에 대한 진단을 했었고, 4월에는 3월의 기사에 이어 국내 테크노 씬을 살펴보기 위해 ‘카사블랑카’와 ‘슈거케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원희와의 인터뷰 기사로 마무리를 했었다.
5월에는 인디에서 새롭게 제작하기 시작한 80mm 싱글 씨디가 음반 시장에서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 그 가능성을 살폈었다. 6월의 포커스는 멋있어 보이지만 알고보면 ‘궁핍하고’ ‘웃지 못할’ 밴드의 실생활을 밴드 인터뷰와 모밴드 멤버의 생생한 체험담을 통해 ‘파헤쳤다’. (물론, 모든 밴드에 해당됐던 사항은 아니었겠지만 ‘이 땅에서 밴드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하고 싶었다)
7월의 포커스는 두 가지 였다.
먼저, 인디 씬 내에도 존재하는 오빠 부대들, 한 쪽으로 편향되어 주류의 “스타”나 다름없이 존재하는 주류 장르가 인디 락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선 펑크”라고 명명되는 우리나라 인디 펑크 씬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였다. (이 기사는 알다시피 6월 블루아이즈를 통해 처음 제기된 문제였고, 이후 많은 논란 거리를 제공했다)
8월에는 국내 대중 음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통신 내 음악동호회의 활동과 그들의 잠재된 저력을 가늠했었다. 9월에는 문화의 수도권 편중 현상을 지방의 밴드와 매니아의 입장을 통해 살폈었다.
그리고 10월에는 시대를 거슬러 가서 밴드만큼이나 유명했던 “그루피”들의 삶을 엿보았다. 11월에는 오랜만의 신보로 함께 돌아온 데이빗 보위와 이기 팝의 인연과 신보에 그 초점을 맞췄고, 오랜 시간 끌어오던 조선펑크에 대한 논란에 종결을 짓기도 했다 …
그리고…
여러가지 시각으로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쓰윽~’ 훑어보자는 의도로 3월부터 시작됐던 블루아이즈는…’클럽합법화를 위한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가(1999. 3월), 아밴련(아름다운 밴드 연합)이 모이는 자리에 기웃거렸다가(1999. 3월), 일본대중문화개방에 대한 고민을 했다가(1999. 4월), ‘상스런 가사’로 방송중지를 당한 조피디와, 고상하고 근엄한 어른들의 얼굴을 차례로 살펴보며 혀를 차기도 했다(1999. 4월).
민치영이라는 뮤지션의 공연장에 나타났던(1999. 5월) 블루아이즈는 조선펑크에 대한 쑥덕공론의 현장으로 달려가서 그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했다(1999. 6월). 이후 조선펑크는 포커스에 맞춰지게 된다.
그런가 하면 영화관으로 달려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즐거워 하기도 하고(1999. 7월), 언젠가 블루노이즈 내에서 행해지던 ‘밴드의 사생활 씹기’에 대해, 그러지 말자고 호소하기도 했다(1999. 7월).
그러다가 블루아이즈가 눈을 돌린 것은 언더에서 오버로 갔다는 소문은 있는데, 예전의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뮤지션들이었는데… 이들이 오버로 가서 볼짱을 다 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1999. 8월). 뮤지션들의 음악만큼이나 중요하게 취급되는 ‘외모’에 대해 궁금해 하던 블루아이즈는 10년 동안 변한 락 뮤지션들의 옷차림과 외양, 팬들의 특징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1999. 8월).
성질 느긋한 블루아이즈가 열 받았던 적이 있다.
트라이포트에 가서 죽도록 고생을 했던 블루아이즈는 “악몽의 사흘낮 사흘밤”이라는 제목으로 트라이포트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1999. 9월). 블루노이즈의 자유기고가인 한 여인의 “투덜투덜”거리는 대중문화 씹기가 개제된 것도 바로 이때(1999. 9월)이다.
10월부터 블루아이즈는 유머러스한 독설가에게 자신의 자리를 절반쯤 내주게 되는데, 그가 바로 “DJ Jason”이었다.
모 밴드의 기타리스트겸 보컬리스트인 그는 “음악에 있어서 장르란 무엇인가?”(1999.10월), “재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알아보는 J.D.Salinger”(1999. 11월)라는 식의 제목으로 펼쳐지는 말도 안되는 질문과 답을 통해 위트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블루아이즈는 가을을 맞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도 했는데,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vs[오프 더 레코드, 인디 록 파일]” (1999.11월)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체로,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지나간 시간들을 다시 불러오려 했던 블루타임즈…
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씬을 회상했었고(1999. 1월), 지금까지 나온 근사한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뭔가를 살피려 했었고(1999. 2월), 사람들을 뻑가게 했던 데뷔 앨범이 어떤 것이 있었나를 궁금해 하기도 했었고(1999. 3월), 주류에 반기를 든 인디레이블에 대해 살피기도 했었다(1999. 4월).
5월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죽고 난 이후의 변화들을 주변 뮤지션들을 통해 알아 봤었고, 언더그라운드의 또 다른 언더그라운드로, 그 색깔이 퇴색된 포크의 옛 전성기와 지금을 비교하기도 했다.
유럽의 변방, 아일랜드로 가서 그 역사와 음악의 상관관계에 대해 진지해지기도 하고(1999. 6월), 사이버 공간 속으로 빠져들어 그 속의 뮤지션들을 만나기도 했다(1999. 6월).
카리스마가 사라진 시대를 슬퍼하며 옛날 ‘한카리스마’ 했던 뮤지션의 유령을 불러내기도 했으며(1999. 7월), 다시 돌아온 과거의 밴드들을 반가이 맞이하기도 했다(1999. 8월).
1969년의 우드스탁 현장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며(1999. 9월), rock의 역사를 알아 본다고 분주하더니(1999. 10월), 급기야는 이제 음악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못 말리는 커플들을 계속 만나겠노라고 선언하고 섹스피스톨즈의 시드와 그의 애인 낸시를 만나더니 (1999. 10월), 비틀즈의 존 레논과 오노 요코까지 만났다(1999. 11월). 앞으로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못 말리는 커플들만 골라서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블루노트는 처음에는 국악에 관한 지식이라든지 음악 용어에 대한 설명이라든지…조금 지루하고 식상할지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읽는 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려는 의도로 출발했다.
5월까지 계속되었던 음악용어 사전이 끝나자 힙합, 모던 락,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뮤지션, 아트락에 관련된 인터뷰, 화제가 된 공연…등의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이제 겨우 한해가 지났고, 이제 겨우 11번 독자들을 만났을 따름이지만…어떻게 본다면 한해’나’ 지났고, 11번’이나’ 관심을 받았다고 말해야 할 런지도 모른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문제제기만으로 그쳤던 기사들, 문제제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기사들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아주 상투적이지만 당연한 마음이 든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더 유익하고, 더 참신한 블루진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현재 편집부의 과제다.
단기적인 관점보다는 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블루진, 주관적인 고집이 있지만 다른 의견에 대해 열려진 태도를 지키는 블루진, 인디 음악의 현실을 그때 그때 바로 볼 수 있는 블루진, 냉정하고 객관적인 거리도 중요하지만 인디 음악씬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갈 수 있는 블루진을 만들려고 한다.
늘 현재진행형으로…
이제 겨우 한살박이인 블루진의 실수와 헛발질이 발견된다면 거침없는 꾸중과 질타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