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번째 칼럼이다.
그리고 새 천년 이전 마지막 DJ Jason 칼럼이다.
뭐 그렇다고 특별할 것도 없다. 2000년이 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공해와 빈부 격차가 더 심해지고 돈 있는 나라의 논리에 따라 세계 경제가 재편되고 우리나라 대학 입시 정책은 또 바뀌겠지. HOT는 또 허접한 새 앨범을 내고 허접한 가요프로그램들은 허접한 새 얼굴들을 찾아내고 허접한 박수와 허접한 함성이 허접한 스튜디오를 채우겠지. 하도 여러 번 바뀌어서 관심도 없지만 이제 우리나라 헌법도 또 한 번 새로 쓸 때쯤 되지 않았나?
어찌 되었든 때가 때 이니 만큼 90년대를 한 번 돌아보자.
90년대의 대표적 조류와 뮤지션, 음반을 살펴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다 해 놓은 관계로, 나는 90년대 작품 중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지명도가 없었던 작품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고자 한다.
1. 아까운 이들이 죽다
개인적으로는 Jeff Buckley의 죽음이 가장 가슴 아팠다.
커트 코베인 같은 사람도 죽으니 전설이 되는데(자살의 위력이란!), Jeff는 소수 매니아들 만이 애도할 뿐, 그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Jimi Hendrix는 죽기 전 녹음이라도 많이 남겨놓아서 이제는 별 희한한 것 까지 다 음반화 되어 그나마 아쉬움이 조금은 덜한데, Jeff는 앨범 한 장 달랑 남겨두고 떠나서 이것 저것 합해봐야 CD 너댓장으로 끝이라 아쉬움이 더욱 크다.
‘Eternal Life(영원한 삶)’를 노래하던 그가 그렇게 갑작스레 죽다니, 인생은 정말이지 예술보다는 짧고 개보다는 못한 것 아닌가.
전설의 Miles Davis도 갔다. 살만큼 살고 갔다. 그래도 아깝다.
생전에 늘 새로운 조류의 개척자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던 그의 마지막 작업은 Hip hop이었다.
앨범 제목은 ‘Doobop’. 물론 쟝르를 따지자면acid jazz라는 표현이 적합하겠지만 여러 hip hop musician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80도 넘은 Miles옹이 하루는 길거리를 내다보면서 ‘이제는 hip hop의 시대가 될 거야. 어디 hip hop잘 하는 놈 있으면 좀 데려와 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젊은 hip hop musician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정말 대단한 노인네 아닌가.
‘Doobop’작업 중 Miles옹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다.
‘조금만 기다려. 곧 퇴원해서 진짜 힙합을 보여줄 테니.’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고, Doobop은 그의 유작이 되었다.
2. 죽어도 안 아까운 놈들은 멀쩡히 살아있다
이 부분은 내용은 생략하겠다…
음악이란 그 질은 함부로 따질 수가 없다. 특히 대중음악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Eric Clapton과 Jeff Beck중 누가 더 기타를 잘 칠까. 그런 걸 묻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대답은 각각의 취향과 가치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확실히 저질은 존재한다.
누가 HOT, SES, Finkl, 젝키를 감히 ‘musician’이라 부를 것인가. 사실상 가수라고 부를 수도 없는, 기획사의 노예들이 아니었던가. (좀 너무했나?)
여기서 ‘죽어도 안 아까운 놈들’은 이 노예들을 지칭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다들 불쌍한 애들이고 집에서는 귀한 아들 딸인데 죽으면 안되지. 특히나 그들이 죽으면 전설로 남을까봐 심히 걱정된다. 절대 죽으면 안된다.
이정도 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3. 쓸만하지만 별로 못 뜬…
Mark Wood를 아는가?
그의 첫 앨범은 그래도 꽤 반응이 있었다. 칭찬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Yngwie J. Malmsteen이 칭찬을 할 정도였지.
앨범 제목 하여 ‘Voodoo Violince’.
여섯 줄 짜리 Electric Violin에 flat까지 달고 distortion에 Wah-wah까지 걸어 완전히 기타같은 소리를 냈다. 이전에도 비슷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flat을 단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electric guitar같은 feedback과 resonance가 가능해진 것이다.
정말 엽기적인 발상의 획기적인 시도였지만,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너무나 기타 사운드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타를 치는 사람이 들으면 구별이 간다. 바이올린으로 이렇게 거의 기타같은 소리를 내다니 놀랍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그냥 그 당시유행하던 속주 기타리스트의 앨범들과 별다른 구별되는 특징이 없는 음악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앨범에 와서 상황은 달라진다. 이것은 Mark Wood라는 이름으로 낸 앨범이 아니라 ‘Wood’라는 팀으로서의 앨범이었다. 독특하고 훌륭한 앨범이다.
바로크 메탈 적인 색채가 짙었던 첫 앨범과는 전혀 달리 이 앨범은 사운드 면에서는 Pantera였고 성향은 hardcore rap이었으며 전체적인 색깔은 King Crimson이었다.
썰렁한 색안경에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며 Yngwie같은 느끼한 헤어스타일과 행동을 보이던 debut때와는 완전 다르게 지저분한 수염과 세상과 담 쌓은 듯한 눈빛, 반 사회적이고 폐인 같은 이미지로 변신했다.
Electric violin으로 Hardcore를 한다는 것이 상상이 가는가?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삼인조 밴드였다. Violin으로 내는 저음의 강렬한 riff는 기타의 그것과는 또 다른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두 번째 앨범은 상업적으로는 대 실패로 끝났고 현재까지 새 앨범은 내지 못했다. 두 번째 앨범은 본의 아니게 희귀음반이 되었다. (찾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없다.)
지난 아틀랜타 올림픽에서 음악을 맡기도 했었는데, 어디까지나 행사 음악일 뿐, 그의 새로운 음반은 깜깜 무소식이다.
더러운 세상.
다음은 portished.
이들은 그래도 꽤 알려져 있다.
그 엽기적인 여자 보컬이 정신병 치료를 받은 이후의 앨범들은 왠지 진이 빠진 듯한 느낌이지만 그 전의, 특히 ‘Dummy’앨범은 한 마디로 죽여준다. 90년대의 특징적인 사운드 가운데 하나인 ‘세기 말 psychidelic sound’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anti-psychotic drugs는 그녀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다.
4.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이 칼럼이 언제나 그러했듯 마지막은 말도 안되는 결론과 함께 우리나라 이야기로 끝을 맺겠다. (이번 글은 늦은 만큼 양도 많아지고 있군.)
TV에서는 홍대 앞 클럽 밴드들에 대해 관심있는 듯 방송하고, 심지어 허접한 가요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도 하며, 90년대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또는 90년대가 되어서야)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되었지만(심지어 내가 하는 밴드 조차 ‘레이디 경향’ 98년 5월호 335페이지에 등장하여 주위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과연 레이디 경향을 읽는 아줌마들이 335페이지를 읽을 것인가 하는 질문은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Jazz’나 ‘techno’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지난 칼럼 참조)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에 대한 관심은 하나의 유행하는 현상일 뿐 실제로 그들의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은 생각보다(또는 생각 만큼) 훨씬 적다.
이 현상이 과연 언더그라운드의 왜곡되지 않은 정착과 다양한 음악 쟝르의 확산 등의 결실을 맺을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문제인 듯 싶다.
5. 결론
Woody Allen도 늙으니 별 수 없다. 젊은이도 언젠가는 늙는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는 것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Everyone says ~’의 Woody선생의 생각을 믿고 싶은, 20세기의 마지막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