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유쾌한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게 봤다는 분들 덕분에 많은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칼럼은 칼럼이라기 보다 개인 잡사가 될 것 같다. 이것은 개인 잡사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볍게 읽고 넘어가시길.
1. 인생에 관한 이야기
살아가면서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다 이루어 진다면 살아가는 재미가 없을 거라고 자신을 위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 진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 살아가면서 자신의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음을 우리는 하루하루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 것이 인생일 꺼다.
뜻대로 되는 일이 몇이나 있겠는가.
비운의 밴드 슬러터는 지금도 LA metal을 고수하고 있을 거다.
LA metal이 아니면 음반을 만들지 않겠다던 그들은 소위 alternative 계열의 음악을 하면 음반을 내주겠다는 메이저 레이블의 제의를 거절하고 일본 인디레이블에서 LA metal 음반을 냈다.
뜻대로 안되는 것은 내 탓만은 아니지만 세월 탓만도 아니다.
2. 비운의 기타리스트. 이 바닥이 원래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거 아니겠어
비운의 기타리스트? 요절한 천재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도 그들 개인과 유족의 입장에서는 참 딱하지만,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끔 요절하는 뮤지션도 있어야 재미가 있는 법이다. 너무 냉랭한 소리 같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 아닌가.
어찌되었든 여기서 이야기할 사람은 Noel Redding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Jimi Hendrix Experience의 Bassist였다. 그는 원래 Guitarist였다.
영국에서 나름대로 인정받는 guitarist. Jimi가 영국으로 건너가 팀을 결성하며 Noel을 소개받았다. 둘은 Jam을 했고, Noel은 자진해서 bassist가 되었다. 왜?
Jimi Hendrix 열심히 들으면 기타 치기 싫어진다.
3. 첫 경험
처음으로 내가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중 3 때 였다.
그땐 뭔지도 모르며 들었던 전영혁 아저씨의 심야프로그램에서는 Iron Butterfly의 ‘In-a-gadda-da-vida’가 나오고 있었다. 그 때부터 인생이 꼬인 것일까.
우리 엄마가 늘 말씀하시는 인생 최대의 실수는, 피아노를 안치겠다는 나에게 뭔가 악기를 하나 해야 한다며 통기타를 직접 사다 주신 것이다.
중 3때 Iron Butterfly를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는 Jimi Hendrix를, King Crimson을 어디선가 만나게 되었겠지.
4. 고등학교 시절은 그리 좋은 시절이라 할 수는 없다.
세 명의 친구가 있었다.
모두다 음악을 열심히 들었다.
전영혁의 심야 프로그램을 녹음 해가며 들었던 사람이 나와 친구들 뿐이었겠냐마는 하여튼 참 열심히도 들었다.
Hard rock의 고전들을 만났고 Italian progressive를 만났다. Morton Sabotnick도 만났다.
‘빴떼리’를 부르며 길을 걸었다. Seek & Destroy는 언제나 최고였지.
Budgie음반은 결국 대학 입학 후에야 구할 수 있었다.
Jimi Hendrix도 시간이 좀 지나서 만났다. Overkill도 그때는 좋았고 Paula Abdul은 죽여줬다.
21 jump street는 왜 그리 재미있던지.
비버리힐즈 90215는 그때도 구렸다. 미남이던 Yngwie J. Malmsteen이 스모 선수같이 살이 찔 줄 누가 알았겠는가. Jazz는 충격이었다. King Crimson은 눈물의 도가니.
… 그러나 친구 하나는 죽었고 또 하나는 병신이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걸었다.
그땐 아무 것도 아닌 일인 줄도 몰랐다.
단지 궁지에 몰렸을 뿐이었다.
어쩌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99년 12월과 2000년 1월의 차이는 단지 달력상의 시간차 뿐인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아직 1999년이다. 그 사이 지구가 멸망할 지도 모르지. 그래도 TV에는 허접한 가수가 허접한 무대에서 허접한 노래를 부르며 허접한 찬사를 받겠지.)
사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같다는 말을 피하려 애쓰지만 결국은 피하지 못한다. ~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자신의 세상이 바뀌는 것이 결국은 중요한 것 아닐까.
그러나 그것으로 자신의 세상이 끝나도 좋다고 생각했을까 과연?
친구는 마지막에 Klaatu가 듣고싶다 했다.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들은 Klaatu는 과연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고등학교 시절은 별로 좋은 시절이라 할 수는 없다.
5. 새 천년
아무도 새로운 세계가 열릴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기 말의 불안이니 어쩌니 하는 슬픔은 각 개인이 그대로 새 천년의 시작점에 안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슬프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가 슬픈 거다.
내가 슬프니 내 세상도 슬프고.
새 천년은 이렇게 슬픔과 비관 속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