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zard King” 짐 모리슨 Jim Morrison … |
![]() 그가 살아있던 1960년대 뿐 아니라 전 시대를 통틀어 흔들리는 젊음의 대변인이었다. 음악이 과거 제사의 한 형태였으며, 음악인들이 현대의 주술사라면 짐 모리슨은 분명 제사장의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
그의 “Cosmic Mate” 파멜라 커슨 Pamela Susan Courson (Morrison) 빨간 머리와 하얀 피부 그리고 마른 몸매의 그녀는 지적이고, 명랑하며, 매력적이고, 신비하고, 비밀스러우며, 아름다운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였다고 한다.
밴드와의 생활과 파멜라와의 생활을 철저히 분류했던 짐 덕(?)에 그녀는 오히려 그의 다른 여인 패트리샤 케닐리 Patricia Kennealy 보다도 덜 알려진 여인이었다.
짐의 반쪽과도 같은 그녀는 1966년 짐을 처음 만난 이후, 그가 파리의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되던 1971년까지 꾸준히 싸우고, 화해했으며, 사랑하고, 미워하는 법적인 부인이었다. 또한 짐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은 여인이기도 하다.
1946년 Nothern California의 Weed에서 출생한 파멜라는 어려서 가족과 함께 엄격하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Southern California의 Orange County로 이사를 한다. 이 곳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L.A로 거주지를 옮기고, 자유분방한 삶을 시작한다.
1966년 선셋스트립 Sunset Strip에 있는 “The London Fog”라는 클럽에서 당시만 하더라도 평범한 밴드였던 도어즈와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난다. 재미있는 건, 처음에 파멜라에게 관심을 가진 건 짐이 아니라 팀의 드러머였던 존 덴스모어 John Densmore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멜라는 짐에게 관심을 보이고, 짐 또한 파멜라에게 매력을 느끼면서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을 보이게 된다.

가난한 가수와 가끔 모델일을 하는 가난한 여인으로 만난 이들은 그리 풍족한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파멜라의 언니는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짐과 자신의 동생이 사귀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며, 파멜라는 그런 언니의 말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짐이 처음으로 20달러를 벌어오던 날, 기쁨에 들뜬 두 사람은 중국음식을 시켜먹으며 파티를 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어즈는 일렉트라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당시 일렉트라의 프로듀서였던 폴 로스차일드 Paul Rothchild가 무대 위에서의 충격적인 행동으로 “The London Fog” 에서 쫓겨나 “Whisky a Go-Go”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이들의 무대를 보고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1966년 9월, 1집 앨범 녹음을 마친 도어즈는 미국 동해안 순회여행을 한다.
그리고 뉴욕으로 돌아오자마자, 둘의 동거가 시작된다.
컨트리 스토어 Country Store라는 커다란 가게가 있는 언덕의 위쪽에 위치한 로스델 트레일 Rothdell Trail의 작은 아파트에 세든 것이다.
도어즈의 팬들에게는 러브 스트리트 Love Street -도어즈의 노래 “Love Street”의 배경이 된 곳 – 라고 잘 알려진 이 곳은 현재는 폐허가 되어버렸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아주 살기 좋았다.
싼 임대료와 저렴한 물가를 자랑하던 이 곳은, 쓰리 독 나잇 Three Dog Night의 지미 그린스푼Jimmy Greenspoon, 프랭크 자파 Frank Zappa 등 현재는 유명한 음악인들이 한 곳에 앞, 옆으로 그리고 위, 아래층으로 몰려 살던 곳이었다.
같이 지내는 동안 둘은 분명 정상적인 커플은 아니었다. 상대방을 겁주면서 기쁨을 느꼈던 짐과 파멜라는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거나, 언덕의 꼭대기에 차를 세워놓고 누가 먼저 뛰어내리나 내기를 하고, 어두운 곳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오는 장난을 즐겼다. 이러한 그들을 주위의 사람들은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다고 기억한다.
그러던 1968년 짐은 그의 다른 여인을 만나게 된다. 당시 22살의 젊은 나이로 Jazz & Pop 이라는 매거진의 편집장을 지내고 있던 패트리샤가 바로 그 여인이다.
짐은 이때부터 그가 죽던 71년까지 그녀와의 관계를 계속한다.
둘은 70년 비밀스러운 결혼식을 올렸으며 패트리샤는 76년 법원의 판결을 받아 법적으로 모리슨이라는 성을 쓰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짐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파멜라는 그냥 법적인 부인이었을 뿐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짐은 이 두 여인 사이에서 방황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짐이 원래 바람둥이였으며 언제나 파멜라의 곁으로 돌아갔던 것으로 보아 둘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정으로 이어진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파멜라가 꼭 짐의 좋은 짝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패트리샤가 짐의 음악적인 끼를 인정하는 반면, 파멜라는 짐에게 음악은 집어치우고 시인으로 활동하라고 압력을 넣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항상 위험천만하던 둘의 관계는 1971년 7월 3일, 파리에서 끝이 나게 된다. 수 없는 이별과 화해를 계속하던 두 사람은 파리로 간다. 짐은 그 해 가을 뉴욕으로 돌아가 솔로 앨범을 녹음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7월 3일 자정이 넘어, 짐은 마약 과다복용으로 인해 피를 흘린다. – 패트리샤의 증언에 의하면 짐이 싫어하는 마약을 파멜라가 억지로 흡입하게 하였다고 한다. –
짐과 마찬가지로 약을 복용한 파멜라는 그가 피를 흘리는 걸 보면서도 잠이 들어버리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욕탕에 들어갔던 짐은 그 곳에서 피를 흘리며 사망하게 된다.
그날 새벽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난 파멜라는 짐을 발견하고 여러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긴급구조 요청을 한다. 파멜라가 그의 가슴을 때리는 등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지만, 짐은 늦게 도착한 경찰들에 의해 사망통지를 받는다.
그가 사망한 후, 그를 떠나보내기 싫었던 파멜라는 짐의 시신을 플라스틱 백 안에 얼음을 가득 채운 후 보관한다. 그리고 7월 7일이 되어서야 파리에 있는 Pere-Lachaise에서 사망통지서를 받고 그의 시체가 안치된다.
파멜라는 이러한 절차를 밟은 후 바로 캘리포니아로 돌아간다. 샌 프란시스코 San Francisco의 북쪽에 위치한 마린 카운티 Marin County에서 잠시 지낸 후, 로스 앤젤레스로 간 그녀는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1974년 4월, 마약복용으로 사망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도 파멜라도 27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
짐 모리슨이 사망하고 1990년대 초반까지 모든 사람의 관심밖에 있던 파멜라는 도어즈의 베스트 앨범이 발표되고, 올리버 스톤 Oliver Stone 감독이 도어즈의 전기를 영화화하면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멕 라이언 Meg Ryan이 연기한 파멜라의 모습은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파멜라는 사망하고, 패트리샤는 살아있는 지금 누가 그의 진정한 사랑이었는지를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패트리샤가 뭐라고 하더라도 파멜라가 짐의 가장 오래된 여인이었으며, 진정한 부인이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 둘의 사랑이야기는 1998년 패트리샤 버틀러 Patricia Butler가 자신의 저서 “Angels Dance Angels Die: The Tragic Romance Between Pamela and Jim Morrison “에서 다루면서 더욱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