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jason 칼럼을 대신한 모리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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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디제이 제이슨이 이 땅을 떴다.
호주땅으로 떠난 그는 이번 달에도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란다. 가끔씩 보내오는 멜의 내용을 보아하니, 뜨거운 여름 햇살과 토플리스 차림의 아가씨들 틈에서 룰루랄라 즐겁게 잘 지내고 있는 모냥이다.
개인적으로 디제이 제이슨을 쬐금 알고 지내는 나는, 고고한 척 구는 그의 엽기적인 글이 승승장구하며 인기를 누리는 게 눈꼴시었었다. 게다가 남들은 추위와 외로움에 덜덜 떨고 있는데, 따뜻한 나라에서 꽃들 속에서 노닐고 있다니… 지가 나빈줄 아나.
… 배가 아프다.
한글 폰트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뭇여성들과 정답게 노니느라 바빠서 칼럼 쓸 시간이 없는 그의 현실적인 상황을 틈타, 이제 모리스가 그의 자리를 채워버렸다… 비록 30일 천하지만, 뭐 어떠랴, 제이슨의 명성에 코 빠뜨리는 행각을 벌이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디제이 제이슨의 음악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 웃기지 말라 그러셔…
모리스의 내 맘대로 칼럼, 이제 시작한다.
1. 매니아가 음악을 죽인다?
제이슨이 했던 말 중에 그나마 쓸만한 내용이 있었다면,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류의 말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앨범을 가지고 있고, 어떤 뮤지션을 좋아하고, 얼마나 많은 음악적 지식을 가지고 있고… 도대체 그게 인생의 보편적인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말이 되냔 말이쥐… 뭐, 이 비슷한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강조했던 게 제이슨의 글이었다.
음악을 듣는데 선민의식이 웬말이고, 우월감이 웬말이고, 지적 콤플렉스가 웬말이고, 선택과 필수를 따져서 느낌 없는데도 “중요하다”니까 좋은 척 한다는 게 웬말이냔 말이쥐…
그런 그의 글을 읽으면서, 맞다, 옳아, 하고 나는 무릎을 쳤었다. 종잡을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나를 카오스의 상태로 몰아넣던, 엽기적인 행각을 저지르며 다니던 평소의 그의 행태와는 상관없이, 으르렁거리는 우리 두 사람의 개인적인 관계와는 상관없이, (부정적인 의미에서)인텔리적이고 폐쇄적인 매니아들의 음악 감상법에 대한 그의 신랄한 지적은 내 속을 시원하게 긁어 주었던 것이다.
2. 매니아, 그것이 알고 싶다
우리나라의 소위 “매니아”라고 하는 사람들의 습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신은 단지 “좋아할 뿐”이지, 절대 매니아가 아니라고 한다.
왜? 매니아라고 했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쪽팔리니까?
왜? 나 매니아요~ 하고 떠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매니아답지 못한 저속한 행동이라고 생각되니까?
어쨌거나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틀림없이 매니아 수준의 “취미 생활”인데도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한다. 그러다가 음악 얘기가 나오면 자신의 식견을 자랑하지 못해서 안달복달이다. 남들이 모르는 얘기가 나올 때까지 열심히 떠든다.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예외성을 인정 받기 위한 한 판의 전투다.
금새 드러낼 거면서 가증스러운 겸손은 왜 떨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남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일종의 자기 과시. 빠떼루 주고 싶다.
두 번째, 영화에서나 음악에서나 (미술이나 다른 부분의 매니아들은 주변에서 잘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매니아 특유의 “단계”와 ‘필수 과목’이 있다.
영화 매니아들의 경우,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이나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또는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영화다. 여기서 단계가 넘어가면 뉴 저먼 시네마니, 네오 리얼리즘이니, 느와르, 그리고 롱샷, 풀샷, 숏컷, 롱테이크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감독별 성향과 영화 속에 숨어 있는 감독의 숨은 의도 찾기는 그래도 양반이다.
듣도 보도 못한 영화 제목과 감독, 배우 이름 맞추기(통신상의 ‘영퀴방’ 에 한번이라도 들어가 본 사람은 안다), B급 영화에 대한 재해석과 컬트라고 불리우는 영화에 대한 안목 키우기… 등등 영화 매니아가 되기 위해선 무수한 산과 계곡을 넘어야 한다.
음악에서는 어떨까?
음악에서도 고전과 필수 과목과 단계가 있을까? 물론, 있다.
하지만 음악 매니아들은 영화 매니아들과는 달리 고전의 단계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니, 요즘들어서 기본적인 고전의 단계를 건너뛰는 게 추세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부분적인” 매니아의 존재가 더 강력하게 드러난다. (이는 영화보다 음악이 더 방대한 분량의 물적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앨범 수가 많겠는가? 영화 수가 많겠는가? 감독 수가 많겠는가? 뮤지션 수가 많겠는가?)
그리고 영화 매니아들에 비해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 하드코어 매니아들이 슈게이징 팝을 듣는 경우는 드물며, 모던 락 매니아가 쓰래쉬 메틀에 열린 태도를 가지는 경우도 드물다. 아트 락 매니아의 경우는 더더욱 폐쇄적이고 엘리트적인 배타성을 보인다.
뭐, 이런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굳이 고전을 듣고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얘기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들 모두를 “락 매니아”라는 공통 분모로 묶을 경우, 대중 음악 전체에서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인데, 문제는 락 매니아 중에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경향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야, ‘나 팝 조아요~’라고 드러내놓고 자신의 취향을 얘기해도 되는,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고 내멋대로 해라표 젊은이들이 많아진 상황이라서 덜하긴 하지만, 예전에는 “팝”이라는 말 자체가 경멸(씩이나…라고 말하겠지만)과 멸시의 뉘앙스를 풍기던 때가 있었다.
달콤한 팝을 듣는 것은 소위 “락 매니아”들에게 있어서는 씻을 수 없는 과오처럼 여겨졌고, 락이 팝보다 좀 더 우위에 있는 어떤 존재로 군림했다.
그리고,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매니아가 영화의 부흥과 발전에 이바지 했던데 비해, 그리고 다양한 가치관을 포용했던데 비해, 락 매니아들은 오히려 다른 장르의 음악을 죽이고, 나아가서는 락 음악마저도 고인 물에 가두었던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3.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그렇다고 “매니아가 음악을 죽인다”고까지 말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겠냐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음악 매니아, 특히 락 매니아들의 경우, 어쨌든 락 음악의 기본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는 음악 외의 다른 음악을 “포용”하거나 “배척”하는 게 아니라 “무시”한다. 다른 배경과 다른 전제로 탄생한 음악인데도, 락을 평가하는 잣대 그대로 그 음악을 재단질하고 “음악도 아니야”라고 한다.
락 음악 매니아가 앰비언트나 트립합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나 역시 그런 음악들에 대해 아주아주 얕은 지식만을 가지고 있을 뿐,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다.
그래서 뭐? 뭐… 다 괜찮다.
앞서 말했듯이 음악을 안 듣고 살든, 뽕짝에 미쳐살든, 자신이 행복하면 그만이다. 커피 중독자건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이건, 어차피 기호일 따름인 것처럼.
다만, 이왕지사 음악을 좋아하며 산다면, 그것도 삶의 중요한 부분을 음악에 내줬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의 가치만큼 다른 음악에 대한 가치 역시 인정해주고 열려있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게 매니아의 자세가 아닐까. (또, ‘난 매니아가 아니야’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매니아라 그런다고 세금 매기는 것도 아닌데, 별스럽긴)
물론, 매니아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선구자”로서의 책임과 의무 혹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강물에 올챙이 방류하듯 냅둬서 잘되는 게 음악이나 문화가 아니지 않은가.
유희의 인간이 머리를 쓰면서 생산해 낸 것이 바로 문화이거늘… 인간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해 생성되었듯이 인간의 적극적인 개입과 노력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온 것이 문화다.
그러므로, 뭣이냐, 매니아가 부정적인 역할을 해 온 부분도 있지만, 필요한 일을 해 온 것도 사실이기 땜에, 좀 더 영리하고 현명하게 잘 하자는 거다. 더구나 요즘의 매니아들은 골방에서 혼자서 음악 들으며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역할이 더 중요하다…
4. 결론
커피 못 마신다고 구박하지 마라. 메뉴판에 다른 것도 많다.
사족
제이슨이 어서 돌아왔으면 싶다. 말도 안되는 엽기적인 글은 그의 전공이지, 내 전공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제이슨, 어서 돌아와서 비키니 아가씨들과의 무용담을 전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