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앤 세바스찬 Bell & Sebastian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 Red House Painters
머큐리 레브 Mercury Rev
엘리엇 스미스 Elliott Smith
틴더스틱스 Tinderstics
벤 앤 제이슨 Ben & Jason
트래비스Travis
…
위에 거론된 이름들이 익숙하다면 당신은 포크적 감성을 가진 ‘요즈음’의 음악에 관심이 매우 많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포크 음악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보통 나오기 쉬운 우디 거스리로 부터의 흐름, 밥 딜런이나 존 바에즈 같은 뮤지션이 보여준 서사성 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퍼지고 있는-그렇다고 해서 안티 포크와는 더구나 거리가 있는- 요즘 포크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감성”이다.
간결하고도 은유로 가득찬 노랫말은 마치 한 편의 동화나 시와도 같고, 그들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잔잔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위에 거론한 뮤지션들이 “포크”라는 단어로 함께 묶이고는 있지만, 사운드상의 특징 하나 하나를 굳이 따지고 들자면 장르적인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포크의 역사나 의미 혹은 포크 음악이 가졌던 사회적인 의미 같은 것들이 아니다.
단지 어느샌가 힙합이나 하드코어의 유행과는 상관없이 서서히 퍼지고 있던 이들 음악을 살펴보자는 것 뿐.
조용하고 나직한 속삭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들의 매력을 조금 엿보자는 것 뿐.
그러므로, 이 글은 어떠한 분석의 틀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먼저, 공중파 라디오를 비롯해서 눈에 띄는 선전을 보이고 있는 “벨 앤 세바스찬 Bell & Sebatian”을 보자.
스코틀랜드 출신인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성을 적절히 자극하여 나름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포크 밴드이다.
이들의 음악은 한 편의 동화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섬세한 멜로디와 사랑스러운 보컬로 설명될 수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음악을 통한 명성의 획득이 아니며, 성공을 향한 야망 같은 것은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철학적인 동화를 연상케 하는 이들의 음악은 분명히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어떤 연약함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달콤하고 예쁘지만 어떤 카리스마를 기대하기 힘든 이들의 매력은 오히려 처음에는 친숙하고 쉽게 들리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날카롭고 예민하게 듣는 이의 심장을 자극하는 데 있다.
눈 속의 여우를 부르는 환상적인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에 흐르는 우아함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포크”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앨범을 보는대로, 정신 못 차리고 무조건 사 모으게 되는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 Red House Painters”.
샌프란시스코 출신인 이들의 음악은 미국적이지 않다. 오히려 유럽이나 영국적인 감성을 보인다.
(미국적인 음악과 영국적인 음악의 차이점은 굳이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적인 음악이라고 했을 때, 순간 떠오르는 것은 약간의 버터 냄새와 함께 보다 직설적인 구성이다. 그리고 영국적인 음악은 그에 비해 조금 더 복잡한 뉘앙스를 풍기며, 귀족적인 오만함이나 묘한 비극성, 어두운 낭만성이 존재한다…믿거나 말거나 -_-;;)
조용하고 높낮이가 없는 듯 하지만 의외의 굴곡과 긴장감이 느껴지는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의 음악은 곡을 만들고 부르는 마크 코즐렉의 감성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의 음악은 삶의 고통이나 비극성을 노래하는 한 편의 시와도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결코 서두르지 않는 차분한 음성으로 몽롱한 환상을 불러낸다.
머큐리 레브Mercury Rev.
수성의 회전? 아니, 실은 러시아 발레 댄서의 기민한 움직임에서 착안한 이름.
아방가르드 팝으로도 분류되는 이들의 음악은 듣는 이에 따라서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아방가르드 팝이라고 했을 때 짐작한 이들도 있겠지만, 메큐리 레브의 탄생은 뉴욕에서 이뤄졌다.
감미롭고 심상치 않은, 드라마틱한 기타와 보컬 뿐만 아니라 클라리넷과 플룻의 전형에서 벗어난 연주가 장난꾸러기같은 면모도 보이고 있는 이들의 음악은, 다소 실험적이며 회화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매력이 넘치는 멜로디와 자유로운 형식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메큐리 레브의 음악에서 존 케일(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바로 그)의 감성을 읽어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감독의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의 사운드 트랙으로 알려진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를 만나보자.
엘리엇 스미스는 미국 출신의 포크/펑크 싱어송라이터로 분류되는 뮤지션이다. 지극히 평범하게 들리는 그의 음악은 부드럽지만 듣다 보면 고통과 슬픔이 느껴진다.
경쾌하고 밝은 햇빛 아래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의 노래말을 이루고 있는 것은 깨어져 버린 인간관계거나,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즉 친구와 연인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고백같이 느껴지는 이런 노랫말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간결하면서도 보석같이 빛나는 멜로디이다.
구스 반 산트의 제의를 그가 수록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굿 윌 헌팅 사운드 트랙이 다른 이에 의해서 만들어졌더라면, 그에게 오늘과 같은 명성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 역시 인간의 냄새가 팍팍 나는 아름다운 음악을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언더의 포크 뮤지션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그였겠지)
다소 생소하게 들릴 지 모를 틴더스틱스Tinderstics는 1992년 영국 노팅험에서 결성된 밴드이며, 지극히 영국적인 특이함으로 무장된 음악과 브릿 팝 씬(주류의)과 인디 씬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는 특수한 지위로 알려진 밴드이기도 하다.
문학적인 가사와 서로 얽혀있는 듯한 멜로디, 중얼거리는 듯한 보컬과 완만한 우울함(여리디 여린 키보드와 바이얼린의 무신경한 연주, 냉정한 느낌의 어쿠스틱 기타)을 보이는 악기 편성을 보이는 이들의 음악은 다소 어렵게 들릴 지도 모른다. 어두운 낭만주의는 레너드 코헨의 그것과 닮아있고, 기괴하게 들리는 보컬은 조이 디비전의 (고) 이언 커티스를 닮았다.
틴더스틱스의 음악에는 물 흐르는 듯한 고요함도 물론 내재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컬트에 가까운 광기와 예민한 심미안이 느껴진다.
벤 앤 제이슨Ben & Jason…
영국 출신의 벤 파커Ben Parker와 제이슨 헤이즐리Jason Hazeley로 구성된 듀엣인 이들의 음악은 대단히 어쿠스틱하다.
조니 미첼이나 제프 버클리, 닉 드레이크를 공통으로 좋아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드럽고 감미로운 벤의 보컬과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게 느껴지는 멜로디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모던 락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들의 음악은, 아닌게 아니라 비틀즈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자연스러운 가운데 펼쳐지는 고풍스럽고 다정한 음악. 이것이 바로 벤 앤 제이슨의 음악에 대한 느낌인 것이다.
그리고…
트래비스Travis.
‘정신분열증 밴드'(?!)라고 불리울 만큼 사색적이고 드라마틱한 요소를 넣은 음악을 들려주는 이들의 음악은 “전형적인” 영국성을 보고 있으며, 반가부장적이고 친여성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현실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은유를 잃지 않는 노랫말도 그렇거니와, 인간적인 매력을 흠씬 풍기는 멜로디와 단순한 듯 하지만 의외로 오밀조밀한 사운드의 조화는 이들이 왜 영국 최고의 밴드로 거론되었는지를 알게 한다.
벤 앤 제이슨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모던 락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어떤 장르로 묶어 두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한 것일까… 따뜻하고 편안한 사운드가 마냥 사랑스럽다.
… 하드코어나 테크노 혹은 힙합의 물결이 가시적인 뚜렷함으로 부각되고 있는 때, 조용히 파장을 그리며 퍼져나가고 있는 (뉴) 포크의 선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위적으로 조작된 음이나 딱딱 끊어지는 랩, 거칠게 외치는 우울한 현실세계 속에서 그래도 따뜻한 인간미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잊었던 한 조각의 꿈 혹은 어린 시절 빠져들었던 동화 속의 세계처럼 착하고 예쁜 선율들로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어서가 아닐까.
(안티 포크의 여신, “애니 디 프랑코Ani DiFranco”나 트립합으로도 분류되는 일렉트로닉-포크의 디바 “베쓰 오튼Beth Orton”도 거론해야 했으나 지면상 생략했다.
그리고 포크 뮤지션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포크적인 느낌이 강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이나 포크 락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닉 드레이크Nick Drake”도 ‘과감히’ 생략했다. 그 외의 수많은 당대 포크 뮤지션들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