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그랬다.
불과 그것은 근래 몇 년 사이의 일이었다.
인디라는 단어가 가요나 기획되어 포장되고 상품화 된 락 발라드를 부르는 밴드가 아닌, 락이라는 카테고리하의 여러 장르의 원형을 바라보며 추구하는 밴드들 사이와 머리 위에서 떠돌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락을 듣기만 하던 락 키드 수준에서 벗어나 밴드에 들어가서 어디서건 공연을 한번 해볼 수 있을까 하며 기웃거리던 93년까지만 해도 난 한번도 밴드면 밴드지 인디 밴드라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디라는 키워드는 공중파 방송이나 메이져 기획사(메이져란 말을 붙여주기엔 하는 작태가 너무나 마이너적이긴 하지만 여하튼)를 통하여 다량의 앨범 판매 부수를 획득하지 않는 우리의 그룹사운드 전체를 대변하는 듯한 말이 되었다.
이제 어디에서도 언더라는 단어도 다운타운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는다. 인디와 홍대 주변의 클럽문화를 위시한 인디scene이라는 말을 쓸 뿐이다. 하다 못해 99년 이후로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 수많은 크고 작은 락 페스티발 행사에서도 인디 락 페스티발이라거나 xxxx 인디 페스티발이라는 홍보문구는 들어봤어도 언더 락 페스티발이라거나 xxxx언더그라운드 페스티발이라는 홍보는 본 일이 없다.
그러면 우리가 막연히 듣고 사용하고 있는 이 인디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몇 년 전의 언더라는 단어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디란 간략히 말해서 상업적인 기획이나 대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저예산독립예술의 모든 형태에 적용될 수 있는 단어이다. 음악에만 인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도, 연극에도, 회화에 있어서도 인디라는 단어는 붙여져 사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크고 작은 시련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뚜렷한 세계관을 지니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 가는, 자본의 간섭에서 독립하여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문화가 분명히 이 땅에도 존재한다.
인디라는 단어는 그 자체의 의미에서는 전혀 잘못되거나 부정적인 속성을 내포한 단어는 아니다. 부정적이 아니라면 무슨 이유로 난 이 글을 쓰고 있을까?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천만에..
락에서의, 음악에서의 언더그라운드란 것은 중심에 아직은 서지 못한 이라는, 자본 지향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이나 미국의 인디즈가 그렇 듯 수없이 많고 많은 밴드들 속에서 실력 있고, 스스로의 고유한 개성이 기회를 만난 밴드는 살아남아 메이져로 진출하고 나머지는 해체되거나 도태되듯이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는 매우 자본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카테고리이다.
결국 실력이 기반이 된 재능을 갖추고 그 감성이 적당한 시기에 기회를 만나는 밴드는 유명해지고 넉넉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음악을 통해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그 반면에 소수의 확고한 인디밴드 역시 존재한다. 실력과 감성의 유무에 관계없이 처음부터 자본의 접근을 거부하는 경우이다.
처음에 그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 철저한 폐쇄성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사례였다. 하나는 보다 대중적인 매체에 맞추어야 할 때 요구되는, 고유한 표현에 대한 간섭을 거부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밴드나 개인 음악가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의 변질을 염려한 탓이다.
그러나 락문화가 이곳에서보다는 활성화된 외국에서 전자에 해당되는 인디 마인드는 거의 사라져 가는 추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예전과는 달라서 자본이 보다 극단적인 이미지와 희귀한 표현에 접근해가며 돈벌거리를 찾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머리 좋은 외국의 락 레이블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기획에 의하여 손상되지 않은 순수하고 희소가치 높은 감성이 보다 자본에 근접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나 자신의 제한 받지 않은 그대로의 표현이 자본에 그 자체로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반감을 가질 이유는 아티스트에게도 없을 것이다. 넉넉한 생활과 함께 자신이 음악으로써 표현하려는 세계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그렇다면 이 한국이라는 땅에서 저러한 인디라는 폐쇄성 또는 비자본지향적 성격을 스스로 선택하여 소위 인디밴드라고 불리게 된 밴드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분이 약 밴드 자신이라면 스스로에게 물어도 될것이고, 밴드를 하는 친구를 가진 분이라면 붙잡고 물어봐도 될 것이다.
끝내 상업적이지 않기를, 자본과는 분리되어(또는 개의치 않고) 소수의 지지를 받으며, 할수 있는 날까지 클럽 등에서 연주하며, 노래부르다가 이름 없이 사라져가도 그것으로 만족할 것을 스스로 선택하였는가?
이것이 바로 인디라는 카테고리가 순수하게 의미하는 것이라면 단순한 취미가 아닌음악인으로써의 길을 걷고 싶어하는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물론 그 자체를 처음부터 받아들인 밴드 역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렇고 그렇지 않고 에 대한 가치평가를 위한 글이 아니라,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디라는 문화적 분류에 갇혀버린 밴드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가정 아닌 가정 하에 쓰여진 글인 것이다.
누군가는 반문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 자체의 개념에 집착할 필요가 무엇이냐고, 누가 그런 것을 생각하며 음악을 하며, 그런다고 한들 밴드가 잘되고 못되는 것이 그러한 단어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그러나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인디라는 허울좋은 뭉뚱그려짐하에서 이 땅의 밴드들에게 상처를 주고 현재에도 분명히 우리 락 음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위선인 것이다.
실력이 없으니까 안되지 누굴 탓해
예술이란 그 다양한 표현방법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보다 근원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을 위로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도 음악이라는 것이 있고 다시 파고들자면 우리는 그 중에서도 락이라는 수단으로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감, 말하자면 보다 위안이 되고 가치 있는 커뮤니케이트에 접근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트는 락 음악 자체를 창조하고 연주하는 밴드나 개인과 더불어 몇가지 구성요소들과 함께 문화적인 공간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크게 말하여 음반을 발매하는 레이블(이쪽에서는 기획사가 아닌 레이블이라는 축소된 규모로 불리어 진다), 락 미디어(전문잡지, 인터넷 웹진, 또는 음악 방송 등의),라이브가 이루어지는 클럽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이러한 커뮤니케이트는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은 누가 먼저 붙이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인디라는 개념이 이 시장의 논리를 지배하면서부터 또는 구실이 되면서부터 더욱 구체적으로 비뚤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실력이 없으니까 안되지 무엇을 탓해?
나는 여러 레이블,잡지와 웹진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수도 없이 저 말을 들어왔다. 요컨대 그들은 이러한 논리를 펼친다. 레드 제플린의 필이나 드림 씨어터의 연주력만큼 해내는 밴드가 있다면 어차피 어디에서건 먹힐 것이다. 그러나 한국엔 그러한 재능의 밴드가 없고 그들의 감각에 다가서기란 하늘에 별따는 것처럼 요원한 일이다. 그러므로 안 되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이러한 시각은 우리의 락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마인드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생각들이다. 결국 이러한 생각은 스스로 음악을 하는 밴드와 그것을 듣거나 혹은 락은 들으면서도 국내의 언더 밴드는 외면하고 있는 일부 또는 대다수의 락애호가들에게까지 전파 되어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 말이 틀리고 맞고 이전에 우리의 밴드는 어차피 안돼 라는 저러한 사고 방식이 결국 우리의 락문화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부정적인 영향 말고는 과연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문화에 붙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나아가서는 권위를 찾기까지 하면서 우리의 음악 자체에 대하여 그런 식으로 지껄이고 생각한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파렴치한 일인가.
실제로 저러한 잘못된 마인드는 인디라는 이름 하에 우리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을 불러서 만드는 대부분의 앨범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 중 절반을 훨씬 넘는 숫자의 앨범이 컴필레이션 앨범이었다. 한 앨범에 대여섯개 또는 열 밴드 이상의 밴드를 참여하게 하여 그들은 앨범을 만든다. 메이져에서 활동하는 가수나 그룹의 앨범 한장이 대략 12,000원~15,000원 정도의 선이지만 10개 밴드가 참여해서 열몇곡을 채운 앨범의 시디 한 장 가격은 만원도 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가격만큼이나 형편없는 녹음과 형편없이 초라하게 만들어진, 자켓의 매수와 품질에서의 종이값까지도 철저히 절약된 앨범이 만들어진다. 해당 앨범에 참여한 많은 밴드의 음악과 밴드의 값어치 전부가 발라드나 댄스 가수 한명 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도매급으로 팔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음악과 정신이, 음악에 대한 고뇌가 열 밴드를 합쳐도 댄스 그룹 하나에도 못 미칠 만큼 값어치 없는 것이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홍보도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앨범의 발매 숫자는 기막히게도 열 개의 밴드라면 열 개의 밴드에게 각각 적당히 존재할 소규모의 팬들의 합산치 정도와 일치한다.(몇개의 앨범을 제외하고)
이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인디라는 마인드를 내세우며 저들이 우리의 락 문화에 붙어서 해온 것은 우리의 음악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견해로부터 출발한, 오로지 상업적인 투자가치의(나름대로는 상당히 냉정한)부재라는 판단하에서 이루어진 소규모 투자, 소규모 수확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안전하게 조금씩 투자해서 조금씩 거두겠다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레이블의 저러한 투자형태에 문제제기를 하면 그들은 인디라는 개념이 가진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는?-순수한 마인드에 대하여 강조하려 한다. 그러나 어떤 밴드도 저런 식의 인디를 자처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앨범이 발표될 수 있다는 사실만을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앨범 발매가 가능하다는 희망만으로도 모든 영혼을 다해서 협조를 하려 들었을 것이며 레이블은 그러한 밴드의 희망을 부풀리고 적당한 선에서 져버려왔다.
재정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
제대로 홍보되지도 않는 컴필레이션 앨범 여러장 만들 비용은 가능성 있는 한 두 밴드에게 투자되어 제대로 된 녹음과 깔끔한 자켓, 또한 적극적인 홍보로 이어졌어야 한다. 그러한 실력과 카리스마와 가능성을 갖춘 몇 개의 밴드가 시장에 두각되고 그것이 상업적인 부가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사회적인 분위기로 통할 수 있다면 메이져 기획사와 방송, 대기업들의 투자는 우리의 락을, 밴드들을 지금처럼 버려두진 않을 것이다.
자칭 인디레이블을 자처하는 소규모 기획사들이 우리의 락문화에서 담당하고 해나갔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방향이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은 문화에 대한 애정 대신에 그들 자신이 (상업적인 가치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우리의 락과 밴드들의 가능성을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밴드들은 실력이 없어서 안되는 것이다 라는 말들은 이러한 불신의 일례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러한 분위기와 인디 라는 개념 아래에서 그들은 이 문화의 분위기를, 뒤이어 뛰어드는 문화적인 투자시도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앨범에 참여했던 밴드가 자신들에게 소중한 나름대로의 음악적인 결론을 투자해서 남은 것은, 부풀려져서 제의되었던 희망만큼이나 큰 상처와 본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는 큰 괴리가 있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듯한 결과물들 뿐이었다.
직접 해당 앨범에 참여한 밴드가 아닌 이상 , 해당 밴드의 매니아가 아닌 이상, 그러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했던 밴드들의 이름을 셋 이상 기억해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한 앨범이 한번이라도 그 뜻이 바람직하지 않고 원대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항상 그들은 우리 락 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나아간다고 말했었다. 그걸 또 인디 락이라고 불러왔었다.
정작 밴드에겐 그저 막연한 의미인 인디라는 개념은 그들의 밴드와 음악에 대한 소규모 투자에 위한 구실로 이용되어 왔을 뿐이다
결국 그러한 기획자들로부터 비롯된 불신은 직접 음악을 하는 밴드와 그것을 찾는 팬들에까지 만연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잡지들마저 우리의 락은 수준이 낮다며 취급하려 들지 않는다. 90%가 넘는 외국 밴드들에 대한 기사뒤에 약간의 양념처럼 국내락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그러면서도 왜 한국에서 잡지를 팔아먹으려 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무슨 염치로? 그러면서 음악계의 권위자인양 거드름을 잡는다. 어떤 잡지가 그러냐고 묻는다면 락 음악잡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잡지라고 말해줄 것이다. 다 좋다 단, 외국으로 나가서 장사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변화를 내어올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먼저 상업적인 투자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전반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문화적 발판아래에서 우리의 밴드들이 어깨를 펴고 음악을 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음악 자체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나중으로 미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락이 가능성이 있고 없고를 지금의 시점에서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간단하게 클래식을 생각해보자.
클래식 음악에 대한 교육적 투자는 오래전부터 사회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세계적인 첼리스트,바이올리니스트,지휘자,작곡가, 우린 이 모두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민족이 락음악을 소화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은, 투자에 대한 비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의 변명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현재 우리 락문화의 현실은 그 문화의 가능성을 불신하는 이들에 의하여 투자 가치가 극히 제한된 저예산의 싸구려 문화로 그 모양새를 굳혀가고 있으며 그러한 마인드가 결여된 시도는 인디라는 거창한 위선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그런 위선속의 앨범 제작과 갖가지 행사에 돈도, 홍보도, 음악마저도 아무것도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한 채 우리의 밴드들은 가볍게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이다.
난 그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안다고 자처하며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조금만 애정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현재의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밴드를 하는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나는 말씀드리고 싶다. 이 문화의 주인공은 밴드 여러분 자신이며, 여러분들의 음악적인 시도와 열정이 아직 멈추지 않은 한 누구도 그 시도의 가치를 가볍게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가슴과 어깨를 펴고 어디서건 자신의 음악에 당당해지되 항상 깨어있으라고.
인디라는 위선으로 여러분들에게 손을 뻗치는 갖가지 상업적인 소규모 앵벌이에 끌려다니지 말라고, 적어도 당신이 전업음악인으로서 음악과 더불어 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당신은 인디라는 이름에 갇혀서는 안된다고.
… 결국 인디는 없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