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원고청탁을 받고 망설였다.
언더계에 몸담고 있는 한사람으로서, 나의 얕은 글을 통해 사람들이 인디, 언더계에 갖는 관심과 애정의 시선을 짖궂게 뒤틀어 버리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까, 나의 관점이라는게 그리 중요하진 않을텐데…라는 생각 등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사람들보단 좀 더 깊이 이 바닥(!)을 알고 좀 더 몸으로 뒹군 경험이 있기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무지(용서 하시길)를 조금이나마 바로 잡을 수 있을만한 어떤 것이 내 경험 안에 있다고 판단되었고,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내게 원고를 부탁해 온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담론의 지향성에도 어느 정도 보탬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두서가 없더라도 관대하게 보아주시길.
작년까지 우리밴드는 A레이블 소속 밴드였다.
이름만 대면 인디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만한, 인디계에선 최대의 레이블이었다.
계약기간 1년. 당연히 계약금은 없었고, 앨범제작과 공연섭외, 그리고 가능하다면 CF섭외까지의 여러 일들에 대한 매니지먼트들을 담당해주기로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판 한 장 낸다는 게, 프로들이나 할 수 있는 거창한 일이었고, 제의가 들어왔을 땐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 예정대로 판이 나왔고, 우리 전에 앨범을 낸 밴드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홍보 및 매니지먼트는 그다지 수월치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밴드에 비해 우리 밴드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누가 더 나을 것도 없이 ‘문화적 이슈 만들기’의 희생양이 된 것은 공통적이었고, ‘음악만으로 먹고 살게 해주겠다’던 레이블 측의 약속 아닌 약속은 역시나 공중분해 되고 말았다.
용두사미. 결국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문제는, 정말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다가 안되면 다른 데로 사라지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솔직히 밴드가 뭘 알겠는가? 순진한 뮤지션들…
적자투성이인 레이블의 입장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밴드들에 대한 책임은 고사하고, 무성의한 일처리와 음악은 뒤로 제쳐놓고, 그저 문화적 가십 꺼리만을 양산해 온 그네들의 방식엔 분명 방법론적인 문제뿐 아니라 삐뚤어진 마인드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성과가 있었다며 자위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지만, 그 사이에 밴드와 레이블간의 불신의 골은 깊어져만 간 게 사실이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긴머리에 요란한 차림의 젊은 애들.
이것이 레이블이 그렇게 공들여 대중에게 심어놓은 이미지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앞으로도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며칠 전에도 라면 먹는 밴드의 모습이 TV에 나온 것을 봤다.
레이블들이 생기고, 인디에 대한 담론들이 터져나와 매스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게 벌써 3-4년 전의 일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밴드는 라면을 먹고 힘겹게 연주한다. 예전 그들이 밴드들에게 자신있게 보여주었던 청사진은 어디로 갔는가?
거품공약을 하고 자기네들끼리 싸움질이나 해대는 사기꾼 정치인들과 과연 뭐가 다르단 말인가?
또, 그들이 얼마나 음악에 있어서 몰상식한 짓꺼리들을 해왔는지 얘기하고자 한다.
작년 말, 우리는 A레이블이 제작한 모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가했다. 우린 열심히 녹음했고, 믹싱할 때 꼭 좀 불러달라고 여러 번 부탁한 뒤, 전화를 기다렸다. 또 역시나…, 언제 믹싱 해버렸는지, 앨범은 시중에 발매되었고, 우연히 그 앨범을 접한 우리는 정말 분노했다.
녹음 당시 우리의 아이디어와 음악에 관한 우리의 요구는 완전 무시된 채, 전혀 다른 음악이 들려왔던 것이다.
아무리 뭘 모르는 사람들이라지만 그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뮤지션 입장에서, 자신이 만든 작품(!)이 그렇게 마구잡이로 뜯어 고쳐진다는 게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메이져보다 더 심한 짓이 아닌가?
그렇게 부탁했건만, 뮤지션은 둘째고, 앨범 발매만이 우선인 이 돌대가리 집단이 한 일의 결과는 생각보다도 더 잔인했다. 무식한 것들.
우리의 독집 앨범에 관한 인세의 경우, 작년 가을에 받은 인세(앨범이 나온 이후 한번)를 빼곤, 앨범 판매량에 관한 보고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산해서 보고해 주기로 한 약속 역시 어디로 달아나 버렸는지, 작년 가을 그 때 빼곤, 전혀 깜깜 무소식이다.
우리밴드는 작년말, A레이블과 계약이 끝났다. 그때까지의 판매수입을 정산해주기로 한 레이블 측은 또다시 약속을 어겼고, 이젠 얘기 꺼내기도 싫다.
그냥 지나다가 재수없게 똥 한번 밟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우리만 당한 것도 아니고 뭐.
올해 우리는 레이블을 옮겼다.
일단은 전의 레이블처럼 거창한 말들보다도, 쉽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과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까지…라고 말하는 레이블 측의 말에 신뢰가 갔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일단은 레이블 측에서 제공해 준 연습실을 이용하고 있는 것과,허황된 기대는 품지않는다는 것. 좀 더 음악에 열중하게 해 준 레이블 측에 감사한다.
물론 좀 더 겪어봐야 알겠지만.
그간 우리의 음악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려주면, 그때마다 못 믿겠다는 듯한 그들의 표정을 나는 본다.
지금까지 내가 얘기한 것보다도 더 짜증나는 일들이 숱하다.
하지만, 더 얘기해 뭣하랴. 결국 우리가 삭히고 말아야 할 우리의 문제이고, 어제보단 내일이 중요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부탁 드린다.
정말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디를 위해 일해주시길.
그래서 정말 순수하게 음악을 위해 고민하고 연주하는 뮤지션들에게 정력제까진 아니더라도, 피로회복제 정도의 힘이 되어주시길.
이 척박한 땅에서 우린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의 결과물들을 열심히 연주하고,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으면 그 뿐.
그게 전부다.
글:L밴드 A모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