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를 보면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제작 방식에서부터 예전의 충무로 도제 시스템을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젊은 감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시나리오나 기법에서도 자유로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 중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영화와 독립된 개체로서도 존재가 인정되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 역시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80년대 이후 해외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양한 뮤지션들의 모음집 형태의 사운드 트랙의 범람(!) 일 것이다.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이나 <스폰 Spawn>, <로스트 하이웨이 Lost Highway>, <싱글스 Singles>, <롤라 런 Run Lola Run>, <케미컬 제너레이션 Chemical Generation> 등 영화보다 더 자극적이고 다양한 사운드 트랙의 출현은 말 그대로 하나의 현상이 되었고 지금도 영화와 별개로 제작 유통되는 사운드 트랙의 선전은 여전하다.
국내의 경우, 해외와는 달리 최근까지도 영화 사운드 트랙이 작품으로 인정 받은 경우가 별로 없었고, 유명한 “영화 음악가”(해외의] 예를 든다면 대니 앨프먼Danny Elfman이나 반젤리스Vangelis, 마크 노플러Mark Knoffler, 엔리오 모리꼬네 등등) 가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 음악을 단순히 영화의 배경 음악 정도로만 생각하던 시기가 지나고, 영화 음악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도 외국의 락이나 팝 등의 음악을 ‘저작권료’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무단 도용하거나-몰라서 그랬던 경우도 있지만…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당연히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 아닌가- 저작권료를 주고 외국의 음악을 사서 영화에 삽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영화 사운드 트랙이 만들어진 경우도 별로 없었고-당연히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니까- 나온다 하더라도 소리소문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
섣부른 단정은 언제나 위험한 것이지만, 국내 영화 음악에도 창작의 열풍과 새로운 시각이 점점 나타나고 있다.
90년대 이후의 젊은 영화에서는 사운드 트랙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데 없어서는 안될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인디 음악의 사용이다.
그리고 꼭 인디 음악이 아니라 하더라도 기존 메이저 뮤지션의 구태의연한 음악과는 차별적인 음악들이 여러 영화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경향은 우리나라에도 명실상부한 ‘영화 음악가’의 존재가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1998)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명세)(1999), [정사] (이재용)(1999),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2000), [여고괴담 2](박기형)(1999), [약속] (김유진)(1999) 등의 영화에서 사운드 트랙을 담당했던 조성우가 바로 그다.
인디 음악과 영화의 즐거운 만남을 구체적인 예로 들자면, 영화계의 스캔들 메이커면서 항상 혁신적인 방식의 영화를 제작해온 장선우 감독의 영화들을 먼저 볼 수 있다.
먼저 그가 1996년 제작한 [꽃잎]에서는 신중현의 “꽃잎”이 메인 테마로 사용되었고,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의 멤버이기도 했던 타악기 주자 원일이 사운드 트랙을 담당해서 영화의 감동을 더욱 절실히 전해 주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을 그린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만일 외국곡이었다면 그 느낌은 아주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삐삐밴드 2집에 수록된 곡의 제목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파격적인 영화 [나쁜 영화] (1997)에서는 삐삐밴드 뿐만 아니라, 실험적이고 회화적인 파격을 선보여왔던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의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가 나오면서 행려와 ‘이땅의 소년소녀들’의 ‘나쁜’ 이야기에 현실감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올 상반기, 영화계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거짓말]의 사운드 트랙은 강기영이라고 불리웠던 달파란의 테크노 비트와 볼빨간의 “나는 육체의 환타지”로 채워져 있다.
장선우처럼 영화 감독이 앞선 감각을 발휘해 사운드 트랙을 선별해내는 경우도 있지만, 영화의 뮤직 디렉터가 앞선 감각을 발휘해 영화의 성패와는 별개로 사운드 트랙이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다.
1997년 스물 두 살의 이서군이 최연소 감독 데뷔전을 치룬 [러브 러브Rub Love]의 경우, 기대치에 못미친 영화평에도 불구하고 매우 우수한 사운드 트랙으로 화제를 낳았다.
[러브 러브] 사운드 트랙은 “강아지 문화/예술”과 관계된 밴드들이 대거 출연해 만든 앨범으로 웬만한 컴필레이션 앨범보다 더 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나온 이상인의 [질주]같은 경우, 인디 음악 판이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주인공 역시 인디 락커-사운드 트랙도 인디 밴드들의 음악들로 채워졌다.
주인공을 맡았던 남상아가 속한 헤클베리 핀의 음악을 위시해 미선이, 언니네 이발관, 스푼, 옐로우 키친, 강아지 등의 밴드들이 참여했었다. 마치 인디 락 컴필레이션 앨범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던 이 앨범 역시 그저 그런 영화 평과는 달리 인디락에 대한 관심을 끌어냈었다.
현재 개봉 중인 김기덕의 영화 [섬]의 경우, 코코어를 위시해서 허클베리핀 등 인디 밴드들의 음악이 삽입된 사운드 트랙을 선보이고 있는데, 특이할 만한 점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영화에 맞추어 트랙에 수록된 곡들을 창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신해철의 테크노 사운드가 두드러졌던 송능한의 [세기말] (1999),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의 음악이 특이한 개성의 영화와 어울렸던 김지운 [반칙왕] (2000), 잔잔한 흐름의 영화와 어울리는 조동익 [내 마음의 풍금] (1999)(조동익의 음악) 등… 최근 나온 영화들의 사 운드 트랙은 국내 다양한 뮤지션들의 창작품이라는 특징이 두드러지고 있다.
… 이런 현상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적어도 영화계에서는(?) 인디 음악의 진가를 알아주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유명한 곡의 저작권료를 지불하거나, 주류 뮤지션에게 영화 음악을 맡기는 것보다 적은 비용이 들어서일까? (-_-;;)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다.
답습되지 않은 새로운 상상력의 산물인 영화에 맞는 음악이 현재 주류에 존재하고 있는 음악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아마, 앞으로도 인디(적인 성향의) 음악과 젊은 영화와의 행복한 밀월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와 음악이 만나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국내에도 영화 음악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바램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