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친구 이야기로 이번 달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나로써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엽기적인 기억으로 떠오르는 일 중의 하나인데…
친구는 명문 S대에 다녔다. 무슨 과였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전자 제어 어쩌구 뭐 그런 데 였던 것같다. 물론 어려서부터 착실하기 그지없는 친구였다. 그는 대학 입학 후에도 모범생 생활을 했고, 그야말로 성실 그 자체였다.
입학한지 1년이 조금 지난 후, 이 친구가 학교를 안나오기 시작했다.
뭐 학교 안나오는 것이 대수이겠는가마는 이 친구에게 있어서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좀 노는가보다’라고 생각했던 나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연락이 끊어졌다. 이 친구는 학교 근처에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전화도 끊어지고 삐삐(95년, 그때는 핸드폰이 흔치 않은 시절이었다)도 끊어졌다.
두 달이 지났다. 여전히 연락은 두절상태.
뭔가 일이 나도 단단히 난 것 같다고 생각한 나와 몇몇 친구는 그 문제의 친구를 직접 찾아가기로 하고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그 친구를 찾아갔다.
신림동 어느 지하 셋방에서 그 친구는 핏기 없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
‘어, 너희가 어떻게…’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가구라고는 없었다. 지저분한 냄비에는 먹다 남은 라면 국수 몇가닥, 아무데나 버려져 있는 담배 꽁초(담배도 안하던 친구였는데…), 그리고 결정적으로 싸구려 일렉기타와 거지같은 앰프…
‘너 뭐하는거냐?’
‘보다시피…’
사실 이 친구는 ROCK음악은 커녕 가요도 안듣던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를 했던 나는 분위기가 파악되었다. 나는 물어보았다.
‘뭘 듣고?’
‘나 이제 학교 안다니고 음악할거다. 세상에 이런 음악도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나는 새롭게 태어난 거야. 그들은 내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버렸어.’
이 무신 3류 영화 대사인가… 시나리오 대로라면 이제 이 친구에게 남은 것은 수 년동안의 노력과 어려움, 그리고 드디어 유명해지는 순간 뇌종양 내지는 백혈병으로 시한부인생을 선고받고, 이를 주위사람에게 숨기고 지내다가 공연 도중 쓰러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공부밖에 모르던 이 친구를 골수 음악인의 길로 인도한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뭘 듣고?’
Jimi Hendrix Experience일까? Cream? BBA? Zeppelin?
그런데 그의 대답은…
‘핼로윈Helloween’
이 이야기의 교훈은…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
2. 너희가 타르코프스키를 아느냐
2-1. 지적 허영심
문화에도 유행이 있다.
90년대 초/중반 대중 문화계는 (so-called) art movie, Jazz열풍이 있었다.
Jazz열풍에 대해서는 DJ Jason칼럼 2회분에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었다. 뭐 본인이 직접 이렇게 이야기하자니 조금 민망하지만, 이것은 매우매우 잘 쓴 것 같다. 아직도 안 본 사람이 있다면 어서 빨리 읽어보기를 바란다.
magazine에서 ‘지난호 보기’로 간 후 ‘1999년 11월’을 click, ‘DJ Jason 칼럼 음악과 인생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2) “재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알아보는 J.D.Salinger’를 읽어보면 된다.
읽어 본 사람이라도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나도 가끔 다시 읽어보며 뿌듯해 하곤 한다.
참고로 그 글에 부언을 하자면, 그 글에서 거론되었던 차인표의 섹소폰 연주 말인데, 그 드라마가 방송되던 당시 이태원 all that jazz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코웃음이 나올 일이다.
그들중 과연 지금까지 Jazz를 듣는 이가 몇이나 될까. Jazz 안 듣는 것은 아무 상관 없지만 제발 ‘내가 그런 시절이 있었지’ 어쩌구 하며 주절거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anyway…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뭔가 지적 허영심이 심한 사람들은 남들이 잘 모르는 것을 찾아다닌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껍데기만 보고는 허영심에 가득차 주절주절 잘난척 한다.
내가 이 칼럼에서 수 회에 걸쳐 누누히 이야기하고 있는 핵심 중 하나, ‘뭘 좋아하든 상관 없지만 와인에 얼음 띄워먹지는 말자’는 것을 다시한 번 강조하고 싶다.
2-2 malt whiskey on the rock까지는 귀엽게 봐주지만 타르코프스키 만은…
‘씨네마 떽’이 급성장했던 시기였으나 소위 예술영화는 여전히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대학가에서는 영화 동아리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고 영화 상영회가 붐을 이루었다. 이 때는 요즘처럼 No cut flim으로 상영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 보다도 그간 소개되지 않았던 작가주의 영화들,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광적 반응을 보였던 소위 컬트 무비 등을 보여주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필자도 유행 따라 역삼동의 어느 ‘씨네마 떽’도 조금 들락날락거리고, Jean Luc Godard를 만나게 되었고, ‘제 7의 봉인’을 보다가 졸기도 했으며 ‘황금 마차’를 보며 뻑가기도 했다.
이 때가 우리나라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전성 시대였다.
왜냐, 잘 모르지만 왠지 그럴 듯 해 보이니까 그냥 이야기 하다 보니 너도 나도 타르코프스키를 이야기 했다.
타르코프스키, 이름조차 들어 본 사람이 몇 없던 시절이던 그 때, 그의 영화는 소수 씨네마 떽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유행이 유행인지라 그의 이름은 영화 전문가와 진정한 매니아들 사이에 오갔다.
영화라는 쟝르의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그를 논하지 않고 영화를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지적 허영심에 불타는 이들의 입에서도 당연히 그의 이름은 나왔다.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니까 자신들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들은 타르코프스키는 커녕 키에쥘롭스키나 혹은 심지어 차이코프스키도, 어쩌면 고르바쵸프도 모르지만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감독으로 타르코프스키의 이름을 댔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구원이 어쩌고 인간과 신이 어쩌고 떠들어댔다. 베르히만과 비교분석을 하기까지도 했지만 베르히만의 영화를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안심하고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이니까.
이들이 이야기하니 결론적으로 너도 나도 타르코프스키를 이야기 했다. 왜냐, 이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 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와인에 얼음을 띄워 마시며 향을 논하였고 브라질에서 수입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원두를 논하였다.
2-3. 그리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이 한 순간 모두 입을 다물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모 극장에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상영하게 된 것이다.
뭐 알다시피 대중의 중론은 ‘이 영화를 보는 것이 바로 ‘희생’이다’였다. 소위 헐리우드 상업영화에만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일이다.
(내 경우, ‘희생’은 잘 봤지만, ‘노스탤지아’는 보다가 30분 쯤 잤다. 솔직한 그때 내 심정은… 자나 깨나 별 관계 없는 영화인 듯 싶었다.)
허영심에 가득 찬 이들은 자신들이 떠들어대던 이 영화를 보고서(사실 이들 중 본 사람도 몇 안된다) 아무도 타르코프스키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3. ‘알렉산더’가 ‘vodka’면 ‘르망’은 ‘스포츠 카’다.
요즈음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채팅방에 들어가 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솔직히 알렉산더 보드카와 진로 소주와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캡틴 쿡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러나 공장도 가격이 한 병 1000원 정도 밖에 안하는 알렉산더 보드카에서 ‘absolute’같은 맛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할 필요도 없다.
한 번도 기대조차 해 본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