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매우 거창합니다만 태양소년이 경험한 일본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다닌 좁은 지역에 국한된 일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쩌면 충격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인지는 곧 드러나게 됩니다.
어쨌든 태양을 비롯한 ‘오션’의 멤버들은 지난 겨울, 재미있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일본에 공연을 가지 않겠느냐는 거죠.
“네, 감사합니다!!!”
거부할 이유가 없잖아요. 게다가 공짜로 말이죠.
아, 일본의 여고생들(‘고갸르’라고 한다죠, 아마…). 인터넷에서나 보던, 그리고 간혹 꿈에서도 나타나던 그 모습을 직접 보게 된다고 상상하니 아찔했습니다. 게다가 참가할 행사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콘테스트라고 하니 꿈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멋지게 잘 할거야. 꼭 해 낼 거야!!!’
물론 이름 있는 페스티발 같은데 참석하는 거라면 더 좋겠죠. 그러나 뭐 그렇게 한 것 없이 공짜만 바래서는 안 되는 일 아닙니까?
우리가 강원대 출신의 밴드라서 강원도와 협력 관계에 있는 일본 돗토리현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초청된 것입니다.
좌우지간 예정된 날짜가 다가와 비행기에 두둥실 실려 일본 오사까에 날아가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돗토리시(현청 소재지)에 도착했습니다. 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이 ‘돗토리’가 우리말 ‘도토리’하고 발음이 거의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농담으로 ‘참 도토리가 많이 나나보지?’하곤 했는데 이거 정말 그 이유 때문에 도토리 가공 사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더군요.
정말이지 앞으로 애 낳으면 이름은 잘 지어야 되겠습니다.
행사는 도착한 다음 날 이었습니다. 제목은 ‘영 뮤직 페스티발’.
참가자격, 돗토리 현 내의 고등학생 밴드. 그 중에 이미 예선을 거쳐 엄선된 8밴드가 오늘의 주인공들입니다. 우리는 콘테스트에 참가하는 밴드들이 다 연주한 뒤에 짧게 공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준비하고는 느긋이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아니, 무슨 콘테스트를 하는데, 밴드가 참가곡 2곡(자작곡입니다)을 10여 분 연주하고 나면 밴드 멤버들을 죽 세워 놓고, 뭐라고 뭐라고 심사위원들이 하는 말이, 이게 장난 아니게 깁니다. 한 20분 정도 되나?
그것도 한 밴드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매 밴드 연주 뒤에 그러니 좀 지루합니까? 당최 알아들을 수도 없으니……
그래서 통역에게 물어봤습니다. 이 사람들, 심사 위원들, 한가한 사람들이냐고.
그랬더니 대답이 말이죠,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은 아무로 나미에나 뮤즈 같은, 일본에서도 판 제일 많이 파는 가수들을 가르치는 보컬 코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아주 유명한 기타리스트(이 사람의 부인도 유명한데 칙 코리아 밴드와도 같이 작업하곤 하는 피아니스트랍니다), 그리고 또 유명한(제가 잘 몰라서 그렇지 하여튼 유명하답니다) 뮤직 디렉터 등등, 별로 한가해 보이지는 않는 사람들이랍니다.
여러분, 혹시 돗토리가 일본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실 겁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일본 사람들한테 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인구는 16만, 우리 동해를 끼고 있는 작은 도시, 내세울 것이 얼마나 없으면 도토리 가공 사업을 육성한다고 하는 그 도시.
“어이, 나 내일 돗토리에 가네.”
“어이, 실없는 사람,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가?”
돗토리가 이 정도입니다. 고등학생 밴드 콘테스트입니다. 공연장은 좋습니다만 관객이래야 친구들, 가족들 응원 온 정도입니다.
“그럼, 이 사람들이 도대체 재들을 세워놓고 뭐라고 하는 거죠?”
심사평을 한답니다. 그것도 말이죠.
심사평을 한답니다. 그것도 말이죠,이런 식으로..
“느네는 도대체 뭘 믿고 여기 나왔니? 당장 집어치우고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게 낫겠다.”
“느네는 보컬이 노래는 잘 하는데 연주가 시원치 않아. 그러니 노래하는 애는 솔로를 하고 나머지는 그만 둬라, 애들아.”
“애, 그 부분에서는 림샷(스네어 드럼을 치는 타법 중의 하나로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을 쳐서는 분위기가 깨지지 않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드럼을 치는 거니?”
“아, 스케일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화성에만 맞는다고 대충 연주해서는 좋은 음악이 만들어지지 않는 거야. 그 부분은 멜로딕 마이너로 연주하는 게 낫지 않았겠어?”
“그 때, 그래, 기타가 솔로 연주할 때 보컬이 슬며시 다가가서 어깨에다 손 올리고는 객석 쪽을 야리는 그 시선, 그거 아주 죽여줬어.”
장장 20여 분 간을 말입니다. 내가 지루해 죽을 뻔한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이런 생산적인 대화를 무던히도 잘 나눴다는 것이죠.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 콘테스트라는 것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하면 왜 1등인지, 꼴찌를 하면 왜 꼴찌인지 알 수도 있구나. 내 음악적 능력은 어디까지 통하는 지 알아 볼 수도 있구나. 이 인간들 무서운 인간들이구나……’
이런 콘테스트가 지역마다 있답니다. 자기 동네에서 일등 하면 옆 동네 일등하고 한 판 붙고 또 이기면 또 붙고 또 이기면 저 멀리 동경 애들하고도 한 판 겨루고…… 물론 음악은 스포츠가 아닙니다(그런데 요즘은 ‘밴드’나 ‘그룹’이라는 말 대신 ‘팀’이라는 말을 누구나 쓰는 걸 보면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이 스포츠로 취급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위가 중요할 수는 없죠. 그러나 그 어린 것들이 얼마나 자극이 되겠습니까?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자기 노래 잘 만들면(카피곡으로 하는 콘테스트는 없는 것 같더군요) 더 좋은 기회가 온다는 걸 아무리 어리다 한들 모르겠습니까? 그 고등학생들, 사실 연주 그렇게 잘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하는 고등학생 애들하고 비슷비슷합니다. 그런데 개네들이 그런 전문가들 앞에서 비평받으면서 얻게 될 결실들을 생각해 보세요.
왠지 착잡했습니다.
저는 베이스 기타 독학하고 아직까지도 그런 어드바이스 제대로 받아본 적 없습니다(뭐 그랬다해도 좋은 연주자 되기는 영 글렀겠지만요, 청개구리 띠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 그런 어드바이스 해주지도 못합니다. 뭐, 아는 게 있어야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가가 필요하구나’ 라구요.
행사는 끝났습니다. 저녁을 먹고는 ‘after hours’라는 클럽에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짧으나마 연주하기로 돼있었지요.
마침 그 날이 ‘blues night’라고 멀리 다른 도시에서도 밴드들이 와서 연주하는 공연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전부 아마츄어 밴드라고 했습니다. 리듬 앤 블루스, 블루스 락 등의 귀에 익은 곡들이 연주되었습니다. 잘 하느냐고요?
일본인들인데, 연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아닌데, 돗토리의 작은 클럽에서 하는 공연인데, 잘 했습니다. 아니 자연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나오더라구요.
그래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좋은 연주할 수 있는지 알았으니까요. 이미 역사가 오래된 것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신나게 즐기고, 술도 양껏 마시고 기분 좋게 연주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노래도 반응이 확 와서 앵콜도 받았습니다(아마 다들 술에 취했었나 보지요). 호텔에서 잠도 잘 자구요. 꿈에서는 지미 헨드릭스도 나와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서울 거리가 지저분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기뻤습니다.
제가 겪은 며칠 간의 일본은, 정확히 일본의 한 시골의 음악적 환경은 분명히 우리보다 한 수 위 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놀랍고 부러웠지만 지금은 별로 부럽지 않습니다.
우리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 무척 힘든 환경에서 생활하지요. 그래도 열심히 노래 만들고 연주하는 밴드들이 많아서 우리도 언젠가는 그 사람들 사는 것처럼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나라 고등학생들도 그런 콘테스트 겪으면 더 힘을 얻으며 좋은 연주자 될 수 있고, 또 연주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주관이 뚜렷한 비평가도 생길 거고, 그 외 음악 산업 내의 여러 분야에서의 전문가들도 많아질 거고, 두루두루 행복한 나라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라도,
못 믿으시겠다 구요?
그럼, 믿거나 말거나.
이상 태양 소년의 일본 어느 시골 체험기였습니다. 안녕……
아 참, 일본 여고생들!!!
글쎄, 그게 말이죠, 이쁘고 귀여운데 실제로 보니까 이상한 생각은 안 들던데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글: 태양 소년(오션 vocal/b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