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24일.
그러니까 6.25의 이브날.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별러왔던 블루노이즈 콘서트가 열렸다.
1999년 1월 1일. 자본금도 없이 사이트를 오픈한 이래 좋은 음악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조금씩 그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저기.. 블루노이즈는 공연 주최 안 하나요?”
“해야지요. 언젠가는..”
그리고 올해 5월이 되어서야 우리는 서서히 그 준비를 시작했다.
첫 공연기획을 하면서 우리가 생각한 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공연만은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커다랗게 열리는 공연장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언더의 오버팀들로 이루어진 공연이 아니라, 실력을 지닌 언더의 숨어있는 보석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일단 많은 밴드가 나오면 안 된다.
그럼 밴드들이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들려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공연시간이 길어지면 지루해할 테니 40분에서 50분 길이로 하자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4시간이 넘어가는 공연은 보는 사람이 질리니 3팀에서 4팀 정도 팀을 결정하자는 이야기도 나눴다.
그 외에도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조금 일찍 공연을 시작하고, 10시 반쯤 끝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공연시간은 7시로 확정되었다.
그 외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밴드에게 페이 지급하기, 정시에 공연 시작하기, 쾌적한 공연환경 만들기 등을 규칙으로 정했다. 그래서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즐거운 공연을 주최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모토가 되었다.
일종의 워밍업으로 서울의 언더클럽들을 순회하면서 매달 공연을 개최하기로 결정을 한 우리는 만장일치로 첫 공연을 “끼”있는 공연으로 정했다.
그리고는 그 후보에 오른 팀들 중 나름대로의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공연에 몰입시키고야 마는 시베리안 허스키, 한음파, Naked, Ynot?! 이렇게 네 팀을 결정했다.
섭외에 들어갔다. 섭외는 순조로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태클이 걸렸다.
드러머의 수술로 인해 메인팀 와이낫의 공연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우리에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들이 안 된다면 누굴 불러야하나.. 고민을 했지만, 대답은 안 나왔다. 그들이 아니면 부를 팀이 없다는 게 우리의 답이었다.
하늘이 도우시길..
그리고 전화를 달라고 한 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연락을 하니 가능하단다.
야호~~ 그럼 거칠게 없어진다.
클럽 피드백에 찾아가 예약을 하고 대관료를 알아봤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준비하던 어느 날..
누군가가 피드백과의 공연약속을 확인해보란다. 6월 16로 잡힌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럴리가..라며 전화했더니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앗! 6월 16일이 아니었나요? 전 그렇게 들었는데..”
이런.. 청천벽력같은 이야기.
“아니예요. 분명 24일이었는걸요.”
“혹시 다른 날로 하시면..”
“그럴 수가 없는데요.”
그럼 우리에게 맞추겠다고 하신다.
고맙기도 하여라.
그럼.. 이제 본격적인 홍보다. 홍보자료도 만들어 사이트에 홍보도 했고, 여기저기 통신동아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게다가 그동안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많은 인디레이블과 관계자분들에게 연락을 하기도 했다.
공연날.
전날 주문한 밴드들에게 줄 도시락과 우리 스탭진들용 김밥을 확인하고, 명찰과 안내 포스터 등을 준비한 후 피드백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팀은 네이키드. 그 후, 한음파, 와이낫, 시베리안 허스키등이 연이어 등장했다.
냉장고 가득 물과 음료수를 채워놓고는 원하는 대로 마시라고 전한 후 밴드들이 식사를 하고 리허설을 하는 동안 포스터를 부착하고 방명록을 준비하는 등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
그리고 6시 55분.
쑥스러운 마음으로 무대 위에 올라가 공연에 찾아와 주신 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7시 정각 시베리안 허스키의 무대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허스키하고 파워 넘치는 가창력을 자랑하는 유수연의 목소리와 펑키하면서도 블루지한 연주가 잘 어울리는 이 팀은 <Walking by myself>, <Play that funky music>, <Hush> 등의 카피곡과 <I hate you>,<Sky Jam> 등의 자작곡을 들려주었다. 그 중 <Sky Jam>은 자신이 참여했던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도움을 주었던 힙합팀 Cyclo가 직접 나와 힙합과 펑키의 절묘한 조화를 들려주어 공연을 보는 이들을 흥분시켰다.
두 번째로 공연을 한 한음파는 거칠면서도 차갑고 환각적인 느낌의 사이키델릭한 연주와 짐 모리슨을 연상시키는 보컬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진 자작곡 <사진>, <무덤>, <참회>, <독설> 등을 연주했다.
공연 도중 이들은 “오늘 공연의 주제는 “끼”있는 공연인데, 공연을 보러 오신 분들은 끼가 부족하신 것 같군요. 끼가 있고 없고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우리 모두 종이봉투를 쓰고 공연을 봅시다.”라는 멘트로 공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음악에 한없이 빠져든 사람들의 긴장을 이완, 수축시키던 이들의 공연이 끝나자 Naked의 무대가 이어졌다.
경쾌한 락앤롤과 세련되고 섬세한 자작곡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Naked는 <우중산책>, <친구>같은 발라드 자작곡을 들려준 후, Collective Soul의 <Shine>을 연주했는데 그 흥겨움이라니.. (개인적으로 이들의 <Shine>은 내가 지금껏 들어온 여러 팀의 리메이크 버전 중 가장 흥겨울 뿐만 아니라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뒤이은 <Rock`n’roll Medley>와 관객을 반으로 나눠 “오오~~”를 외치게 했던 <Come Together>도 잊을 수 없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Ynot?!.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들고야 마는 매력을 지닌 보컬은 <Ynot?!>도중 흥겹게 치던 꽹과리채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긴 했지만,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을 춤과 함께 모창에 가까운 실력으로 들려주었으며, Chumbawamba의 <Tubthumping>으로 우리를 흥겹게 하기도 했다.
게다가 환호와 같은 앵콜의 성원에 Zebrahead의 <The Real Me>를 들려준 후 “펑크도, 레게도, 락도 주제는 하나였습니다. 자유에 대한 외침이었지요.”라는 멘트와 함께 자작곡 <Freedom to the power>를 연주해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환호성으로 몰아넣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만족해하는 표정의 사람들을 보니 다행이구나, 우리가 바랐던 대로 토요일 저녁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왔다.
한 가지 죄송한 점이 있다면 공연장이 너무나 더워 공연을 하는 팀이나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이나 너무 고생을 했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거의 사우나 수준이었다.)
쾌적한 공연을 주최하고 싶었는데..
처음 주최하는 공연이라 아쉬움이 많았지만, 블루노이즈만의 색깔이 가득한 공연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