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TV에서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가수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언더그라운드란 무엇인가? 단순히 인기를 얻기 전에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 거치게 되는 무명의 시절을 말하는 것인가? TV 출연을 하지 않는다면 전부 언더그라운드 가수인가?
꼭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가진 또다른 고정관념일 수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들 외면의 모습이 아닌 내면의 음악세계를 들여다 본다면 언더그라운드의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국내 언더그라운드 음악 중에서도 중심이 되었던 언더그라운드 락의 흐름을 들국화와 시나위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1980년대 왕성한 활동을 했던 들국화와 시나위는 언더그라운드 (락)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양대 산맥과도 같은 존재다. 이 두 그룹은 80년대에 언더그라운드의 절정기를 만듦으로써 70년대의 위축되었던 언더그라운 드의 상황을 극복하는 주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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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자연발생적이며 반상업적인 특징을 가졌다. 이는 또한 상업화된 제도 음악계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하고,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욕구를 해소하는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일반인들에게 언더그라운드의 존재가 알려지기는 하였으나, 뚜렷한 실체를 알기 힘든 단편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다른 대중음악에 비해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대한 학문적 연구나 사회문화적인 연구를 시도한 예가 없었고, 음반판매나 공연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자료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이는 한편으로 보면 국내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존재 자체가 모호하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의 원래 뜻은, 주류와는 다른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구성한 공동체가 그 공동체의 이름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언더그라운드라고 할 때 그 의미는 크게 전환되는데, 이는 ‘언더그라운드 문화공동체’라는 존재가 전무했던 사회적 배경에 기인한다.
한국에서 언더그라운드라함은 주류 음악과의 차별성을 가졌던 ‘언더그라운드 음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외국의 락이 들어와 활성화 된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국내 락의 고유한 색깔은 미 8군에서 경력을 쌓은 신중현에 의해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여기서부터 국내 언더그라운드의 역사가 시작된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걸쳐 국내의 독자적인 락 문화를 정착시킨 신중현은 언더그라운드의 대부로 인식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신중현의 활동에 힘입어 산울림, 작은거인(김수철), 송골매 등의 캠퍼스 락 밴드들은 포크와 함께 청년문화의 한축을 이루었고, 이후에도 나름대로의 진지를 구축하며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비교적 ‘뜬’ 밴드로서 생명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정치적으로 억압되었던 사회 속에서 대다수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은 위축된 채 가까스로 버티는 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언더그라운드는 절정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 등장한 상이한 두 언더그라운드씬은 다음과 같다. 한 쪽은 락의 정서를 기반으로 포크, 블루스 등의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해 ‘한국적 락’을 선보인 들국화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쪽은 백두산을 중심 으로 시나위, 블랙신드롬 등의 그룹이 쾌거를 이룬 헤비메틀 씬이 있었다. 이들은 수용자들 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언더그라운드 역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1990년대 들어 해산하거나 침체기를 맞이하게 된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특성은 메탈 공동체, 캠퍼스 청년문화, 신촌 언더그라운드로 요약 될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한 두개의 씬으로 규정지울 수 없는 여러가지 모습의 밴드들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출현하였다. 특히, 1995년부터는 홍대 앞 클럽을 중심으로 인디(펜던트)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출몰했으며, 이들은 메이저 음반사업을 거부하며 인디 레이블을 설립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유통망을 개발하는 등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물론 ‘인디 음악 =언더그라운드 음악’이라는 등식을 떠올려서는 안되겠지만 큰 줄기로 본다면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인디음악을 포함하고 있다.)
80년대 언더그라운드 락의 양대산맥 ‘들국화’, ‘시나위’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들국화와 시나위는 언더그라운드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논자에 따라 헤비메틀 씬에서의 선각자는 백두산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들이 짧고 폭발적인 활동을 끝으로 그 생명력을 다했던 이유로 여기서는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이끌었던, 한국 메탈계의 공식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시나위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그 중에서도 들국화는 신중현에 의해 뿌리내려진 한국적 락의 정통 계승자라 할 수 있다.
들국화의 중심에는 상이한 정서를 가진 두 사람 – 전인권과 최성원이 있었다. 그들은 곧잘 한국의 비틀즈로 불리웠으며, 나타나자마자 완벽한 연주와 창의력 있는 노래로 당시 팝 음악에 심취해 있던 청소년들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들의 출현은 말 그대로 폭발적인 현상이었으며 하나의 사건이었다. 자신들의 음악적 기량에 당시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가사를 결합시키면서 ‘한국적 락’의 모습을 구현했던 들국화는 전국순회공연과 라이브앨범의 성공 등 상승가도를 탔다. 그러나 1989년, 구성원들 간의 견해 차이로 아쉬운 해산을 하게된다. (만일 들국화가 4집까지만이라도 앨범을 냈더라면 한국 음악계의 판도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으나, 최성원과 전인권의 음악적 지향 차이는 노래를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큰 간격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뮤지션으로서 쉽게 화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1998년 허성욱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모인 이들은 ‘들국화’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한다. 명성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1980년대, 헤비메틀계는 시나위를 주축으로 국내 헤비메틀의 전성기를 만들어 나갔다. 연주자들의 변동이 심했던 시나위는 그로 인해 -자의가 아닐지라도- 인재 양성소 역할을 하게된다. 파트별로 살펴보자면, 보컬에서는 임재범-김종서-김성헌-손성훈-김바다로 이어졌고 베이스에서는 강기영-김영진-서태지-정한종, 드럼에서는 김민기-오경환-신도현으로 멤버 변동이 이루어졌다. 헤비메틀은 젊은이들의 음악이었고,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강력하고 격렬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었다. 1980년대 초,중반에 무당, 시나위, 부활, 메틀 프로젝트 등의 활동으로 국내 헤비메틀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 높아진 상태에서 발매된 시나위의 데뷔 음반은 헤비메틀 매니아 인구의 확산에 기여했다. 당시 마이너 중의 마이너 음악으로 취급받던 헤비메틀은 시나위 데뷔 음반 이후로 하나의 대중음악 장르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외국곡의 카피가 아닌 창작곡으로 채워졌다는데 의미가 있다.
메틀의 전성기라고 얘기되어지는 1980년대에는 이 외에도 스트레인저, 블랙신드롬, 블랙홀 등 많은 메틀 밴드들이 각자의 영역을 개척하며 꾸준한 활동을 했다. 스트레인저는 부산 ‘메틀 라이브’ 출신으로 1990년대 초 지방 메탈 세력의 큰 흐름을 주도한, 서울 중심의 헤비메틀 씬을 지방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 밴드이다. 블랙신드롬은 1980년대 헤비메틀 밴드들 중 살아남아 활동했던 몇 안되는 밴드에 속한다. 그리고 블랙홀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면서 꾸준히 노력을 해 온 밴드이다. 그들은 시대에 따라 음악적 변화와 성장을 거듭한 밴드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언더그라운드 다양한 뮤지션들로 활기
80년대 메틀 씬의 전성기가 지나고 침체기를 맞이한 90년대 초에도 주목할 밴드들은 있었다. 바로 크래쉬와 사하라, 미스테리, 노이즈 가든이 그들이다. 크래쉬는 여느 메틀 밴드보다도 강력하고 무거운 사운드로 헤비메틀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하라는 인천출신의 밴드로 메틀의 침체기에 지방 메탈 씬을 활성화시킨 밴드라고 할 수 있다. 미스테리는 당시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여 탄생시킨 슈퍼밴드였다. 그리고 노이즈 가든은 9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메틀밴드답지 않은(?) 메틀밴드였다. 그들 음악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소강 국면을 맞이한 메틀 씬의 명맥을 유지시켰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1980년대 국내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비교적 장르별 구분이 가능했던 것에 비해 90년대에는 그야말로 장르를 따지기 어려운, ‘인디음악’이라 불리는 다양한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1990년대에 들어서 등장한 ‘인디(펜던트)문화’ 개념을 한국 사회에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인디음악’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인디 음악은 주류 팝과 음악 자본에 대한 반란이다. 어떻게 보면 Punk의 D.I.Y.(Do It Yourself)정신과도 통하는 것이 바로 인디 음악이다. 스스로 노래하라.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라. 스스로 음반을 제작하라. 스스로 유통 배급망을 조직하라. 그리고 듣는 자는 이곳에 와서 스스로 느끼고 참여하라.
’80년대를 대표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그렇다면, 90년대는? 90년대는 그야말로 다양한 뮤지션들의 시대다. 오버그라운드에서 천편일률적인 댄스곡이 장수만세를 외치고 있을 때, 지하에서는 다종다양한 색깔의 밴드와 음악이 서로 사이좋게 어깨를 걸고 노래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1990년대 후반, 현재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