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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bout music 음악관련 잡지, 싸이트에서 나오는 난해한 음악용어들을 하나둘씩 알기 쉽게 풀어나감으로써 음악용어에 관한 궁금증을 풀고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연재로 이어질 이 코너에서 이번에 다룬 내용은 얼터너티브(Alternative), 펑크(Punk), 하드 락(Hard Rock), 하드코아(Hardcore) 등이다. |
얼터너티브 Alternative
(90년대 락 장르로서의 의미를 중심으로)
사전적 의미는 ‘대안의’, ‘대안적인’, ‘양자 택일의’. 넓은 의미로는 주류 락의 질서에 도전했던 모든 음악을 지칭. 어느 특정한 장르를 가리키는 말이라기 보다는 음악적 지향이나 태도에 대한 단어이다.
90년대 들어서는 얼터너티브가 락의 한 장르를 말하는 단어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장르로서의 얼터너티브 락의 특징은 세련되고 정제된 소리 보다는 거칠고 가공되지 않은 소리를 추구하는 데 있다. (모든 얼터너티브 락이 이런 것은 아니다. ‘스매싱 펌킨스’와 같이 완벽한 소리를 추구하는 밴드도 있다.) 얼터너티브 락은 월드뮤직, 레게음악, 퓨전 락, 펑크, 그런지, 테크노 등의 장르를 모두 포함한다. 얼터너티브 락을 얘기할 때 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너바나,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스매싱 펌킨스, 스톤 템플 파일럿, 루번 브레이드 등이 있다. 그들은 80년대 주류 팝과 고정화 된 락의 정서를 뒤집고 새롭게 등장한 락의 대안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얼터너티브 락’이라는 단어는 대중매체와 평론가들이 만들어 낸 것에 가깝고, 이러한 규정이 얼터너티브 락의 본질을 왜곡시킨 면도 많다. 너바나가 인기를 얻고 대중매체에서 ‘얼터너티브 락’에 관해 떠들어대자 여기 저기서 ‘너바나류’의 음악이 만들어지고 장르화된 얼터너티브 락의 주류화가 진행된 것이 그 일례이다. 실제로 얼터너티브 락 밴드들의 성격은 몇 개의 장르만으로 설명되어지지 않으며, 거의 모든 장르의 차용과 모든 장르의 탈피라는 모순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들의 주된 정서는 60년대 비트세대의 패배주의와 냉소주의였다. 그들의 음악 방식은 가사와 태도에서는 노골적이고 극단적인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고, 사운드와 테크닉에서는 펑크와 하드 락, 60년대의 사이키델릭까지 받아들여 소화해냈다. 얼터너티브 락은 첨단기계문명과 빈틈 없는 합리주의·획일주의에 대한 거부였고, 지표 잃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허무한 정서를 대변했기 때문에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펑크 Punk
펑크의 사전적 의미는 ‘보잘 것 없는’, ‘쓸모없는’, ‘시시한’. 때로는 ‘풋내기’, ‘불량배’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단어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음악적으로도 복잡한 연주기교를 피하고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는 단순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단순화는 ‘쓰리코드(Three Chord)’와 같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형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쓰리코드’ 주의는 단 세 개의 코드만으로 모든 음악이 가능하다는 펑크의 주장이었고, 이를 통해 그들은 ‘D.I.Y(Do It Yourself)’나 ‘Anyone Can Do It’와 같은 펑크 신념을 실천하고자 했다.
펑크의 가사를 보면, 마약이나 섹스와 관련된 내용이 많고, 사회체제에 분노와 욕설을 쏟아 붓는 특징이 있다. 이는 70년대 당시 젊은 세대의 허무주의나 무정부주의에 기댄 체제비판이었고, 히피의 낭만주의에 반하는 디스토피아(Distopia) 정서의 발로였다.
펑크는 60년대 히피 운동와 함께 꽃 피웠던 락이, 70년대 사회의 보수화와 더불어 저항성이 사라지고 예술적 형식미만을 추구하는데 대한 안티테제(anti-these)였다. 그들은 실력(technic) 보다는 태도(attitude)를 중시했으며, 당시 주류 락의 뛰어난 테크닉 구사와 세련된 연주에 맞서 일부러 엉터리같은 연주를 하기도 했다. 초기 펑크락의 대표적 선두주자로는 영국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와 클래시(The Clash)를 꼽을 수 있다.
섹스 피스톨즈(「Anarchy in the U.K」, 1976)가 기성세대의 가치와 질서에 도전하며 나타났다가 사라진 기간은 불과 1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짧은 ‘반란’은 영국과 미국, 유럽까지 확산되었고, 영국 내에서는 그들의 뒤를 이어 펑크 운동을 지속시킨 ‘클래시’가 등장한다. 1976년 이후 펑크 운동은 인디 레이블이란 진지를 구축하고 상업주의와의 끈질긴 싸움을 전개한다.
1982~3년에 이르러서는 펑크 운동이 절정기에 달하게 되는데, 이 때 대중적 파급력과 함께 그들만의 폐쇄적인 언더그라운드가 만들어진다. 메이저 레코드사가 외면을 하고, 주류 락 평론가가 이들을 무시해도, 펑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게토(Ghetto)와도 같은 그들만의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의 주도로 진행되었던 이같은 운동은, 그 폐쇄성으로 인해 85년 이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90년대 들어서 펑크는 ‘네오펑크(Neo Punk)’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한다. 90년대 (네오)펑크의 대표선수들로는 그린데이(Green Day), 오프스프링(Off Spring), 랜시드(Rancid), 노에프엑스 (NOFX) 등을 꼽을 수 있다.
하드 락 Hard Rock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발과 알타몬트의 악몽을 기점으로, 거리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사회 변혁을 외치는 거리의 ‘운동 가요’로서도 한 때 그 기능을 했던 하드 락. 헤비메틀의 전신(前身)이라고도 하며, 혹자는 음량과 사운드의 강약이나 직선적인 표현방식, 리듬 앤 블루스에 기반을 두었는가의 여부를 가지고 하드락과 헤비메틀을 구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하드락이 블루스와 포크의 영향이 감지되는데 비해, 헤비메틀은 비교적 여기에서 자유로운 장르’라는 식이다. 그러나, 양자간에는 큰 차이가 없으며, 다만 ‘헤비메틀’이란 음악용어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80년대 이후의 그룹들을 헤비메틀로, 그 이전은 하드 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드 락은 1960년대 ‘Jimi Hendrix’와 ‘Cream’ 등을 위시하여 록큰롤과 블루스에 바탕을 둔 일렉트릭 기타 중심의 헤비 사운드 음악을 가리키는데, 이는 ‘Led Zeppelin’과 ‘Deep Purple’에 와서 그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 외 ‘Thin Lizzy’, ‘UFO’, ‘Uriah Heep’ 등과 같은 브리티쉬 하드 락그룹과 ‘Kiss’, ‘Aerosmith’, ‘Van Halen’. ‘AC/DC’, ‘Whitesnake’, ‘Rainbow’, ‘Jamesgang’, ‘Railroad’, ‘Grand Punk’ 등의 아메리칸 하드 락그룹이 유명하다. 브리티쉬 하드 락과 아메리칸 하드 락은 한 줄기에서 뻗어나왔지만, 연주 스타일과 사운드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다. 브리티쉬 하드 락은 멤버 각자의 화려한 연주 기량을 발휘하는 가운데 세부 묘사에 충실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기술완벽주의 연주 스타일은 한음 한음 의 명료도까지 신경을 쓰기 때문에, 잘 정돈된 디스토션 사운드를 추구한다. 아메리칸 하드 락의 특징은 사운드의 선이 굵고 거친데 있다. 이들은 노이즈나 어택음을 의도적으로 시도하기도 하며,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를 추구한다.
하드코어 Hardcore
하드코어(Hardcore)는 ‘벽돌 조각’, ‘돌부스러기’, 또는 ‘견고한 중심’, ‘핵심’, 또는 ‘고집 쎈’, ‘치료 불능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포르노 영화의 노골적인 성 묘사를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 기도하다. 음악 장르로서의 하드코어는 펑크 운동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으나, ‘이러저러한 특성이 있다’고 규정짓기 힘든 구석이 많다.
하드코어의 대표적인 세력은 뉴욕 하드코어 씬(New York Hardcore Scene)이다. 영국 런던의 펑크가 고유의 정치적 입장을 미디어 전략과 외관 스타일로 나타냈다면, 뉴욕 하드코아 씬 은 미디어에 신경도 쓰지 않았고, 메이저 레이블과의 어떤 연관도 기피하며 스스로의 길을 갔다.
펑크의 게토에서 탄생한 하드코어는, 락 엘리트주의를 경계했고, 성공한 스타의 호화생활을 경멸했다. 또한, 인디레이블과 지방 클럽을 중심으로 그들 음악의 새로운 유통 경로를 스스로 개척해갔다. 이렇게 펑크의 DIY(Do It Yourself) 신념을 철저하게 지켜나간 그들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 바로 그 폐쇄성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장르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이 ‘같은 음악의 답습’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하드코어 음악에서 쓰래쉬 풍의 기타 리프(riff)와 강약 없이 두드려 대는 드럼이, 과격하고 빠르게 소리치는 듯한 가사(무정부주의로 대변되는 내용의)와 함께 3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반복되어 진행된다. 처음 들었을 때, 섬뜩한 충격으로 느낄 수 있는 이런 특징들이 나중에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떤 변화의 시도도 ‘변절’로 받아들였던 하드코어 씬의 경직된 신념때문이었다.
하드코어의 활발한 활동 시기는 1980년대 초반부터지만, 1978년의 ‘블랙 플랙(Black Flag)’부터 하드코어의 특성이 나타났다. 85년 쯤에 점점 쇠퇴의 길을 걷던 하드코어는 90년대 들어서 랩이나 재즈 등의 인접 장르를 과감하게 혼용하면서 다시 파급력을 회복한다. 90년대의 대표적인 하드코어 아티스트로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데프톤즈(Deftones)’, 콘(Korn)’, ‘머신헤드(Machinehead)’ 등 을 꼽을 수 있다. 헤비메틀 쓰래쉬의 쇠퇴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하드코어의 질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