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음악을 하는 소위 ‘사이버 뮤지션들’ 입니다. 그렇다고 아담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류시아는 물론 아닙니다. 그런 콧구멍도 없는 3차원 애니메이션으로 된 어설픈 인간의 이야기는 논외(論外)의 대상입니다. 여기서 제가 하는 건 진짜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들은 눈에 보이게 활동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저희가 볼 수 없는 인간들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렇다고 귀신은 아닙니다. 자신들이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Funny Powder(퍼니 파우더)같은 사이버밴드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길을 가다가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건 사담이지만, 퍼니 파우더의 외계인일 때의 모습은 정말 흉측하답니다. 인간이 되기를 잘 했지요. 궁금하신 분은 사이트를 한 번 들러 보시길… (이들이 같은 외계인이어도 텔레토비 같이 생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떴을 텐데.)
그렇지만, 사이버 뮤지션들이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음악을 못 할거라는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건 그들의 음악이 솔직히 말해서 클럽에서 떠돌아다니는 그저 그런 어중이떠중이 뮤지션들보다는 훨씬 더 뛰어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음악에 대한 열정과 확고한 신념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판도 낸 진짜 프로페셔널들 입니다. 10집 앨범까지 발표한 B.A.S.S.라는 밴드를 필두로, 모난돌은 그의 이전 밴드 모나드의 앨범까지 포함해 3장의 앨범을, 하손비 (하늘과 손바닥 사이의 비)는 1집 앨범이… 그 뿐이 아닙니다. 2장의 싱글앨범을 발표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이버 밴드 퍼니 파우더는 첫번째 싱글을 3,000장 가까이 팔면서 그런대로 유명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 중 몇 곡은 CD를 부록으로 주는 S모 잡지에 곡도 수록되기도 했으니 한마디로 뜬 밴드가 된 거지요
그럼 이들이 이 뛰어난 음악성을 가지고도 왜 클럽무대에 서지 않냐구요? 그거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요. 사이버 뮤지션들 중 가장 유명한 퍼니 파우더의 경우는 다들 군인들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혹자는 그들이 군인이기 때문에 외계인이라고 주장한다고 하더군요. (그럼 군인은 인간도 아니라는 말인가????) 그러니 당연히 무대에 설 수 없지요. 그들이 군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퍼니 파우더의 사이트를 한 번 들려보면 이들이 별로 공연무대에 서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인간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요. 지구여자를 밝히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니지 싶기도 하지만.
하지만 대한민국의 음반 유통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고, 클럽에 서는 밴드들과 그들의 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한국의 대중매체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제도권에 무조건적으로 반발하는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대중매체는 유독 보수적이죠. 그러한 매체에 얼굴 보이고, 굽신거리는 것도 싫고, 인간 얼굴보고 음악은 듣지 않는 것도 짜증나고… 클럽에서의 공연도 그다지 크게 다를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클럽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인간들의 자세를 얘기하는 거죠. 물론 팬들에게 굽신거리고 이쁘게 보여야 하는 일이야 조금들 하거나, 없을 지는 몰라도….”
그러나 모든 사이버 뮤지션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대 중.후반을 위한 음악을 한다는 모난돌의 경우에는 그의 음악이 설만한 공간이 없다는 게 문제가 됩니다. 그는 통기타 하나만을 들고 음악을 하는데, 보통 포크가 가지고 있는 감성과는 다른, 그의 음악은 한대수적인 그러면서도 조금은 타령조의 음악이므로 전혀 요즈음의 클럽문화에 적응할 수 없는 음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20대를 위한 클럽을 주장합니다. 클럽에 가고는 싶지만, 갈 수 없는, 우리나라 헤비메틀 중흥기의 견인차가 되었던 20대를 위한 클럽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클럽문화가 10대와 20대 초반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은 분명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또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학창시절 음악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직장생활을 하고….. 그러다가 음악이 그리워져서 다시 돌아온 사람이요. 그는 자기가 만든 음악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망에 사이버 공간의 뮤지션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도 멋진 생각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퍼니 파우더의 이유와 비슷한 이유로 무대에 서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바뀔 때입니다. 우리의 밴드들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일 뿐 우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람들도, 엔터테이너들도 아닙니다. 음악을 듣는 데 있어서, 공연을 봐야만 그것도 과격한 스테이지 매너를 봐야만 흥분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한 번 둘러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음악을 듣다보니, 즐거워서 하는 슬램이 아니라 슬램을 위한 슬램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의 유행처럼 그렇게……
오늘 여기 소개된 사람들의 음악도 하드합니다. 클럽에 소개된 다른 어떤 밴드의 음악보다도 하드코어적인 노래들도 있습니다. 랩도 들어있습니다. 강한 랩이…. 그러니 한 번 들어보십시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음악현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이렇게 음악을 잘 하는 이들이 우리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은 꼭 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 그걸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