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지금 PC통신, 인터넷의 힘은 어느 분야에서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세력이 돼 버렸다. 지금 국내의 PC통신 이용자만해도 55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유료 PC통신 가입자가 400만명을 넘고 있고, 무료 E-mail 가입자가 1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들의 움직임은 사회 전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음악 부분에서도 그 힘은 대단하다. 각 PC통신사 별로 각종 팬클럽, 동호회 형식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인구만도 몇십만 단위가 된다.
ROCK음악이라는 장르가 주류의 어떤 것이기 보다는, 매나아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더욱 더 이 매니아들이 통신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각 통신 별로 ROCK음악 동호회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고, 동호회 내에서도 각자가 좋아하는 장르의 소모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통신 ROCK음악 동호회를 보면, 천리안 ‘CRAM’, 하이텔 ‘메탈동’, 유니텔 ‘싸이버 락 스페이스’, 넷츠고 ‘WATTZ’ 등이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동호회네 밴드들과 외부 밴드들의 공연을 갖고 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음감회, 소모임, 번개 등을 통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밖에도 통신 내에서 ROCK음악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교환하고, 음악에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토론, 단체 행동 등을 통해 음악계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 돼가고 있다.
일례를 들면, 모 이벤트 사가 추진하던 모 외국 유명밴드의 경우, 각 통신 동호회에서 그 이벤트 사의 횡포에 대항하여 공연 티켓 불매 운동을 벌임으로써 그 이벤트사가 주최하던 공연이 취소됐던 적도 있을 정도이다.
한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통하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 공통점이 주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만난 동호회라는 것이 통신이나 인터넷이라는 익명성 있는 공간에서의 막연한 만남을 넘어서 이제는 동아리의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정보교환 뿐만 아니라 잦은 모임과 교류로 힘있는 이익단체로서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최근에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유니텔 ‘싸이버 락 스페이스’ 같은 경우에는 이들이 주최한 행사의 규모 만해도 대단하다.
지난 6월에는 KMTV홀에서 ‘Cyber Rock Stage’라는 명칭의 장장 10시간 가량의 대형 콘서트를 가졌고, 그 후 7월에는 클럽 롤링스톤즈에서 심야 공포영화제를 개최했다. 이들은 공연은 물론 조그마한 클럽에서 하는 행사에도 200명 가량의 회원들이 참석했을 정도로 강한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의 게릴라들처럼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ROCK음악과 그 매니아들이 통신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제는 지하가 아닌 지상에서의 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ROCK음악 뿐만이 아닌 여러가지 소수 집단들이 통신이라는 힘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길러가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고,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당연하게 있었어야 했던 움직임이다.
물론 통신이나 인터넷이 익명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굼벵이 한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극복해 나가서 싸이버 공간들을 잘 발전시킨다면 현대사회의 바람직한 한 문화공간으로서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