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 포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예스컴에서 예매를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무척이나 흥분했었다. 이걸 놓치면 안 된다. 꼭 봐야하는 공연이다!! 그래서 예매를 했다!! 7월 15일까지 입금을 하란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rock-festival이라는 사이트가 끼어 들었다. 7월 20일까지 10% 할인을 한다며 TV에 광고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장료를 내긴 했지만 잘 곳이 문제였다. 민박을 하고 싶었지만 거기까지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아까워 우리 일행은 의논 끝에 (실은 아무 생각 없이) 텐트를 치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나니 텐트 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봤지만 휴가와 겹쳐서인지 텐트를 구할 수 없었던 우리는 텐트도 임대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텐트촌 예약이라는 곳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예약은 받지만 자리는 책임질 수 없단다. 예약을 받는 건 얼마나 올 지 궁금해서 일뿐 예약한 사람에게 혜택 같은건 없으니 알아서 하란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참았다. 그리고는 금요일 12시부터 선착순으로 입소하니 그때까지 알아서 오라길래 알았다고 했다. 텐트는 자기들이 임대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임대를 하니 거기로 전화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 곳에서 입금만 하면 매표소에서 텐트를 준다길래 그것도 알았다고 했다.
금요일날 아침. 전 날 새벽까지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은 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화장도 하지 않고 인천으로 출발했다. 12시 입소라면 적어도 10시 반까지는 가야 좋은 자리를 얻을 것 같아서였다. 주안역에 가면 셔틀을 탈 수 있다는 말에 주안역에 내렸지만 미로보다 더 복잡한 주안역 어디에도 셔틀버스를 타는 곳을 가르쳐주는 팻말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역 안을 헤매던 우리는 셔틀을 포기하고 3천원이면 간다는 공연장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나이가 70이라는 운전수 아저씨는 아무 것도 모르셨다. 거기가 어디여?? 어쨌든 출발했다. 가는 도중 트라이포트로 가는 표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송도유원지로 향하는 커브를 도는 순간 건너편에 왠 플래카드가 보였다. “트라이 포트 가는 길”
이미 그쪽으로 가기는 늦은 상태. 우리는 계속 달렸다. 송도유원지 앞에서 예스컴에 전화를 했더니 몇 번 만에 받는다. 그리고는 마구 설명을 한다. 택시 운전수 아저씨 아니였으면 못 찾아갔을 그 곳에 도착했더니 허허벌판에 에드벌룬만 떠다녔다. 택시비가 만원 나왔다.
이미 도착한 몇 사람이 도로변에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우리에게도 왠 뚱뚱한 남자가 오더니 여기 줄을 서란다. 매표소는 저~ 안쪽 천막이라면서 이따가 시간이 되면 들여보내 준대서 뙤약볕 밑에 앉아서 들여보내 주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근데 아무리 기댜려도 안 들여보내준다. 12시가 넘었는데도 말이 없자 사람들이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다. 자꾸 시끄러워진 사람들을 들여보내 준 건 1시 30분 정도. 기다리는 사이에 우리 모두는 까맣게 탔고, 그 중 한 명은 심한 화상을 입었다.
진흙탕을 걸어 텐트앞에 갔는데 다들 정신이 없다. 매표소에서 찾으라는 텐트는 보이지도 않았다. 예스컴 관계자도 몰라서 여기저기 연락을 하더니 20분 정도 기다리니까 텐트촌 입구에서 나눠준다고 했다. 수속을 밟고 텐트촌에 갔더니 안내요원이 지정해 준 곳에 텐트를 치란다. 임대한 텐트를 가지고 뒤를 따라갔더니 그 인간도 자리를 못 잡고 헤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마음대로 아무데나 텐트를 쳤다. 임대한 텐트는 치기가 너무 불편해서 고생을 했다.
화장실은 엉망이었다. 푸세식도 그렇지는 않을 것. 여자화장실은 앉으면 코 앞에 남자화장실이 있었고, 앉는 곳도 누가 벌써 발로 밟아놔서 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조금만 마음놓고 일을 봐도 오물이 튈 것 같아서 마음놓고 일을 볼 수도 없었다. 정말 화장실은 다시는 가기 싫은 곳이었다.
물을 얼려가기는 했지만 부족할 것 같아 물을 사러 가는데 거기를 가려면 다시 입구까지 가야 한단다. 그래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차가운 물 속에 넣고 파는 생수 500ml짜리 한 병이 800원이나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사오는 길에 샤워장이 어디 있냐고 안전요원에게 물어보니 그냥 피시식~~ 웃었다. “없는 거예요?”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아니요. 있어요.” 했다. “어딘데요?”라고 물어보자 그 사람도 피식 웃더니 “그냥 있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조금 더 텐트촌 쪽으로 걸어오자 이상한 천막이 보였다. 가만히 쳐다보니 구석에 샤워장이라고 써놓았더라. 근데 남. 녀 구분하는 푯말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안전요원에게 물어보았다. “남녀공용이예요?” 그랬더니 같이 간 친구가 웃었다. “야! 세상에 그럴리가 있냐?” 그 사람도 웃었다. 내가 잘 못 생각했나??
같이 갔던 남자후배들이 씻으러 간다길래 갔다오라고 했다. 그런데 오더니 남녀구분이 없단다. 옷을 벗는데 틈 사이로 여자애가 쳐다봐서 놀랬단다. ‘에~라 모르겠다. 보면 너만 손해지.’ 싶어서 그냥 씻고 오는 길이라길래 역시 나의 예감이 맞았구나 했다. 다음 날 아침에야 남자 여자 구분을 해 놨더라.
대충 집을 정리하고 밥을 해 먹으려고 하는데 수도 꼭지가 보이지 않았다. 반대쪽으로 돌아가보니 수도꼭지를 열 개 정도 연결해 놓은 것이 보였다. 물이 그냥 돌 위로 떨어져서 마구 발에 튀었다. 게다가 설거지를 하러 온 사람들이 음식 쓰레기를 그냥 바닥에 버리는 바람에 정말 구역질 나와서 밥 해먹기가 싫었다. 물은 한 쪽에서 쓰면 다른 쪽은 안 나온다거나 조금씩 찔찔거리며 새나와서 자리를 잘 잡는 사람이 운이 좋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밥을 먹고 씻지도 못 하고는 밤이 되었다.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다. 술반입이 금지라고 철저히 단속한다고 하길래 물만 들고 간 우리는 우리의 말을 안 듣고 술을 사온 후배들에게 빌붙어 술을 마셨다. 술이라도 안 마시면 정말 지긋지긋하게 싫을 것 같았다.
밤이 다가올 때쯤 상가에 입주한 가게들의 홍보광고는 시간이 갈수록 시끄러워졌다. 헤드뱅잉 콘테스트를 한다는 썸* 스페셜 (이제보니 요것도 술이로구먼. 흠~) 광고부터 시작해 끝도 없이 “하~~” 소리를 내는 얼굴없는 펩* 아저씨까지.. 정말 시끄러웠다.
밤이 되었는데도 가로등 하나 없는 그 곳은 정말 어두웠다. 화장실을 가려면 렌턴을 들고 가야했다. 유일하게 있는 조명시설은 우리 텐트 반대쪽에 있었는데 야구장 조명등처럼 생겨서 그 쪽만 밤새내내 엄청나게 밝았다. 거기에 텐트친 사람들.. 아마 잠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물론 우리도 제대로 못 잤지만.
대여한 텐트가 엉망인 관계로 몇 번 뚜껑이 날라가고 비가 세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아침이 왔다. 씻으러 간 샤워장은 식수대와 다를 것 없는 환경이었다. 대충 밥을 먹고 조금 쉬었다가 10시가 조금 넘자 공연을 보기 위해 줄을 섰다. 12시에 입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건만 그 곳은 이미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선 상태였다.
비가 심하게 내렸다. 게다가 바람이 얼마나 불었는지 우산이 자꾸 뒤집어지자 비 옷을 사려고 했지만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뒤에 말을 들어보니 예스컴 측에서 비옷을 준다고 했었단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랴. 비 옷 값은 밖에서 천원 하는 것을 오 천원이나 받았다.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샀다. 그리고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실제로 공연장에 입장을 한 것은 12시가 아닌 3시였다.
글: 블루노이즈 이소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악몽과도 같던 그날이 벌써 한 달 전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구먼.
음…세월이 약이라고 했나, 지금은 웃으면서 떠올릴 수 있는 일들이지만, 그래도 그 날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그럼, 지금부터 ‘현장검증’을 시작해 보기로 하자.
겪지 못한 이들에게는 다소 엽기적인 장면이 연상될 수도 있을테고, 그날 그때 함께 있었던 동료(!)들에게는 악몽을 되살릴 만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덮어버린다면 역사의 진보를 거스르는 행위가 될 것 같아서 괴로운 마음을 추스리면 쓴다.
과거 친일파의 행적을 낱낱히 밝혀내지 못해 우리나라 근대사가 혼돈과 절망의 시절을 겪었다고 믿고 있는 나는, 트라이포트에서의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여 더 이상의 ‘참사’를 막아보고자 한다.
임산부 및 어린이, 노약자, 결벽증의 소유자들은 여기서 읽기를 그만두기를 권하는 바이다.
토요일, 텐트를 치러 전날 출발한 선발대를 위하야 1.5리터짜리 PET병에 끓여서 식힌 녹차를 넣어 땡땡 얼려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트라이포트의 현장은 처음부터 나를 경악케 했다.
여기는 혹시 1969년의 우드스탁?
비는 삐질삐질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공연장은 입구부터 진흙 웅덩이였다.
마중나온 일행과 함께 부랴부랴 “노이즈 가든”의 공연장으로 달려갔던 때가 1시 30분이 넘어있었는데(달려가다가 진흙 웅덩이에 발이 빠진 나는 마치 늪에서처럼 가라앉아 가다가 일행의 도움으로 겨우 발을 뺄 수 있었다. 발목까지 빠지는 엄청난 ‘구덩이’였다), 곧 입장하겠지, 라고 기다리다가 입장한 것은 3시가 넘어서 였다. 12시부터 기다린 사람들도 수두록 했는데.
거기다가 예정되어 있던 “노이즈 가든” 공연을 비롯하여 대부분 국내 밴드들의 공연이 취소되고, 바로 영국 펑크 밴드 “ASH”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주최측에서 어떤 안내 방송도 하지 않았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고.
오로지, 어떤 아저씨가 나와서 웅덩이가 있으니 뒤로 물러가라고, 바리케이드가 무너진다고 소리를 질러댄 게 다였다.
(주로 마이크를 들고 설친 이 ‘주최측’ 아저씨는 고등학교때 어느 학교에나 있던 “학생주임”을 연상시켰는데, 이 아자씨, 아무에게나 반말을 함은 물론, 시시때때로 훈계조로 관객들을 야단치고, 소리 질러서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사람들은 기다렸던 “공연”이 시작되었다는 기쁨에 흥분하며 춤을 추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
그 다음은 국내 쓰래쉬의 거장, “Crash”였다. 크래쉬의 인기를 말해주듯, 거의 미쳐가는 관중들 틈 사이에서 우리 일행도 온몸을 흔들며, 크래쉬의 음악에 심취해 갔다. 하지만, 애쉬 때 사운드 체킹을 아주 공들여서 한 것에 비해, 마음이 급해설까, 공연을 금세 시작했던 크래쉬의 사운드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드럼 소리가…)
그래도, 안흥찬의 카리스마로 진행된 크래쉬의 공연은 비와, 기다림에 지친 몸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른 밴드들의 공연이 다 취소되었음에도 자신들만 공연을 하게되어 미안하다는, “죽도록 함 해볼랍니다”라는 안흥찬의 말과 함께 앵콜송으로 나온 “Smoke On The Water”의 엄청난 위력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애쉬 공연 때부터 ‘아프게’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는 멈출 생각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고, 우비고 뭐고 이제는 젖을 데가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 틈에 서 있는데, 주최측에서 ‘비오니까 돌아가라’고, ‘공연은 비가 좀 그치면 시작한다’고 방송을 했다.
내리는 빗속에서 기다리다가 지친 우리는 일단 옷을 갈아입고 뭘 좀 먹기로 하고, 텐트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고 물웅덩이가 함정처럼 곳곳에 매복해 있었다.
젖은 옷을 짜서 대충 치워놓고 앉아 있는데, 텐트 위로 내리는 빗소리가 마치 북소리 같았다. 기다려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방송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언뜻, 기타 튜닝 소리를 들은 듯도 하여 우르르, 자리를 박차고 다시 공연장으로 나섰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예정됐던 윤도현 밴드의 공연 대신 기다리던 이들을 맞이한 밴드는 일본의 “Mad Capsule Market”이었다.
하드코어 쓰래쉬 밴드인 이들의 음악은 의외로 국내 팬들에게 많이 알려진 듯, 여기저기서 슬램과 다이빙을 하는 장면이 멀티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졌다. 이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음악은 처음 들었었는데, 우와~ 정말 멋지고 빠방한 실력에 거의 넋이 나갔다.
예정되었던 대로 “Dr. Core 911″의 공연을 볼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리고, 비가 그칠 무렵 나온 것은 “Dream Theatre”.
그들의 공연은 단아하고 아름다운 연주와 노래, 깍듯한 무대 매너를 보여주었지만, 비와 기다림과 굶주림에 지친 우리는 흐느적거리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주저 앉아 있다가를 반복했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준비된 “Deep Purple”을 기다리는데…
딮 퍼플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어린’ 친구들을 중심으로 빠져나가는 인원도 꽤 많아지고 있었다.
딮 퍼플 음악의 열혈 팬이 우리들조차, 세월의 흐름따라 노쇠해진 그들의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
‘나이 든’ 아저씨들의 파워풀한 연주는 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다시 되돌렸으며, 거세게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연주와, 관객들의 함성은 혼연일체되어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이렇게 비가 오는 데도 공연을 계속 보다니, 당신들 정말 환상적이다”란 멘트를 몇 번이고 거듭했다. 관객들의 거듭되는 앵콜 요구를 한 번도 무시하지 않고, 비에 젖은 기타를 연신 닦아내며 끝까지 최선을 다한 공연으로 거장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노장은 거장이란 말이 꼭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마지막으로 나온(그때까지만 해도 그날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생각했지,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발 전체의 마지막 공연이라고는 상상하지도 않았다) 딮 퍼플의 공연은 트라이포트의 꽃이자 하이라이트였다.
훗날 우스갯 소리로 얘기했듯이 아마 딮 퍼플의 공연이 없었다면 주최측에서는 지금의 세 배 네 배 되는 원성과 욕바가지를 뒤짚어 썼을거다. 그나마 딮 퍼플 아저씨들의 온 몸 던진 공연이 있었기에 무대세트 및 장비가 분노한 관중의 손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글: 블루노이즈 강이경
어떻게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늘에서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 붓고 있었고, 배수로 없이 친 텐트는 아슬아슬 하게만 보였다.
비가 들이친 텐트 바닥은 닦아내도 닦아내도 물바다가 되었고, 비오는 긴밤을 그냥 잘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아는 사람들이 있는 옆 텐트로 옮겨 간단한 요기와 ‘곡차’를 마시기로 하였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 그리고 배고픔, 피곤과 추위 등등에 다들 지쳐 있었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안된다는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무장된 우리는 버텨냈다.
술을 사올 임무를 띠고 파견된 일행이 억수같은 빗속에서 거의 40분이 걸려 들고 온 술은, 1.5리터 짜리 PET병에 담긴 동동주였다.
그 동동주의 가격은… 8000원.
바가지 가격이 없도록 하겠다는 주최측의 약속은 허공에 뜬 말이었을 뿐이었다. 화가 났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던 일행.
거지꼴로 조금씩 돌아가며 술을 마시고 몇 번이나 복구 작업을 한 우리 텐트로 다시 돌아와 잠을 잤다.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잠들었을까, 밖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깬 우리는 바깥 풍경에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텐트촌이 그야말로 물바다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태풍이 오고 있고, 호우경보가 발생했는데 여기가 침수 예상지역이니 어서 철수하라’는 안전요원의 말에 부려부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우산도 우비도 소용없는 비를 맞으며 옆 텐트로 대피, 거기서 자던 사람들을 깨우고… 그 사람들이 우리 대신 텐트를 철거할 때까지 그저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고마운 총각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전부가 여자로만 구성되었던 우리 일행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면서도 싫은 내색 전혀 없던 착한 경상도 총각들…^^”)
챙긴 텐트를 들고 볼펜 자루만한 굵기로 내리는 비를 ‘아야 아야’하는 소리를 내가며 맞으면서 가는 길에 본 텐트촌은 폐허가 따로 없었고, 물에 아예 잠긴 텐트, 뼈대만 겨우 남아있는 텐트, 허물어진 움막처럼 되어버린 텐트… 살풍경한 풍경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고 험했고,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얘길 해야할 지 어떤 안내도 없었다.
물어물어 ‘대피소’로 가는 버스를 탔고, 당도한 곳은 ‘송도 초등학교’였다.
공연장 안에서는 모두가 거지꼴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듯 여겨졌던 차림새가 ‘정상적인 차림새’의 동네 주민들이 있던 그곳에서는 눈요기감이 되었고, 찢어진 우비와 비에 젖은 생쥐꼴이 ‘신분증명서’ 노릇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공연장의 화장실이 악몽이었다면, ‘대피소’의 화장실은 ‘가위 눌림’이었다.
세면대의 수돗물은 나오지도 않았고,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그 상황이 어떘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만하겠지.
게다가 교실도 아닌 복도에 수용소 난민처럼 쭉 앉아있던 사람들의 모습은 분노를 넘어서서 서글픔이었다. 그나마 앉을 수 있다면 다행일만큼 사람 수에 비해서 공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에라, 모르겠다.고 생각한 일행은 대피소를 나와서 씻고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겨우 찾아낸 ‘컴퓨터 게임방’.
…그 뒤는 어떻게 됐냐고?
그저, 공연이 모두 취소되었으니 돌아가란 말을 전해들었을 뿐이다.
우리 일행이야 인터넷을 통해 예매했으니 환불 문제가 확인 가능했겠지만, 현매한 사람들에게도 이후의 대책 같은 것에 대한 일체의 얘기도 없었다는 것은,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한 처사가 아니었나?
악몽을 꾼 것 같았던 그 1박 2일간의 이야기를 다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가?와 우리나라 관객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가.에 대한 뿌듯함이었고, 관객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공연 준비와 진행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끔찍했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그러면, 또 갈거냐고? … 그것도 말이라고 하는가? 당연히 가야지.
비록 처참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한 소중했던 시간인걸.
글: 블루노이즈 강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