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기 전 숙지사항
1. 이건 ’90년대의 언더를 정리하려는 기사가 아닙니다.
2. 언더라고 해서 다 인디는 아니다. 즉, 인디레이블에서 나온
앨범만 다루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점 잊지 마시
도록..
3. 그 외.. 읽다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가차없
이 메일을 던져주세여!!
80년대 말부터 1997년까지
86년 시나위가 데뷔앨범을 발표하면서 소수의 젊은이들이 향유하던 헤비메틀은 대중적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헤비메틀 1세대라고 불리는 밴드는 시나위, 블랙 신드롬, 백두산 등으로 이들은 이름 그대로 헤비한 음악을 했으며 음악스타일도 비슷했다.
그 후 80년대가 저물어 가면서 L.A 메틀, 바로크 메틀 등이 선을 보였으나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90년대를 맞이한다. 90년대의 초반에도 메틀 앨범들이 발표되긴 하였지만 이미 80년대만큼 큰 사랑은 받지 못한 채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락 음악은 사양길을 걷기 시작한다.
또한 90년대 초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던 클럽들은 식품위생법 때문에 엄청난 벌금을 물다가 장사를 포기하고 음악감상실로, 락바로 그 모습을 바꾸게 된다.
그러던 94년 홍대의 어느 길 가에 “드럭”이라는 이름의 마약같은 클럽이 하나 문을 열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펑크의 메카로 알려져 있는 이 곳은 처음부터 펑크밴드들의 천국은 아니었다. 다양한 음악스타일이 공존하던 이 클럽은 96년 실력있는 클럽밴드들의 곡을 소개하고자 레이블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96년이 저물어가는 어느 날 언더계의 명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을 선보인다.
그렇지만 이 앨범이 발매초기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건 아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90년대는 통신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사이버시대로 접어든 때이다. 하지만 컴퓨터라는 것 자체가 낯설기만 하던 90년대 초반 통신은 일종의 신천지였다. 여러 통신매체 중 하이텔의 메틀 동아리는 남들보다 앞서가는 음악적 취향과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90년대 중반 음악매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동아리가 되는데, 그 회원들 중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끼리 일종의 취미로 밴드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언더밴드들로 성장을 하게 된다.
그 선두주자는 언니네 이발관이다. 이석원이 주체가 된 이 밴드는 96년 기존의 음악문법을 무너뜨리는 앨범 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선보인다. 모던락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음악은 “음악을 전혀 모르는 아이의 설익은 장난” 같으면서도 여리고 다정한 감수성으로 언더의 음악이지만 언더만을 위한 음악은 아닌 장르의 음악이 선보이게 된다. 그리고 음악매니아들이 많이 듣는 프로그램에 이들의 음악이 소개되면서 국내의 락 음악계는 모던락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1집이 발표된 시기는 거의 이와 맞먹는다. 그러므로 A면은 펑크, B 면은 사이키한 얼터너티브로 구성되어있는 이 앨범이 그리 많은 관심을 끌지 못한 건 어찌보면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드럭의 신선한 시도와 모던락의 상승세로 인하여 언더의 락 음악계는 평론가와 음악팬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96년 말부터 인디레이블들이 하나 둘 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이다. 시기상으로는 강아지가 먼저 인디레이블을 만들었으나 음반을 선보인 것은 인디가 먼저이니 장군멍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앨범을 발표한 건 98년이니 일단 97년을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97년에 가장 주목할 만한 음반은 바로 델리 스파이스와 노이즈 가든의 데뷔 앨범이다. 델리 스파이스는 언니네 이발관이 시작한 모던락을 정립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깔끔하고 정제된 느낌을 주는 델리의 곡들은 깨끗하게 세탁한 하얀 빨래나 깔끔한 샐러드를 연상시킨다. 그들의 데뷔앨범은 뛰어난 완성도와 신선한 음악으로 폭 넓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비록 자신들이 원치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음악계를 대표하는 밴드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반면 노이즈 가든의 앨범은 육중하고 어두우면서도 고혹적인 헤비락 사운드로 가득 차있다. 윤병주라는 걸출한 기타리스트의 음악적인 색깔이 잘 나타나있는 이 앨범은 시대의 조류같은 건 무시해버리고 자신만의 성을 견고하게 쌓아온 밴드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98년의 인디/ 언더 앨범들
98년은 수많은 언더의 앨범들이 쏟아져 나온 해이다.
앞서 언급했던 강아지, 인디를 비롯, 라디오, 디 플라워등이 인디레이블들이 97년에 열심히 준비했던 앨범들을 조심스럽게 내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드럭의 뒤를 이어 지금은 문을 닫은 하드코어, 재머스, 롤링 스톤스 등의 클럽이 자체 레이블을 만들고 클럽에서 공연하는 밴드들의 곡을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들을 앞 다퉈 발표한다.
또한 이 해의 가장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선을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98년 가장 강세를 띈 건 지금까지의 자기 기반이 확실했던 모던 락과 드럭으로 대표되는 펑크이다.
모던 락 앨범 중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꼽히는 것은 라디오 레이블에서 발표한 미선이의 이다.
-이 앨범은 98년 최고의 앨범이기도 하다- 대학의 감성과 인디라는 문화가 낳은 최고의 역작으로 꼽히는 이 앨범은 ] 싱그럽고 감성적인 멜로디와 독설적인 가사가 조화를 이루는 곡들로 가득차 있다. 미선이는 이 앨범으로 한국의 모던락을 정리하는 밴드로 평가 받게 되었다.
펑크계의 대표주자로는, 펑크 결정타를 날린 를 꼽을 수 있다.
드럭 2세대 펑크밴드 노 브레인과 너바나풍의 그런지 음악을 하는 위퍼의 곡들이 나란히 실린 이 스플릿 앨범에서 노 브레인의 “바다 사나이”의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96년 드럭에서 발표된 크라잉 넛의 “말달리자”도 동시에 사랑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말달리자”는 98년 언더계 최고의 수확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크라잉 넛은 젊음의 대변인이 되었고, “말달리자”는 10대들의 메시지가 되었다. “노래하면 잊혀지나/ 사랑하면 사랑 받나/ 돈 많으면 성공하나/ 차 있으면 빨리 가지/ 닥쳐”
그리고 98년 말 발표된 이들의 정식 데뷔앨범은 가차없이 쏟아내는 직설적인 젊음의 곡들로 가득찬 조선펑크의 명반이 되었다.
그 외에도 98년에는 많은 그리고 신선한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디는 클럽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밴드들을 상대로 공개오디션을 실시한 후 선발된 10팀의 앨범을 발표하는 형식을 택했다. 이들 중에는 오버로 진출한 마루, 너바나적인 느낌의 코코어, 기괴하고 특이한 허벅지 – 정말 멋진 앨범 중 하나다 -, 펑크코어 삼청교육대, 팝적인 느낌이 강한 아무밴드 등이 있다.
하지만 98년 인디의 최고의 걸작은 아마도 앤의 일 것이다. 부산출신인 앤의 데뷔앨범에는 여러 장르의 음악이 한데 섞여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펑키하면서도 그루비한 감이 잘 살아있는 곡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앨범은 오디션 때와 실제 앨범이 아무리 다른 사운드를 낸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녹음의 질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뛰어난 앨범이다.
그런가 하면 강아지의 경우는 내놓는 앨범들마다 정교하고 깔끔한 사운드를 자랑했다.
98년 강아지문화/예술 최고의 수확은 갱톨릭의 이다. 오버에서 힙합이 유행하기도 전 국내 최초로 클럽에서 힙합을 연주한 이들은 어린 세월 미국에서 자라며 힙합 문화를 몸에 익숙하게 받아들인 사람들답게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격조 있는 힙합을 선보였다. 랩을 양념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랩을 음악 그 자체로 꾸밀 줄 아는 실력 있는 갱톨릭의 앨범은 98년 강아지 최고의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남상아의 팜프파탈적인 보컬이 돋보이는 허클베리 핀, 지성파 음악인 성기완의 99, 그리고 강아지의 대표적인 컴필레이션 앨범 등이 눈길을 끌었다.
그 외 98년에 나온 앨범들 중 관심을 끌었던 것은 클럽자체 레이블이 제작한 재머스의 , 롤링스톤스의 , 클럽 하드코어의 등이 있다.
그 외 부산갈매기공화국 출신의 레이니 선이 발표한 는 특이하고 기괴한 음색으로 ‘귀곡메틀’ 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황당한 밴드 그러나 진지한 밴드 황신혜밴드의 데뷔앨범 는 “짬뽕”이라는 곡으로 사랑을 받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자신이 제일 못하는 음악을 택했다는 저자가 이끄는 어어부 사운드 프로젝트의 은 불협화음과 역겨움 그리고 생경함으로 일상을 노래해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위에 언급한 앨범들을 가만히 따져보면 참으로 다양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인디레이블이 등장을 하면서 인디의 음악은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모던락의 뒤를 이어 펑크가 득세를 하는 가운데 다양한 장르의 개성있는 밴드들의 각자 자기의 성을 구축해 나간 시기가 98년이다.
99년 올 한해 동안의 수확
99년의 언더계는 98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음악적인 장르가 더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닥터코어 911을 중심으로 하드코어 장르가 인기를 얻었지만 막상 하드코어 앨범은 닥터코어의 싱글과 그랜드 슬램의 앨범 외엔 발표되지 않았다.
99년에는 97년과 98년에 발표한 앨범을 통해 기성밴드로 자리잡은 대형 언더밴드들의 2집 발표가 많았다.
델리 스파이스는 라는 더욱 세련되고 정제된 스타일의 꽉찬 앨범을, 노이즈 가든은 라는 이름의 하드하면서도 부담감 없는 느낌의 2집을, 언니네 이발관은 이라는 앨범으로 부쩍 자라난 음악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국내 최고의 슈퍼뮤지션들로 구성되어있는 원더버드의 가 비틀즈풍의 복고 영국 사운드를 선보이면서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황신혜밴드의 2집 나 를 통해 그들이 단지 웃기는 밴드만은 아니라는 걸 사람들에게 인식시켰고, 어어부 사운드 프로젝트의 는 어둡고 비아냥거리는 조소로 가득찬 그들의 모습을 더욱 심화시킨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앨범은 바로 크라잉 넛의 일 것이다.
이제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버린 이들의 앨범은 듣는 이를 꼼짝없이 사로잡고 만다. 그들을 이제 그냥 펑크밴드로 규정지어버릴 수는 없게 만드는 이 앨범은 20세기 마지막 명반으로 손꼽을 만하다.
99년에는 또한 많은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선을 보였다.
정제되고 세련된 사운드가 돋보였던 강아지 문화/예술의 이나, 현재 언더계 최고의 밴드들의 멋진 자작곡들이 한 자리에 실린 , 테크노 뮤지션들의 곡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곡들을 언더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참신한 시도의 , 드럭 펑크밴드들의 잔치 , 그리고 펑크=드럭이라는 공식을 깨게 만든 참신한 시도 등이 음악 매니아들을 즐겁게 했다.
드럭의 경우는 18 크럭이라는 10대들의 인기펑크밴드를 중심으로 을 발표하였으나 단지 1과 2를 답습할 뿐이었던 구조때문인지 18 크럭의 능력에도 부족하고 그리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99년에는 싱글 또한 많이 발표되었다.
올해 4월 신세대적인 디자인과 작은 크기의 CD로 앨범시장을 공략했던 인디의 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싱글은 이미 인디를 통해 앨범을 발표한 밴드들의 대표곡들을 짜집기식으로 수록한 것이어서 신선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게다가 커버가 약해서 잘 구부러지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적은 수의 곡으로도 CD를 발표할 수 있으며 가격이 저렴하든 이후로 많은 신인밴드들의 데뷔앨범과 기성밴드들의 중간보고식 앨범들이 EP로 발매되었다.
지금까지 90년대에 발표된 언더, 인디의 앨범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내가 혹여 빼놓은 빠져서는 안 될 앨범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쁘게 봐주시길..
락 음악팬들의 기호와 음악적 변천의 흐름은 다시 한 번 다음 블루진에 소개가 될 것이다. 그때에 다시 한 번 집중적으로 이를 이야기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