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의 마지막 달을 맞아 언더음악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회원님들의 참여를 기다렸지만 저조한 참여율(^^;)로 인해 블루노이즈에서 선정한 “베스트 7″까지의 사건들에 대해서 뒤돌아 보겠습니다.
99년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말이든 탈이든 많다는 것은 그래도 언더 음악계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패든 성공이든 많은 행사들이 있어왔고, 실패를 거듭할수록 앞으로는 보다 나은 완성된 모습이 될 수 있다고 볼 때 어쨌든 바람직한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99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1.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발 개최, 최악의 실패
7월 31일부터 8월1일까지 “99′ Triport Rock Festival”
99년의 어 000이슈들 보다 더 쇼킹하고 큰 사건이었다. 먼저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발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고, 정말 기대되는 가슴 설레이는 일이었다.
이 공연은 한국의 우드스탁으로 기획이 됐었고, 꿈에서나 볼 수 있을까 했던 팀들이 속속 우리나라에 오기로 결정이 될 쯤 락 매니아들은 밤잠을 설치며 이 공연을 기다렸었다. 기획이 됐다는 자체로 놀라운 공연이 우리에서 남겨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최악의 실패였다는 것이다.
날씨 때문이라는 천재지변의 핑계를 댈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규모에 비해 행사의 준비는 너무나도 허술했었고, 한 참 장마철인 시점에서 공연을 하면서 비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니 이게 말이 될 수 있을까?!
이 공연에 출연하기로 돼 있었던 Rage Against The Machine과 Prodigy의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 조차 없었고, 우리 나라 밴드들은 간신히 한 팀 정도가 공연하고 서브무대에서 공연 하기로 했던 언더 밴드들은 무대가 완성되기도 전에 무산돼 버렸다. 그리고 50% 환불해주기로 했던 공연 사후처리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아직 99년 트라이포트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시점(필자도 아직 환불 받지 못했다.)에서 트라이포트 2000의 기획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는 사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2. 크고 작은 락 페스티발이 많이 열렸던 한 해이다(광화문 놀자 콘서트, 쌈지 사운드 페스티발, 소란 콘서트, 비사이드 락 페스티발, 클럽 합법화 기념 공연, 쾌Rock지수99, 한·일 락 콘서트 등).
트라이포트 실패는 매니아들에게 평생동안 겪어보기 힘든 황당한 경험이었다. 마치 이 트라이포트의 한을 풀어주려는 듯 99년에는 크고 작은 페스티발들이 어느 해 보다 많이 개최되었다.
필자도 이 공연들에서는 마치 트라이포트의 한을 풀겠다는 듯이 최선을 다해서 즐겼던 기억이 있다.
완전한 실패인 트라이포트에 비해 99년의 크고 작은 락 페스티발들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치뤄졌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쌈지 사운드 페스티발 같은 경우에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료로 초대됐고, 공연 자체도 상대적으로 잘 치뤄진 공연 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공연을 보면서 필자는 그런 생각을 했다.
‘트라이포트가 이 정도만 됐어도….(트라이포트에 맺힌 한이 많은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큰 공연들만 보면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3. 클럽이 합법화됐다.
언제 될까 싶었던 클럽이 합법화 됐다. 외국에서는 이미 합법화 돼있는 클럽이라는 문화공간이 마치 청소년의 비행장소 취급 받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는가?!
클럽에서 공연을 하다가 경찰이 무대에 올라와 공연을 저지하고 공연장은 마치 얼음 끼얹은 듯 썰렁한 분위기가 되고 클럽의 주인은 바로 경찰서로 소환되고….
이런 장면들이 이제는 옛날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99년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4. 규모에 상관없이 어느 해 보다 클럽이 많이 생겼고, 장르도 다양해졌다.
클럽 합법화의 문제가 해결돼서 인지 크고 작은 클럽들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났다.
규모면에서도 영세하던 클럽들이 대형문화 사업화 되는 경향도 있어서 일반 공연장과 같은 규모의 클럽들도 생겨났고, 장르에서도 락 음악을 공연하는 클럽 만이 아닌 힙합, 테크노 등 다양한 음악들을 소개하는 클럽들도 많이 생겨났다.
또, 기존 클럽들이 대부분 신촌, 홍대 쪽에 뭉쳐있었던 것과 달리 대학로, 종로 외에도 강남쪽과 다른 곳들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올해같은 속도로 클럽들이 생겨난다면 얼마되지 않아 클럽은 당연히 있어야 되는 하나의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해 낼 것으로 보인다.
5. 하드코어와 테크노라는 장르가 어느 해 보다 큰 인기를 모았다.
우리 나라 언더 음악계가 활성화 되기 시작하면서 작년까지는 펑크라는 음악이 유행처럼 번졌고, 매스컴에서도 펑크 음악에 관한 소식들만 다뤄 마치 언더 음악은 곧 펑크라는 등식이 성립되기라도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었다.
사실 언더계에서 펑크 음악이 강세를 누렸었고 거기에 모던 락 조금… 이런 식의 분위기 였지만, 99년 들면서 펑크에 맞서는 새로운 장르 하드코어가 인기몰이(?)를 시작했고, 테크노라는 장르도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언더 음악계에는 펑크, 하드코어, 테크노, 모던락, 트래쉬 메탈 등 보다 다양한 장르가 입지를 구축한 한 해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6.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많이 나왔다.(「3000펑크」, 「조선펑크」, 「인디파워」, 「클럽 하드코어 앗싸오방 2집」, 「Open The Door」)
사실 우리나라에서 앨범을 한 장 낸다는 것은 뮤지션의 평생 소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앨범 한장을 발매하기가 힘들었었다.
특히 락 음악 등의 주류가 아닌 음악으로 앨범을 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했다고 생각 할 정도였지만 인디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이런 앨범 발매방식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꼭 메이저 음반사가 아닌 곳에서도 얼마든지 앨범을 발매할 수 있게 됐고, 뮤지션들이 직접 자신들의 앨범을 적은 비용에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들로 올 한해에는 기존에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던 밴드들이나 신인 밴드들이 한 앨범에 같이 참여하는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 특징들도 다양해서 「인디파워 1999」 같은 경우에는 기존에 앨범을 내고 활동하던 뮤지션들이 가요을 리메이크해서 부른 노래들을 앨범으로 만들었고, 반대로 「3000펑크」 같은 경우에는 앨범을 내고 활동하던 뮤지션부터 신인들까지 우리 나라 펑크 밴드가 거의 다 모여서 연습실에서 녹음한 음악을 그냥 CD로 만들어낸 경우이다.
이렇게 다양한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인해 옛날이라면 앨범으로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밴드들도 다양한 기회를 얻게 됐다.
자신들의 앨범을 내기 어려운 상황의 신인들은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먼저 자신들의 음악을 소개하고, 그 다음에 독집앨범을 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가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다양한 컴필레이션 앨범제작이 인디음악계에서 바람직한 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7. 일본 문화 개방이후 일본 밴드들의 공연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일본문화의 개방 이후에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다. 영화개방에 이어서 그 동안 불법이라서 하지 못했던 일본 밴드들의 공연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4월 한·일 락 콘서트 이 후 ‘Agressive Dogs’등 일본 밴드들의 프로모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 졌고, 그 밖에도 우리나라에서 꾸준한 활동을 했었고 앨범을 발매할 예정인 곱창전골의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런 여세를 모아 클럽에서도 일본 언더 밴드들의 공연이 이어지는 등 98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활동들이 99년에는 다양하게 펼쳐졌었다.
90년대는 언더 음악계에 새로운 변화들이 있었던 때이고, 인디라는 개념이 들어와서 어느 정도 모양새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시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바람직한 변화들이 많았다고 보지만 아직 과도기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99년에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것이 성공이었든 실패였든 언더 음악계가 자리를 잡기 위한 진통이었다고 보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슈들이 생겨나고 발전해가면서 21세기 초에는 완성된 모습의 틀이 갖추어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