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열린 콘텍트 2000 콘서트를 봤다.
Q. `콘텍트 2000 콘서트’가 모야?
A. 서울에서 일본과 한국의 인디 밴드가 소리 소문없이 연합 공연을 열고, 다시 오사카에서 같은 아이템으로 누가 알까 두려워하듯 슬그머니 열린 공연을 말해.
Q. 거긴 어떻게 가게 됐는데?
A. 원래 난 예정이 없었어. 근데 일본열도를 점령하러 가는 마당에 취재원이 없다는 게 도대체가 말도 않되잖아. 그래서 드럭의 이석문 사장님이 사재를 털어서 그 조용한 잔치(?)에 덤으로 끼게 되었지. (이 자리를 빌어 감사^^;)
Q. 좋았쪄?
A. 좋기도 하구 나쁘기도 하구.
Q. 모가 나빴는데?
A. 이번 행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홍보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거야. 아무리 영양가 있는 공연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알려지지 않는대서야 누가 보러 오겠냐? 첫째 날, 로튼 애플과 크라잉 너트가 섰을 때에는 200명쯤? 둘째 날에는 자니 로얄이 나왔는데 오프닝이라 한 100명쯤. 니혼징에게 쎈 모습을 보여주려고 졸라 작정하고 갔는데 맥이 탁 풀려버렸지.
Q. 인딘데… 그 정도면 많이 온 거 아닐까?
A. 이번 공연이 일본 진출을 타진하기 위한 현지 관계자들을 위한 오디션성의 공연이거나, 아무 생각없이 실적이나 올릴 생각으로 마련된 공연이었다면야 뭐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 하지만 이번 것은 한일 문화교류라는 거창한 미명하에 저질러진, 미래의 비전을 염두에 둔 일종의 국제행사 아니었나?
Q. 기획사가 어딘데? 그 안에 선수들 없었어?
A. 기획사는 모 여행사였어. 때문에 이번 공연이 일종의 문화 체험적인 성격의 관광 패키지였다면, 사람들을 일정에 따라 인솔하고, 제때 밥을 먹이며, 가이드도 썩 잘 해준 괜찮은 상품이었지.
하지만 그런 게 아니잖아. 그리구…. 이 기획팀에는 정말 불행하게도 음악적으로 선수가 하나도 없었어. 어떻게 음악 프로젝트를 음악 문외한들이 진행할 생각을 했을까? 일본쪽 스탭들은 그런 거 단박에 눈치챘을 거야.
으휴…. 우리를 얼마나 얕잡아 봤을까? 왜, 그런 거 있잖아. 몇 마디 말로 상대방의 야코를 확 죽이는… 바로 그런데서 선수인지 아닌지 판가름 나잖아.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기획사에서 정말 밤잠을 설쳐가며 열심히 일했지만, 욕은 욕대로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야. 이런 속담 알지? 뭐 주고 뺨 맞는다.
Q. 하긴 호떡 장수가 호떡에 정통해야 제대로 장사를 할 수 있는 법이지.
A. 마조마조. 하물며 음악 비즈니스에서야 그것이 오죽하겠어? 양쪽 나라의 인디 씬을 어느 정도 빠삭하게 꿰뚫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음악을 듣고 판단할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며, 또한 한일 양측 사이에 음악적인 교량을 놔줄 수 있는 음악 지식 정도는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언론 플레이 능력까지 갖췄어야지.
하여간 이번 껀은 누구나 음악 행사를 치룰 수는 있지만 제대로 치르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어.
Q. 우리 애들 연주 잘했어? A. 짱이었지. 평소보다 약간씩 오버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어. 근데… 문제는 그들이 일본팀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이었어.
아무리 인디라 할 지라도 일본팀들이 워낙 개성이 특출나니깐 별루 표시가 안나는 거야. 사운드가든 풍의 헤비 그런지 사운드를 들려준 로튼 애플이 가장 그랬지.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더군.
그래도 크라잉 너트는 워낙 애들이 잼있게 노니까, 일본 애들이 다소간의 관심을 보여주더군. 물론 그것이 연주 때문인지 그들이 보여준 퍼포먼스 때문인지 확실치 않았지만. 글고 쟈니 로얄은 현재 일본 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을 들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를 오방 했지만…
역시 니혼징들… 일부러 그러는가 싶을 정도로 냉담하더군.
Q. 문제가 뭐야?
A. 음…
그건 일단 언어의 문제라고 생각해. 걔네들은 존경해마지 않는 영어와 자기네들 일본어 외에는 언어로 치지 않는 별루 달갑지 않은 버릇이 있거든. 우리가 아무리 한국말로 떠들어봐야 개네들은 신경쓰지 않아. 그리고 개네들의 음악 듣는 수준이 무지 높아. 웬만큼 잘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헤드뱅잉 시킬 수 없어. 또한 걔네들의 헤드뱅잉은 우리 애들처럼 필이 팍 꽂히면 막 해대는 그런 식이 아냐.
설사 절도있게 머리를 팍팍 내려찍어 줬더라도 그건 디테마에(겉마음)였을 지 몰라. 정작 혼네(속마음)은 다르면서 겉으로는 열라 좋아해주는 척 해주는 거지. 이게 바로 우리 사람들이 몰라서 가끔 벙찌게 되는 얘네들의 민족성이지.
겉마음과 속마음이 다른 그들의 민족성!
Q. 영어나 일본어로 불러야겠네. 일본 시장에서 어느 정도 먹어주려면?
A. 그렇지.
Q. 우리 밴드들 보면,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 우리나라는 시장이 너무 좁다. 우리를 일본에만 보내주면… 거기서 성공할 수 있다.
A. 그래? 음… 그건 미안한 얘기지만 졸라 힘들어.
이번 행사에 참여한 일본 마이너 레이블에 속한 인디 밴드만 100팀이야. 그리고 그런 레이블들이 수두룩해. 일본 인디 밴드들은 우리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고 말할 수도 있어.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뜨기가 너무 쉬운데 일본은 정말 바늘구멍에 밧줄을 끼워넣는 거처럼 어렵거든. 일단 클럽에 공연을 하기 위해서 돈을 내야 해. 차비라도 주는 우리나라 클럽보다 더 냉정하지.
그래서 인디 애들은 클럽에서 공연할 돈을 벌기 위해 하드 워킹을 마다하지 않아. 그래서 인지도를 넓히고 인기를 얻어야만, 스카우터들이 와서 보는 전통 깊은 클럽에 명함을 내밀 수 있지. 하지만 거기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역시 돈을 내야하고, 또한 오디션을 봐서 통과해야만 하지. 그래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음반을 낼 수가 있어.
좀 심하게 얘기해서…
같은 예비역이라도 특공대 출신이 있는가 하면, 피엑스 방위 출신이 있는 거지. `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 록 밴드가 일본진출을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죄 실패했잖아. 다 그런 거 때문이야.
Q. 일본애들 실력 죽여줘?
A. 당근이쥐. 이번에 일본 여자들보고 놀랐는데…
톡 까놓고 말해서 우리나라 밴드에서 여자들이 끼어있는 경우, 걔네들 실력있는 거 봤냐? 개중 있는 애들도 있지만 진짜 찾기 힘들잖아.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백프로 다 실력 있다고 보면 돼. 일단 걔네들은 여자냐 남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실력이 있느냐 없느냐 문제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거든.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소로우(Sorrow)의 세션 베이시스트로 내한했던 라이즈(Rize)의 여자 멤버는 정말 테크닉이 환상이더군. 나는 여자가 저렇게 허벌나게 베이스를 잘 치는 건 첨 봤어. 클래식 공부를 제대로 한 게 분명했어. 업 라이트 베이스를 살벌하게 뜯더니만, 곡이 바뀌니까 일렉트릭 베이스를 메고 슬래핑을 해대는데…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승복하게 되더라. 그리고 소로우의 여자 멤버, 그리고 다른 밴드였는데 거기서 드럼치던 여자 애… 모두들 짱이었지.
일단은 선실력 후성별(미모)이라는 거지.
Q. 일본애들한테서 뭘 배워야 할까?
A. 캐릭터와 칼있수마!
Q. 뭐, 뭐… 칼?
A. 워낙 많은 밴드들이 있으니까 거기서 튀기 위한 분명한 성격과 노선, 그리고 색깔이 있어야 해. 일본 팀들은 나름대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색깔을 가지고 있었어. 10팀이 공연하면, 10색이 나와.
하지만 우리의 10팀이면, 6색정도 나오면 잘 나오는 거지. 우린 남들과 다르다. 바로 이게 살 길이야. 우리 밴드 중에서 언뜻 자기 색깔이 확실한 밴드로 떠오르는 게…
음… 크라잉 너트, 레이니 선, 힙 포켓 등이 있군.
Q. 칼있수마는 모야? A. 어… 그거 카리스마…
개성이 약한 밴드라면 누군가 카리스마가 있어야 해. 소로우에서 보컬과 기타를 맞고 있는 모델 출신의 여성 멤버라든가, 라이즈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혼혈로 보이는 남자라던가… 뭔가 애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쎈 임팩트가 있어야 해.
우리나라에서 카리스마로 먹어주는 팀은 에… 윤도현 밴드, 체리 필터 등이지. 그리고 카리스마가 죽여주는 밴드를 봤는데…
일본에서도 유명한 기타 울프라는 팀이었어. 헤비한 로큰롤을 연주하는 팀이었는데… 키가 모두 180이 넘어보이는 장신 3인조였어. 내가 보기엔 일부러 그렇게 팀을 짠 거 같았어. 우리 애들처럼 맘에 맞는 친구들끼리 적당히 팀을 짜서 하는 아니구 말이야.
이런 경우, 대개 멤버 중에서 한두 명의 찐따가 있어서 팀 발전에 저해되는 경우가 허다하잖아. 물론 기적적으로 비틀즈처럼 모두 짱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거 알지?
하여간… 기타 울프는 그렇게 훤칠한 키의 소유자였는데… 멤버들 모두가 카리스마가 있더라 이 말이야.
리더인 보컬과 기타를 보면, 얜 연주도 잘 안해… 해도 무지 쉬운 거만 해.
하지만 단 한번의 스트로크를 해도 관객들에게 확실한 임팩트를 주더라구. 정말이지 `가오’와 `후까시’가 `오방’이었어. 걔네들은 캐릭터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밴드였어. 그러니까 되는 거지. 한 시간 가량 공연을 하는데 드럼치는 애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졸라 두드려 대더라구.
우리나라 같았으면 중간 중간에 연주를 중단하고, 말도 안되는 `시바이’를 씨부렁거리잖아. 여러분 사랑해요, 같은 엿같은 멘트 말야. 일본애들은 거의 그런 말 안 해. 그냥 음악만 살벌하게 들려주지. 기타 울프도 그랬어. 거들먹거리며 등장해서는 드럼이 무지막지하게 드럼을 쳐대고, 베이스는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머리를 뒤로 넘기고, 기타는 캔맥주를 따서 원샷으로 다 마셔버리고. 그러다 캔을 찌그러 뜨려서 팽개치고는 무대 앞에 나가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는 거야. 드럼만 오방 두드리고, 베이스와 기타는 연주도 안 해. 괜히 침이나 뱉고…
그렇게 10분 동안 드럼 연주만 이어지면, 관객들은 테크노 리듬을 듣는 듯 몽롱한 상태가 되면서, 속으로는 제발 연주 좀 시작해 하고 간절하게 원하게 되는 거야. 그때 베이스 연주가 시작되는데…
역시 기타는 똥폼만 잡고 연주도 안 해. 그렇게 5분이 더 흐르면…. 관객들은 집요한 애무로 몸이 바짝 달아오른 에로 배우처럼 되는 거야. 어떻게 좀 해달라고 말이야. 나도 미치겠더라구. 그때 기타가 딱 한번 짱! 하고 스트로크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와…! 하고 함성이 튀어나오더군.
걔네들은 관객을 읽고, 자기 페이스로 끌어들일 줄 아는 선수였어. 적어도 우리나라 애들처럼 `자… 놀아봐요. 여러분이 놀아주지 않으면 우리 연주할 맛 안나요.’하고 씨부렁거리지 않드라 이 말이야.
Q. 또 있어?
A. 프로정신이지. 기타 울프 보니까 한 시간이 넘게 단 한번도 쉬지 않고 드럼을 쳐대드라구. 난 저 자식, 빠따 힘이 보통이 아니군하고 감탄했어. 그래서 그들이 퇴장하자마자 백 스테이지 쪽으로 가보았지.
그런데… 그 드럼은 대기실까지도 가지 못하고 통로에서 무릎을 꿇은 채 바닥 짚고 엎드려서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고 있더군. 처절해 보이는 광경이었어.
그때 난 왜 그렇게 무식한 짓을 했어 하는 생각을 하다가, 쇠망치로 머리를 강타 당하는 듯한 충격과 진실을 깨달았어. 저렇게 다 죽어가도록 쳐대지 않으면 이들도 살아 남지 못한다.
바로 이런 거였지. 일본 애들은 이래. `여기까지가 한계야. 더 이상은 없어’, 하는 지점에서 그만두지 않고, 바로 거기서 시작해. 즉, 한계를 넘어서는 거지.
옛날에 마돈나 공연 비디오에서 그녀가 노래를 마치고 들어와 헐떡이며 산소 호흡기로 호흡하는 장면이 떠오르더군(얘기가 약간 빗나가지만 마돈나도 진짜 고수야).
적어도 기타 울프의 드러머에게 있어서 공연은 여흥이나 유희는 아니었어. 그에게 있어서 공연은 생존, 전투, 그리고 자기와의 싸움이었어. 바로 이런 정신이 그들을 스타로 만드는 게 아닐까?
Q. 이번 오사카 취재가 뜻 깊었겠네.
A. 응. 나나 밴드, 그 스탭들, 그리고 기획자들 모두에게 있어서 그렇지.
Q. 인디 밴드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어?
A. 어. 누가 잘한다고 칭찬하면 삼십 퍼센트만 믿어. 좀 잘한다고 자만하지도 말고.
강호에는 숨은 고수들이 너무 많거든. 그리고 자만하기 시작하는 지점이 바로 곤두박질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 그리고 누가 계약하자고 하면 의심부터 해. 이 바닥에는 싼마이 제작자들이 너무 많거든…
글: 이기원(월간 GMV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