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31홍대 앞 피드백에서 미국 인디락 밴드 중의 하나인 심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멤버 대부분이 한국계라고 해서 유명세를 더 얻기도 한 심의 내한은 사실, 이번에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 늦은 가을에 “소란 99” 공연에 게스트로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기자회견이 “서브”나 “씨네 21″를 비롯한 소수정예(?)의 기자들로 이뤄졌던 데 비해 단독 첫 공연을 앞두고 열린 이번 기자 회견은 국내 케이블 TV에서부터 여고생들로 보이는 팬클럽까지… 국내에서 공고해진 이들의 명성을 말해주는 듯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Q: ‘Seam’이라는 밴드 이름은 어떻게 해서 지어지게 되었는가?
A: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저 예전의 베이시스트가 지었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온 것 뿐이다.
Q: 이번이 한국에서의 첫 단독 공연이다. 기분이 어떤가?
A: 사실, 작년 소란 99때 첫 내한을 했었다. 소란 99를 통해서 한국 인디씬에 관해 알게되었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8개의 인디 밴드를 알게된 것도 작년 소란 99를 통해서다.
이번 공연에 대해서는.. 일종의 부담과 압박감을 느낀다. 하지만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Q: 공연 레파토리는 어떻게 될 예정인가?
A: 최근 앨범에 수록된 곡을 위주로 할 것이지만, 예전에 했던 음악도 할 예정이다.
Q: 98년 나온 [The Pace Is Glacial] 이후 앨범 발매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A: 새로 나올 앨범은 작업 중에 있다. 대부분의 작업이 마무리 되었지만 아무래도 올해 겨울 아니면 내년 봄에 나올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은 인디 영화 감독인 헬렌 리 (대표작: 먹이 Pray)의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맡아서 작업 중이다.
Q: 당신들을 소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은 “아시안 –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계- 아메리칸으로서 느끼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다.
나 같으면 조금 식상할 만한 이런 질문들을 수없이 받았을 텐데, 또 해서 미안하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음악이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과 결부되어 평가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가? 당신들의 음악이 단지 느끼고 있는 진실을 이야기 했을 뿐인데, 혹시 매스컴에서 과도하게 규정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A: 그런 수식어는 아무래도 미국에서 동양인인 우리가 락을 하는 게 신기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권 나라에 오면 그런 질문들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의식적으로 우리가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이런 것을 신경 쓰며 음악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저 음악에 집중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압박감을 느낀다.
Q: (드러머 크리스 맨프린에게) 당신은 심 내에서 유일한 백인이다. 밴드 생활을 하는데 있어 불편한 점은 없는가?
A: 이제는 적응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다. 나 역시 아일랜드 계로서 보통의 미국인들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이제는 매운 음식이 아니면 먹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웃음)
Q: 한국에는 언제 도착했는가? 그리고 작년 내한 때는 친지 방문도 했던 것 같은데, 한국에서의 체류 일정을 알려달라.
A 박수영(기타/보컬)을 제외하고는 전부 어제(5월 30일) 도착했다. 박수영의 경우 3일전인 5월 28일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일정이 빠듯해서 친지 방문이라든지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은 불가능할 것 같다.
일정은 내일 밴드 멤버 다같이 델리스파이스의 공연을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갈 예정이다. 그리고 공연.
공연이 끝나고 월요일날 출국할 예정이다.
Q: 심의 음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누구인가? 어떤 식으로 곡이 완성되는가?
A: 곡 작업은 밴드들이 다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체적인 틀은 내가(박수영) 잡아 오지만, 멤버들과 함께 연주 하는 과정에서 많이 바뀌고 아이디어가 첨가되고 다듬어져서 완성된다. Q [Headspark]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앨범은 당신들의 초기 작품인데다 박수영만 제외하면 전혀 다른 멤버들이 연주했다. 혹시 지금의 멤버로 다시 녹음할 의향은 없는가?
A: Headspark,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저 내가(박수영) 읽었던 책의 제목을 땄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편곡해서 녹음할 생각은 없다.
Q: 당신들은 미국 인디 밴드에서 지명도 있는 밴드이고, 실제로 메이저 레이블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당신들은 “인디 밴드”로 남아 있기를 고집하고 있는데, 당신들이 가진 인디 밴드로서의 정체성이란 어떤 것인가?
A: 우리도 메이저 레이블이 유통과 마케팅을 하는데 매우 유리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메이저 레이블에 소속되어 활동할 경우, 개인 생활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밴드 활동에서도 제약을 받는다. 이를테면 밴드가 아시아권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할 경우라도 소속 레이블에서 그것이 그다지 상업적인 매력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아시아 공연을 할 수가 없다. 밴드의 자율적인 선택이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생활이 스케쥴에 쫓겨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메이저가 가진 약점이다.
그리고 우리 음악을 보았을 때, 상업적인 어필을 할만한 구석이 별로 없다.
그들의 구미에 맞추어 우리의 음악을 바꾸고 싶지도 않다.
심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금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유럽과 미국 투어를 했을 때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다녔는데, 지금은 비행기를 타고 다니지 않은가? (웃음)
이만하면 성공했다.
그리고, 만일에 우리가 메이저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었더라면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한국 공연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Q: 각 멤버들을 (늦었지만) 소개해달라. 전부 심 활동 이외에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만한 side job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같이 소개해달라.
A: 베이스를 맡고 있는 신성우. (웃음 – 전부 가수 신성우를 떠올리는 듯)
그는 1994년에 심에 합류했다. 그는 네트웩 엔지니어이며, 리비이스 진 청바지 모델이기도 하다. 실제로 시카고의 리바이스 매장에 가면 그의 광고 사진이 건물에 커다랗게 붙어있다.
그리고 드러머 크리스 맨프린.
1993년 심에 합류한 그는 레코딩 스튜디오 매니저다. 그가 가진 직업은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더욱 좋다. (갑자기 크리스가 웃으면서 “녹음할 때 비용을 깎아달라고 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고 끼어듬)
기타리스트 존 리(이승호)는 1999년 10월 합류했었고, 웹디자이너이다.
리더이자 기타, 보컬을 맡고 있는 박수영은 처음부터 심에 합류했었고 (웃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다.
Q: 미국을 포함해서 심이 생각하기에 좋은 모습을 보이고 생각하는 밴드는? 그리고 그 이유는?
A: “Yo-La-Tango”라는 인디 밴드가 이상적인 밴드라고 생각한다.
이유? 그 이유는 그들의 음악이 좋아서다. (박수영)
Q: “조용한 불이다”라는 심에 대한 한 평론가의 평처럼 심의 음악은 강약 완급 조절에서 다른 밴드들과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조용한 듯 하지만 내재되어 있는 힘을 느낄 수 있다 할까? 그런 Power의 근원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는가?
Q: “조용한 불이다”라는 심에 대한 한 평론가의 평처럼 심의 음악은 강약 완급 조절에서 다른 밴드들과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조용한 듯 하지만 내재되어 있는 힘을 느낄 수 있다 할까? 그런 Power의 근원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는가?
A: (박수영) 어떤 특정한 아이디어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심의 idea라고 보면 된다.
심의 음악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사운드 상의 법칙이나 그런 것이 없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운드를 조화시키는데 우리 음악의 특징이 있는 것 같다.
(크리스 맨프린)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음악 역시 그 때 그 때 가지는 감정을 그대로 실어서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Q: 작년에 왔을 때 한국 인디 밴드들을 만나고 그들의 음악을 듣고 간 것으로 안다.
한국 인디 음악에 대한 감상을 말해달라.
A: (신성우) 94년 개인적인 일로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한국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본 적이 있었지만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왔을 때 깜짝 놀랐다. 많은 밴드들이 많은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수영) 94년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인디씬을 찾았으나 거의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작년에 한국에 왔을 때 일단 양적으로 인디씬이 너무나 커져서 깜짝 놀랐다.
미국의 경우에는 어떤 유행이 천천히 왔다가 천천히 가는데 비해 한국, 특히 서울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민감해서 그런 발전이 있지 않았나 한다.
Q: 인상적으로 들은 한국 인디 밴드의 음악에는 어떤 것이 있나?
A: (이승호) 3호선 버터 플라이. 그들은 정말 대단하다.
(크리스 맨프린) 델리 스파이스의 음악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실력은 정말 대단하다.
(박수영) 은희의 노을이 좋았다.
Q: (John Lee 이승호에게) 아까부터 쭉 보았는데, 당신은 매우 지루해 보인다.
기자회견 자체가 따분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지루한가?
A: 아니다. 아니다. 지금 긴장해서 얼어 있어서 그렇게 보인 것 같다.(웃음) 담배 생각 밖에 안난다. 여러분, 혹시 내가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는가? (기자들이 웃으며 괜찮다고 하자 담배를 집어듬)
Q: 별명이 있다면 말해달라.
A: 크리스 맨프린 – 내 별명은 학교 다닐 때 wigg였다. 머리가 Cure의 Robert Smith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John Lee 이승호 – 내 별명은 그냥 “John”이다.
신성우 – 내 별명은 “Chang”이다.
박수영 – 내 별명은 “Sparky”다.
Q: Ben Kim이란 사람이 언젠가 아시안 아메리칸 밴드들에 관해서 얘기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라틴민족이나 아프리칸은 음악 속에 뚜렷하게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담아내는데 아시안 아메리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이야기의 골자였다.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심의 아이덴티티는 어디 있다고 생각하는가?
A: (John Lee) 음악을 하게 되면 (민족적) 정체성을 따지기 보다는 살아오면서 들은 음악과 좋아하는 음악에 보다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박수영) 존과 동일한 생각을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요즘의 청소년들(young generation)은 들을 수 있는 음악적인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에 보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음악이 물론 보통의 백인 아이와는 다른 삶의 과정을 거친 것을 반영하기는 하지만, 굳이 의식적으로 동양적인 정체성에 국한시키고 싶지는 않다.
Q: 넵스터와 같은 mp3 무료 사이트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
A: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보다 빠르고 보다 쉽게 음악적인 접근이 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단점은 음질이 떨어진다는 것이겠지만… 그런 기술적인 문제가 개선된다면 뮤지션들이 mp3로 음악을 무료로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물론 공연을 통해서 돈을 벌겠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서 심의 기자 회견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지막 세 개의 질문 중 두 개가 이미 나왔고,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그 때, 기자회견장 구석에 앉아 있던 귀여운 여고생 둘 중 하나가 손을 들고 수줍은 듯 질문을 던졌다. (알고보니 팬클럽이란다)
Q: 심의 팬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
A: (박수영) 한국 말을 잘 못해서 미안하다. (모두 웃음)
(John Lee) Me Too (모두 웃음) 한국 인디 밴드들의 음악을 계속 사랑해달라.
(크리스 맨프린) 음악을 좀 더 많이 듣고 관심을 보임으로써 한국의 음악씬이 점점 더 좋아지고 좋아지고 좋아졌으면 한다.
공연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가는 길에 기타를 사서 밴드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 (웃음)
그런 식으로 점점 더 음악적인 영역을 넓히고 발전시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