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평소 출근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필자와 한명의 선발 주자가 올림픽 공원으로 출발했다.
올림픽 공원역에 내려 체조 경기장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40분. 벌써부터 일찍 온 사람들은 제각기 돗자리, 신문 등을 깔고 줄지어 앉아 있었다.
필자와 일행은 줄의 맨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미 15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필자의 일행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다.
미리 얼려온 물을 마시는 동안 필자의 나머지일행들이 도착했다.
12시쯤 되자 카메라등 반입금지된 물품 확인을 위해 가방 검사를 시작했고, 12시 40분쯤 되자 세치기 방지를 위해서 팔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하지만 이 도장의 목적이 뭐였나 싶을 정도로… 나중에는 앞에 100명 정도 되던 사람이 몇백명으로 늘어나있었다 -_-;;
햇빛 아래서 계속 기다리다 지친 일행들은 둘러 앉아서 전국민의 게임 Go, Back, Jump(369와 비슷한 게임이지만 그보다 먼저 있었던)라는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의 벌칙으로 모인 돈으로는 입장할 때 물을 사가지고 들어갈 목적이었다.
게임을 끝낼 즈음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이미 F(Floor)석을 예매한 사람 2000명 정도가 두 줄로 길게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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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이 5시로 돼 있었지만 5시 20분 정도부터 입장이 시작되었다.
F석 중에 먼저 와서 줄을 선 사람들이 1구역, 2구역으로 나눠 각 1000명씩 먼저 입장하고, 그 다음 F석 중에 늦게 온 사람들은 뒤쪽의 3구역으로 배치받았다.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Floor는 3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고, 스탠딩 공연의 위험성을 생각해서인지 바닥에 카펫을 깔고 사고방지를 위해 pet병의 뚜껑을 못 들고 들어가게 하는 등 안전성에 신경쓰는 부분들을 엿볼 수 있었다.
아침부터 기다려 입장한 일행은 전부 지쳐있었다. 정작 입장을 하고 나니 밀려오는 잠이라니… 어쨌든 RATM을 보겠다는 신념하나로 오는 잠을 쫓아가며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Floor석 2구역의 중간 정도에 자리를 잡았다.
7시가 돼자 스텝들이 무대에 나와서 셋팅을 손보는데, RATM을 기다리던 우리나라 관객들은 그들의 스텝들만을 보고도 광분이 되는지 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서서 앞으로 밀리면서 필자는 압사의 위협을 느꼈다.
순간 신속하고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2구역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키가 작은 필자는 키 크고 힘 센 남자들 사이에 있다가는 RATM의 공연과 함께 장렬하게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을 것 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7시 20분쯤 관객들은 거의 들어왔고, RATM을 기다리는 마음에 무대에 RATM의 보디가드만 나와도 관객석은 심하게 술렁거렸다.
“쌓인 게 많은 거야. 터지기만을 바라고 있는거야”
관객들의 반응에 대한 일행 중 한명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8시 3분쯤 RATM의 멤버들이 무대에 올랐고, 보컬 Zack de la rocha의 “안녕하세요”(처음이자 마지막 멘트였다)와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이 시작된 이후로는 할 수 있는 말이라면, 역시 RATM이다 라고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이들의 라이브 실력은 대단했다.
온 무대를 뛰어다니면서 노래를 부르지만 흔들림없이 완벽하게 곡을 소화해내는 Zack de la rocha, 기타를 장난감처럼 다루면서 온갖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Tom Morello, 공연 내내 지칠 줄 모르고 정열적으로 베이스를 연주하는 Timmy C, 안정되게 곡을 이끌어 가는 Brad Wilk.
이들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공연 내내 CD를 틀어놓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듯 완벽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첫 곡으로 <Kick Out the Jam>, 두번째로 <Bulls On Parade>를 시작으로 <Testify>, <Guerrilla Radio>, <Calm Like a Bomb>, <Bombtrack>, <No Shelter>, <The ghost of Tom Joad>, <Broken Man>, <Know Your Enemy>, <Bullet in your head>, <Sleep now in the fire>, <War within a breath>의 순서로 연주했다.
여기까지 공연에서 의아했고 놀라웠던 부분은 공연을 하면서 처음 Zack의 “안녕하세요” 이외이는 한 마디의 멘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곡들을 다 마쳤을 때 시간은 9시 2분 정도였다. 한 시간이 조금 안 된 시간에 이들의 본 공연이 끝났다.
사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는지도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무대 앞의 관객석에서 박수소리가 났을 뿐이지 앵콜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난 걸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앵콜을 외칠 수도 없이 당황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고 RATM의 멤버들이 무대로 다시 나왔고 <Freedom>과 <Killing in the name>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 때 관객들은 ‘아~ 2부가 이제 시작되나 보다’ 하고 <Killing in the Name>을 들으면서 흥분의 도가니가 됐을 때 RATM의 멤버들은 다시 악기를 놓고 무대를 내려가 버렸다.
다시 관객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공연이 끝났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공연장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때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필자 일행 중 한 명의 말을 예로 들자면,
“그런데 왜 RATM은 앵콜을 안 하는 거예요?”
당시 다시 나와서 불렀던 두 곡이 앵콜임을 느낄 수도 없었다는 상황이 설명되는 한 마디지 않는가?!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이 공연이 2시간 30분짜리 공연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약 1시간이 조금 넘는 공연에 그쳤고, 한마디의 멘트도 하지 않는(“안녕하세요”빼고) RATM을 보면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필자 개인적으로 볼 때도 이런 공연은 처음이었고, 공연 후반 정도 됐을 때는 그렇게 좋아하던 RATM에게 섭섭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이 공연을 주최했던 광연제 PR측의 해명으로는 티켓 예매처의 착오로 공연 시간이 2시간 30분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고 이 점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점을 공개 사과한다고 했다.
그리고 RATM의 성의 없었던 자세에 대해서는 최근에 큰 공연만을 돌아다녔던(빈 자리가 있는 공연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이 생각보다 적은 관객수에 섭섭함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RATM은 원래 예정된 레파토리 중 한 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을 다 연주했고, 고조된 공연의 분위기를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 한 마디의 멘트도 하지 않았었다고 해명했다.
RATM이 공연 중간에 멘트를 한다고 그 분위기가 썰렁해졌을까?!
수요일임에도 불구하고 RATM을 보기 위해 공연장에 왔던 관객들은 노래도 듣고 싶었겠지만 Zack와의 대화, 교감을 얼마나 기다렸었던가?!
적어도 그 흔한 말 Thank You 정도는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 공연에 관객은 약 6.000명 정도가 들어왔고, 평일임을 감안할 때 그리 적은 숫자도 아니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RATM의 반응은 평소 그들의 행동을 볼 때 잘 이해되지 않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99년 Triport에서 그들의 공연이 취소됐을 때 자신들을 보고자 하는 팬들을 위해서 무료 공연이라도 하겠다 했던 그들이었음을 생각할 때 이번 공연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공연이었던 것 같다.
정말 우리 나라에서의 공연을 3일동안 일본 공연의 리허설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